알다시피 요즘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채동욱 사태의 시발점에는 조선일보가 있다. 학적기록부에 기재된 '채동욱'이라는 동일이름만으로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아들이 있다고 쐐기를 박아버린 조선일보에 사람들이 가한 비판은 엄청났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비난받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비난받는 이유다. 공직자에 대한 의혹제기에 앞서, 도대체 조선일보가 그 개인정보를 어떻게 획득했는지 사람들은 주목해야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당연히 보호되어야할 정보였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조선일보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보호받아야할 개인의 정보를 마음대로 공개해버렸다는 것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공직자의 도덕성을 검증하겠다는 공익을 내세웠지만, 그들이 취한 태도가 개인의 사생활을 해친다는 것을 그들은 간과해버렸다. 왜 그랬는지는 뻔하다. 그들은 이슈를 점하는데 미쳐있기 때문이다.



▲ 9월 13일 발행된 전국언론노동조합 미디어오늘 분회 공정보도위원회 보고서(ⓒ미디어스)


근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이슈를 점하는데 미쳐서 기본을 지키지 않는 언론을 비판하는 다른 여타 언론들의 태도가 조선일보와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디어오늘은 조선일보의 보도에 맞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태도를 취하며 조선일보의 회장의 혼외자식에 대해 보도를 했고, 편집국장은 뻔뻔하게 "유료화 서비스로 시작한 이번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로만 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정치적 판단에 대해서는 해석하는 사람의 자유다. 그렇게 본다"라는 발언을 했지만, 이는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생각지 않는 조선일보와 하등 다를바 없는 태도였고, 이는 당연히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까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벌어진 조선일보와 미디어오늘의 보도 태도에서 그들이 잘못한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그들의 보도 태도는 '혼외자식'인 당사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도다. '혼외자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혼외자식'인 사람들이 언론에 의해서 강제로 사람들에게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들은 언론이 말하는 공직자도 아니고 심판의 대상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공직자의 비리에 대한 특종을 보도해야한다는 이슈경쟁에 미쳐서, 개인의 정보는 물론 그들의 생활에 까지 침투해 건드려서는 안될 곳까지 들쑤시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 17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최영해 논설위원의 '오늘과 내일' 칼럼(ⓒ미디어스)


이런 가운데 오늘 동아일보는 조선일보가 받은 엄청난 비판을 보면서도 정신을 못차렸는지, 칼럼에서 되도 않는 창작물을 올려서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진짜 미친 것 같다. 오늘 동아일보의 사설을 통해서 드러난 것은, 어떤 언론이든 이슈의 선점과 그를 통한 언론매체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이 인간들은 무슨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성역이라는 것은 정말 없다. 오로지 이슈 선점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최영해 논설위원의 창작물을 패러디한 미디어스


이런 상황에서 참 암울한 것은, 우리나라의 흔히 말하는 조중동의 이런 질 나쁜 언론의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언론들이 조중동의 이런 태도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그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미디어스는 최영해 논설위원의 저 글이 얼마나 지저분한 글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최영해 논설위원의 글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와 내용만 바꿔서, 최영해 논설위원과 똑같은 짓을 했다. 이는 나쁜 짓을 비판해야할 언론이 나쁜 짓을 그대로 흉내내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보고 동아일보를 욕하기만 할 뿐 미디어스의 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미디어스의 패러디는 최영해 논설위원이 한 것과 다를바 없는 행동이다. 미디어스는 개인의 인권을 짓밟는 언론에게 똑같이 개인의 인권을 짓밟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렇게 행동한다면 어떻게 대안언론이 지금의 언론의 태도를 비판할 수 있는가? 그들이 하고 있는 행동의 근본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그들의 행위를 그대로 따라해 그들을 비판한다면 언론이 제대로 개선될 수 있을까?


조중동을 비판해야할 언론이 조중동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 이유는, 조중동의 행동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다른 언론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인해서 그들은 조중동과 급이 같아진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제발 부탁이다. 이 땅에서 제대로된 언론이 되고 싶다면 철저하게 스스로를 검증하길 바란다. 물론 요즘 언론이 기업과 권력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균형있는 보도를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저질스런 보도를 따라하지는 않아야한다. 이건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조중동이 괜히 찌라시로 불리겠는가. 이번일로 언론 전체도 반성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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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부터 연예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혹독한 질타가 이루어 질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내가 이런 불편함을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하게 만든 사태는 바로 '2PM의 재범탈퇴사건'이었다. 그룹 2PM의 리더였던 박재범이 과거 미니홈피에 올렸던 글(한국비하발언)이 문제가 되어 4일만에 박재범은 그룹 2PM을 탈퇴하게 되었고, 팬들은 이러한 소속사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면서 인터넷상에서 재범을 비난하는 사람들과 2PM팬들이 뒤섞여 한동안 난장판이 되었던 그 일 말이다.


재범이 자기 개인공간에 끄적인 글들은 사실 정말 별거 아닌거었다. 아니 사실 그보다 더 한 쌍욕을 써놨어도 상관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네티즌은 박재범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 주제에 한국을 비하했다고 흥분했고 "양키 고 홈"을 외쳤다. 그래서 결국 박재범은 정말 미쿡으로 떠났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애국심이라고 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 '한국을 까서는 안된다'는 당위가 박재범을 한순간에 최악의 연예인으로 만들었고 그를 한국에서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사태를 접한 우리 모두는 재범에게 적용시켰던 그 이데올로기를 스스로에게 적용시키지 못한걸까? 그랬던 것 같다. 골수 한국인인 우리도 평소에 한국을 깐다. 살기 힘든 이 나라를 나같은 청년은 정말 자주 깔 것이다. "좆같은 씨발 한국 살기 힘드네." 라고 말이다. 이런 가운데 재범에게 들이댔던 그 애국심의 당위를 나에게 한번이라도 적용시켜봤다면 재범을 그렇게 깔 수 있을까? 그럴수 없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그렇지 않았다. 재범에게 들이댄 그 애국심을 나에겐 적용시키지 않고, 오로지 재범에게만 적용시켜 돌을 던졌다.


내가보기엔 미쿡에서 살다가 한국와서 연예인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그 느낌을 한 껏 담아 욕 한바가지를 한다고 해도 별 문제 될게 없어보였다. 왜냐? 골수 한국인인 우리도 하니까. 하지만 네티즌은 그렇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애국심이라는 이름을 걸고 심하게 박재범을 깐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네티즌의 행동은 합리적이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이러한 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느낀건 한가지였다. 네티즌이 이데올로기를 기치로 내걸고 폭력을 행사하는걸 즐긴다는 것 말이다.


그 이후로도 여러 사태가 있었다. 아이비 동영상 사건, 티아라 탈퇴 사태, 카라 멤버 불화 사태와 더불어 이번 방송태도 논란, 아이유 은혁 사건, 그리고 이번 클라라 거짓말 사태까지. 내가 기억하는건 이정도다. 근데 이 사태에서 네티즌이 보인 반응은 한결같다. 바로 도덕이나 방송태도와 같은 어떤 이데올로기적 가치로 그들의 태도나 행동을 비난하면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내가 네티즌의 댓글을 폭력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비난을 하면서 내거는 이유와 그들의 비난의 정도가 도저히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지키지 못할 도덕적 잣대를 너무 쉽게 그들에게 적용하고 그로 그들이 해온 모든 활동에 대해 부정하고, 마치 인간 쓰레기들인 것 마냥 까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불편함을 참을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의 미숙함과 실수에 대해 가볍게 지적할 수는 있다. 아니 그정도여야 했다. 하지만 네티즌은 도를 넘어 연예인을 비판하고 그들을 완전히 짓밟는 말을 서슴치 않는다.


나는 이번 클라라 사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녀가 한 거짓말에 대해서 가볍게 지적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도를 넘어 비난을 하고 있다. 그녀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녀에게 적용시킨 그 도덕성을 나한테 잠깐만 적용시키고, 다시 한 번 그녀가 한 행동을 보면 완전 때려 죽여야할년으로 보이지는 않을 거다. "좀 마음에 안드네." 또는 "꼴시럽네." 정도에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게 클라라가 방송에서 사라지길 바라듯 계속 까고 있다. 근데 이런 행동이 단순히 그녀 한 사람에게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면서, 나는 네티즌들이 이 행동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가끔 네티즌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있으면 그들 안에 내재된 폭력성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 결국 사회적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제대로된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우니 어쩌랴. 일베현상도 제대로 파악못해서 전문가들이 그냥 "저새끼들은 미친새끼들이다."하고 넘기는게 우리 사회이거늘. 어쨌든 이런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이 좀 잘 이루어져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베만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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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커밍아웃으로 떠들썩했고 결혼까지 하겠다고 공개 선언을 해서 동성애논란을 불러온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결혼식이 청계천에서 있었나보다. 난 뭐 솔직히 그들이 커밍아웃을 하든 결혼을 하든 관심 없다. 어차피 "난 남자를 좋아해" 라든지, 남자와 결혼을 한다든지 이런건 다 개인적인 감정이고 결정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거에 내가 왜 일일히 관심을 가져야하나?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몇몇 사람들과 더불어 기독교인들은 이 일을 그냥 개인의 감정 또는 결정으로 생각하고 그냥 넘길수 없나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장소에 몇몇 기독교인이 가서 찬양 부르면서 떠들고, 어떤 기독교인은 또 자신의 인분과 된장을 섞은 오물을 투척했단다. 그걸로 모자라서 경찰의 제지를 받고 쫒겨나자 밖에서 사진처럼 피켓들고 시위를 하면서 온갖 저주와 악담을 퍼부었나보다. 사진에 나온 피켓을 보라.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저들의 말대로라면 한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는데 있어 가장 무서운 무기는 동성애다. 동성애 하나면 나라 망가뜨리는건 일도 아닌게다.


사실 모든 기독교인이 저런건 아니다. 하지만 도저히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고 비판하는 보통의 기독교인 마저도 이번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동성애 결혼식에 대해 그냥 저들의 폭력적이고도 무례한 태도와 상식이 없는 행동만을 비판할 뿐, 동성애와 더불어 저들의 결혼을 지지한다고 하는 기독교인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비록 이번 사태에 대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그들이 마음에 안든다. 기독교의 문화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성경을 근본주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저런 극렬한 기독교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이상 동성애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회의 현실속에서 도대체 기독교인은 언제까지 동성애 문제를 죄라고 단정짓고 문제를 회피하기만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연구와 노력을 기울일 수는 없는건가?


솔까 교회에서 성에 대해 굉장히 경계하는 것 만큼, 성경에는 성에 대한 언급이 초반에 꽤 있다. 특히 구약에서는 여러가지의 성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음란함을 경계하는 구절이 상당히 많은데, 그러한 구절이 많은 맥락에는 단순히 성관계에서 오는 쾌락이나 음란함 때문이 아닌, 우상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그들이 새롭게 정착할 곳을 가나안으로 정하고 대이동을 한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는 이미 토착종교가 뿌리내려 있었고 그들만의 의식과 예식이 있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알'과 '아세라'다. 어쨌든 바알을 섬기는 종교의 의식 중 하나는 바로 성관계를 갖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한 남창과 여창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가나안 사람들에게 성관계는 쾌락의 요소도 있었겠지만, 성관계 자체가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을 담은 성스러운 행위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가나안에 정착하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성행위 자체가 가나안의 신과 연관된 우상숭배의 행위가 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고, 이와 관련한 성경 구절이 자주 언급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동성애의 행위도 성경에서 언급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생각해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동성애나 성행위의 문란함에 대한 경고는 당시 가나안의 토착종교에 대한 반발과 이를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고 따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근데 아직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나름 자기들 딴에는 어느정도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의 복음주의자들까지도 동성애는 무조건 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유는 근본주의자와 동일하게 성경이 그렇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 뿐이고.


기독교를 믿으면서 동성애를 할 수는 없는건가? 바알 종교는 사라진지 오래다. 오늘날의 성관계는 사랑의 행위지, 그 당시의 바알종교에서 했던 그런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지금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는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행위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엄청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기독교는 동성애를 저주하며 그들의 행동이 죄라고 자신들의 잣대로 규정하고 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가. 왜 자신들이 생각하는대로 강요를 하고 있는가. 그게 폭력이라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단순히 오물 투척을 한 저런 사람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에 벌어지는 이러한 사태엔 기독교인 모두의 책임이 있다.


기독교는 상식을 갖추는 것도 좋지만, 먼저 자신들의 생각에 깔린 신앙과 교리부터 다시금 점검해보라. 상식만으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저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그리고 "동성애는 죄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어쭙잖은 인류애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것도 제발 좀 자제하자. 그걸 마치 자신이 개념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동성애자의 입장에서는 "니가 싫어요." 를 돌려 말한 걸로 밖에 들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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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 (2002)

Sympathy For Mr. Vengeance 
8.4
감독
박찬욱
출연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 임지은, 한보배
정보
스릴러, 범죄 | 한국 | 120 분 | 200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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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어딘가에서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계급모순'이었다는 어느 블로거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보게된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직관적으로 오는 느낌을 한마디로 하자면 "존나 잔인하다." 이렇게 자극적인 영화로 인해서 계급모순이라는 것이 잘 드러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대부분의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이게 뭐지?' 라는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다 뒈지니까.




이 영화를 복수하는 착한 사람과 복수 당하는 나쁜 사람. 또는 윤리적인 사람과 비윤리적인 사람의 대결로 보면 답이 안나오는 영화다. 그렇게 보지말라고 이 영화는 친절하게 나오는 사람들을 다 죽인다. 복수 한사람도 죽고, 복수 당한 사람도 죽는게 이 영화의 결말이다. 결국 착한놈도, 나쁜놈도 없는게다. 따라서 이 영화를 선과 악의 구도로 본다면 이 영화는 그냥 엽기적인 영화일 뿐이다.




그럼 계급모순을 생각하면서 영화로 들어가보자. 영화를 보면 극중의 류는 노동자다. 아픈 누나를 위해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나 열심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렇다고 그가 이런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의 심성은 착하다. 누나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지나가는 이웃에게도 신경써주려는 사람. 그러던 그는 이유없이 해고당한다. 회사의 새로운 방침과 이익에 따라 정리해고 당한 것이다. 류는 회사에 실컷 사용당하고 버림받았다.




회사에서까지 해고를 당하고 누나를 살릴 뾰족한 수가 없어진 류는 결국 장기매매를 하기로 한다. 업자들은 류에게서 신장과 천만원을 받고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당연히 이는 구라였다. 류는 속았고 그는 업자들에게 착취당한 것이다.




21일 후, 병원을 찾은 류는 희망고문과도 같은 소릴 듣는다. 누나에게 신장을 이식해줄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천만원을 요구한다. 병원장에게 문제는 다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돈이 있다는 전제하에. 류에게 있어서 회사나, 장기매매업자나, 의사는 다 똑같은 놈들이다. 류를 노동으로든 돈으로든 장기로든 착취하는 인간들이고 류는 착취당하는 인간이다. 류는 결국 자신의 힘만으로는 누나를 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류와 그의 여자친구인 영미는 왠 사장 딸을 유괴해서 돈을 요구하기로 계획한다. 이로 인해 사업가인 동진의 딸은 납치 아닌 납치를 당하게 된다.




동진은 한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으로 여느 자본가와 다를바 없는 사람이다. 회사의 구조조정에 의해 오랫동안 충성해왔던 노동자를 잘라야하는, 즉 자신의 회사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는 가차없이 버릴 수 있는 자본가인게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본가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가장이고 딸을 위해 열심히 회사를 운영한 아빠이다. 가난한 시절을 이겨내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 지금에 올라온 경영가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된 것. 그리고 그로 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 밖에 없다.




그런 그는 딸을 잃었다. 왜? 돈 때문에. '유전무죄'라고 돈이 많은게 무슨 죄인가. 하지만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딸은 돈 없는 자의 표적이 되었고 그로인해 그의 딸은 죽어버린 것이다. 물론 딸이 죽은건 딸이 실수로 물에 빠져서이지만 사실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자본가인 동진은 딸을 잃은 순간 자신의 돈을 노린 사람들이 모두 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각성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동진은 자신의 돈을 노릴 만한 사람을 용의선상에 놓고 찾아다니다가 전에 자신이 해고했던 노동자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일가족이 약을 먹고 자살한 현장을 보게 된다.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일까? 대답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그 노동자가 동진에게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화해할 여지를 몇가지 두었다. 동진은 자본가였지만 자신의 딸을 죽인 사람을 추적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악랄한 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동진은 노동자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본가와 노동자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복수극인 이유다.




결국 서로의 적을 무찌르며 최후에 만난 자본가의 대표 동진과 노동자의 대표 류의 싸움은 동진의 딸에 대한 복수와 승리로 끝나는 것만 같았다. 동진은 류를 찾아다니면서 류의 상황을 알게된다. 그는 류를 이해할 수 있다. 누나를 살리기 위해 청각장애를 가진 가난한 그가 할 수 있었던게 이것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안다. 하지만 그는 그를 용서하길 거부한다. 똑같이 소중한 사람을 위해 행동했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동진은 류를 용서할 수 없다. 내 돈을 노리고 빼앗은 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동진은 딸을 잃었으니까.




류도 마찬가지다. 딸을 잃은 동진이 자신을 찾아다니고 자신의 여자친구를 죽인 것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진은 피할 수 없는 적이자 여자친구를 죽인 사람이다. 노동자로서 착취당하고 가진 것이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다. 싸우고 죽이는 것 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착취한 장기매매자를 무참히 죽이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계급모순의 영원한 순환을 끊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에서는 절대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나왔던 설국열차 역시 마찬가지의 메세지를 담고 있지 않았는가? 열차를 파괴하는 것이 열차에서 벌어지는 계급모순을 끝내는 유일한 길인 것 처럼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과 모순은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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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의 '내란음모죄'의 발단이된 녹취록의 진실여부가 아무래도 사실인듯 싶다. 단독보도를 했던 한국일보가 녹취록의 전문을 오늘과 내일에 걸쳐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그 내용을 보니 조작은 아닌듯 싶다. 게다가 통진당에서도 모임의 여부와 녹취록의 해당내용의 이야기에 대해 전면부인을 못하는 것을 보니 더욱 녹취록에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오늘자에 공개된 녹취록에서는 이석기의 발언에서 크게 위험한 부분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진보운동권에서의 NL이 가진 생각과 사상이 어떠한지가 이번 전문을 통해서 꽤나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그 생각이 얼마나 답답하고 꽉막혔는지를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반미적인 태도와 함께 민족의 자주적 성격을 주장하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행동해야함을 견지함과 더불어 그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이 필요하다는 주장, 북한의 군사력과 기술력이 미국을 위협하고 능가할 잠재력을 가졌다는 주장, 앞으로의 한반도가 미국의 제국주의를 무너뜨릴 가장 강력한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꽤나 답답하고 터무니 없이 보인다. 특히나 그가 이번사건을 해명할 때 자신은 "뼛 속까지 평화주의자"라고 말했지만 녹취록을 보면 그의 평화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이며 핵을 통해 추구하는 평화다. 이런 사람의 생각을 지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뭐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있어서의 이중적 태도와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고 미국에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 핵을 추구해야한다는 이석기의 주장은 NL이라는 이 집단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가 되지 않나 싶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진보라는 이름으로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뭐 어쨌든 지금까지 공개된 전문으로는 내란음모죄를 적용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할 수는 있다. 존나 노답스러운 생각이긴 하지만 지 생각이라는데 어쩌겠나. 아마 문제는 다음에 공개될 전문에 있을 것이다. RO집단의 모임에서 그들이 어떤 논의와 토론을 했는지, 그리고 이석기가 이를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가 밝혀짐에 따라 이 논쟁은 어느정도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뭐 사실 이미 드러난 것으로도 통진당의 정치적 생명은 거의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이 정치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것 만큼은 분명한 현실이 될 것이다.


통진당은 지금 공안정국, 정치적 탄압, 마녀사냥 등을 주장하면서 지금 공개되는 녹취록에 대해 해명을 회피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무죄를 증명하고 싶다면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국정원의 조사에 대항해야한다. 답답하게 단식투쟁같은걸 한다고 통진당의 의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통진당은 해야할 일을 해야한다. 지금과 같은 태도를 지속하고 제대로된 해명을 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정치생명은 끝나게 될 것이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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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급 나라가 들썩였다. 이석기 통진당 국회의원의 '내란예비음모'로 정치권이 발칵 뒤집힌 것. 이름도 생소한 이 범죄혐의 한방으로 정국은 다시금 색깔론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야권은 벌벌 떨기 시작했다.


뭐 일단 이 소식을 접하자마 첫번째로 이해가 안되는 것 중 하나는 왜 국정원이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면서 수사를 하는지였다. 은밀하게 움직여 문제를 파헤치고 결론을 지어 검찰에 넘겨야할 그들이고 그 전까지도 그렇게 해왔을터다. 그런 그들이 왜 안그래도 국정원이 존나 욕먹는 타이밍에 이런 소란을 피우면서 자신들의 수사를 떠벌리고 다니는가. 도둑을 잡으려면 은밀하게 움직여 확실하게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 덕분인지 이석기 의원은 변장을 하고 텨 버리지 않았는가. 물론 이건 사실인지가 확실치 않지만.


게다가 또 이해가 안되는건 왜 이석기만 체포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는지다. 만약 국정원이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고 혐의가 확실하다면 이석기는 현행범으로 다루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을 인물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석기만 체포영장 미발부 상태로 의원실 압수수색만을 벌였다. 내란예비음모죄의 핵심인물이 될 수도 있는 그를 내버려 둔 채로 말이다. 무슨말이냐면 이는 이석기의 혐의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원실을 급습했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는 국정원의 말과 지금의 상황은 뭔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이석기의 행동도 이해가 안된다. 그는 체포당하지도 않는 상황인데 어디 숨어서 잠적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나와서 이 상황에 대해 입장발표를 해야할 당사자는 없고 당대표만 나와서 떠들고 있는 상황이 지금의 사태를 해결해 줄 리가 만무하다. 그의 이런 태도로 인해서 정국은 더욱 들끓고 있는데다 국정원의 행동은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어쨌든 국정원은 이번 수사를 통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국은 여권쪽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어떻게 이 수사를 결론 짓는가의 여부일 것이겠지만 이미 국정원과 여권은 지금 상황으로도 충분히 여론을 자신들의 흐름으로 끌고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안보문제는 민감한 문제이자 성역 아니던가. 국정원의 이 수사는 엄청난 결론을 내지 못해도 충분히 '안보'로 정당화될 여지가 있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이미 그들은 반쯤 먹고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통진당은 좀 더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할 과제가 생겼다. 이번 사건으로 통진당은 맘만 먹으면 '종북'으로 까일 수 있는 호구정당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지금의 현실은 지금껏 애매한 태도를 취해 온 통진당의 사람들이 초래한 측면도 없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이런 혼란을 겪지 않으려면 정당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번 수사의 결론 여하에 따라 통진당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수사의 결론이 무혐의로 그친다면 앞서 말한 과제에 대해서 통진당은 충분히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한다. 안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당할테니까.


정치권의 분탕질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린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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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질이네요. 이래저래 8월 한달은 놀러다니고 쉬느라 블로그 관리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잘 쉬었네요. 


어젯밤에 문화평론가 허지웅이 촛불에 대해 말한게 이래저래 논란인 모양입니다. 허지웅의 트윗은 결국 야당의 무능함과 더불어 촛불이 문제를 해결해줄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였는데 그게 촛불을 믿는 사람들에겐 꽤나 큰 상처가 된 모양입니다. 허지웅은 욕을 바가지로 먹었겠죠.


촛불이 문제를 해결해줄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촛불집회는 이전까지 여러번 있어왔죠. 하지만 그 촛불이 담고 있었던 이슈를 촛불이 해결해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촛불은 그 자체로는 문제를 해결해줄 어떤 힘이 있는게 아니죠. 그래도 전 촛불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정치적 이슈에 대해 직접적으로 참여할만한 수단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지역의원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식일리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섰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촛불이었습니다.


허지웅도 이러한 점을 모를리는 없을겁니다. 하지만 허지웅은 지금 촛불집회 대열에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야할 정치집단이 참여해있는 그 무능함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겁니다. 국회의원은 의회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들은 그러기 위해 국민들에게 선택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시민들과 함께 거리에서 목소리를 낼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런 국회의원들이 지금은 장외투쟁을 하고 국민들과 섞여서 촛불을 같이 들고 있습니다.


국정원 문제가 잘못된 것 분명 맞습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왜 거기에 있는거죠? 허지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닌가싶습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지금 여당과 싸워 이길 수 없어서 장외투쟁하고 있는겁니다. 자신들의 무능함을 다시금 증명한 겁니다. 촛불집회 장소에 나와서 여당은 나쁜놈 우리는 착한놈이라고 주장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건 여당이 하는 편가르기 수법과 하등 다를바 없죠. 그렇게 해서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허지웅이 야당의 무능함에 대한 비판적 트윗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의 행동을 단순한 취미활동정도로 규정해버린건 좀 과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있어서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촛불도 그 중 하나의 일환이고, 스스로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도 분명 다수일꺼라는 점에서 굳이 그들을 마치 심심해서 나온 사람으로 취급할 필요는 없죠.


뭐 원래 말하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아니겠습니까? 논객도 그렇고 평론가도 그렇고 자극적으로 말하는게 특기잖아요. 뭐 여하튼 저 개인적으론 이 지루한 정치가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대한민국 정치 더럽게 재미없어요. 나와의 상관 관계도 찾기 힘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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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까지 섬머누드를 보면서 이대로 드라마가 계속 전개되면 참 답없는 드라마가 되겠다 싶었는데 남주의 찌질함이 3화에서 다행이도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도 꽤 괜찮게 전 여친을 떨궈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말이다. 억지스럽지도 않고 가장 좋은 방향으로의 진행이었던 것 같다.





하나에는 아사히가 카스미가 떠나고 나서 계속 괴로워 하고 있었던 지금까지의 시간동안 쭉 말 없이 그의 고통을 지켜보아왔다. 사실 그 자체가 그녀에겐 고통이었다. 단순히 아사히가 괴로워서가 아니라 그가 다른 여자로 인해 아파한다는게 그녀에겐 더 큰 괴로움이었을거다. 하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사히 옆에 있었다. 그리고 3화에서 남주인 아사히는 드디어 이를 발견한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간에 그녀는 항상 자기 옆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복선을 깔아둠으로서 3화에 전 여친인 카스미를 떨굴 계획을 이 드라마는 하고 있었던게다. 잘했다. 잘했어. 이제 드디어 이 섬머누드가 제대로된 러브스토리의 궤도에 오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삼각관계도 좋고, 안경잡이의 하나에에 대한 짝사랑도 좋고. 시청률도 3화에는 좀 올라가지 않았을까. 앞으로 러브스토리를 감칠맛나게 잘 진행시킨다면 첫화의 시청률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것 같다. 뭐 사실 그게 아니어도 워낙 캐스팅이 좋아서 평균시청률 15%는 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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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기대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썸머 누드입니다. 초호화 캐스팅에 야심작으로 내놓는다는 게츠쿠 드라마로 기대를 모았는데 생각보다 영 시청률이 안나오고 있습니다. 1화는 그래도 17.4%로 흥행이 되나 싶었는데 2화에 시청률이 급락했죠. 근데 이것도 보면 그럴만 하다 싶습니다. 여름처럼 밝으면서도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를 그려보겠다고 요란스럽게 시작한 것 치고는 갈 길이 너무 멀어보이거든요.



(남주인 미쿠리야 아사히 역의 야마시타 토모히사)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간의 러브스토리를 진행시키기에 각각의 케릭터가 가진 설정이 너무 무겁고 깊다는데 있습니다. 특히나 이 남주는 딱 봐도 사랑하기에 준비가 전혀 안된 사람이에요. 과거의 여자에게 미련을 가지고 해바라기마냥 계속 기다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른여자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죠. 사실 이 설정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빈틈이 있다면 말이죠. 남주의 마음에 다른 여자가 비집고 들어올만한 틈이라던지 허술한 부분을 만들어 주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런게 하나도 없습니다. 전 여친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도 굳건한 설정입니다.



(여주인 치요하라 나츠키 역의 카리나)


여주도 남주와 마찬가지입니다. 시작부터 결혼 상대자가 택시타고 도망쳐버리는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 여주는 남주와 다를바 없는 상태입니다.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까지 했는데 그 연인은 급 도망치고 자신은 홀로 남았죠. 이런 상황에서 바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게 가능할 리가 없죠. 오히려 남주보다 더 사랑할 준비가 안된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남주든 여주든 적어도 상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라고 할만한 요소는 이 드라마에서 아직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시작부터 투닥거리고 서로의 과거를 찌르기만 하는 관계로서 아주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러브스토리라고 했으니 결국엔 이 둘이 이어질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식의 전개를 해나갈지 전혀 감이 안잡히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여주의 설정이 좀 가벼웠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여주로 카리나를 선택한 것도 전 그냥 캐스팅했다고 보여지지 않거든요. 카리나가 웃을때 은근히 나가사와 마사미랑 닮은 구석이 있는 만큼 여주를 어느날 갑자기 남주앞에 나타난 전 여친과 비슷한 느낌의 여자로 설정을 잡았으면 차라리 지금보다 훨씬 스토리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죠. 남주의 빈틈을 끌어내 러브스토리도 진행하고, 그러면서도 갈등하는 요소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남주의 세컨드 설정으로 등장하는 타니야마 하나에 역의 토다 에리카)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남주의 설정이 너무 무거운 나머지 세컨드라는 설정으로 등장한 타니야마 하나에는 졸지에 왜 있는지도 모를 케릭터가 되버렸습니다. 10년동안 주인공을 쫓아다니면서 좋아했고 같이 친분을 쌓고 살았다는 사이 치고는 전혀 친밀함도 없고 살가움도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적어도 전혀 알지못했던 사이로 등장하는 여주보다는 훨씬 가까운 모습이어야 할텐데 전혀 그렇지도 않습니다. 남주는 나츠키나 하나에 모두에게 똑같은 태도입니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설정이다보니 왜있는지도 모르겠는 케릭터인데다 지루함과 답답함만 가중시키고 있죠. 10년동안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 10년을 좋아한 간절함도 보는 사람들이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에라는 케릭터가 적극적이었다면 이 드라마가 훨씬 흥미진진했을것 같은데 말이죠. 남주가 저렇게 찌질한 케릭터인데 세컨드마저 이렇게 소심하고 답답하면 답이 안나오죠.



(남주의 사라진 전 여친 카스미 역의 나가사와 마사미) 


이런상황에서 이 드라마의 최대의 적은 바로 저 카스미입니다. 오히려 드라마의 진행에 상당히 방해되는 요소에요. 러브스토리가 이 드라마의 주요내용인데 이 드라마의 러브스토리의 진행을 막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제대로 된 러브스토리를 진행시키고 싶다면 빨리 저 전 여친 카스미라는 케릭터를 떨칠 필요가 있어요. 안 그러면 드라마 내내 모든 케릭터가 저 전 여친 케릭터에 휘둘리다가 드라마가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지 싶습니다.




사실 전체적으로 봤을때 썸머 누드는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끼운 것이 아닌가 싶어요. 여름과 해변이라는 배경으로 밝은 느낌을 연출하려고 의도한 것 같은데 케릭터들은 전부 무겁고 진지하고 꽉막힌 구석이 있어서 조화가 안되고 있어요. 여름, 해변, 사랑 전부 따로 놀고 있습니다. 각각의 인물간의 관계도 상당히 따로 노는 느낌이구요. 오로지 지금 상황에서 눈에 들어오는건 남주와 전 여친인 카스미 뿐입니다. 이 드라마의 러브스토리의 중심은 나츠키와 하나에인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나츠키와 하나에에겐 관심도 안가고, 오히려 카스미는 어떻게 되었나. 카스미와 아사히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것만 궁금해요. 문제는 다음화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단 말이죠. 어쨌든 썸머 누드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시청률은 둘째치고 드라마 자체가 의도한 것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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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는 기대하게 만든 작품이 꽤나 있었는데 대박 작품이 하나 나왔네요. 사카이 마사토가 주연이라고 해서 주목하고 있었던 작품 '한자와 나오키'입니다. 첫화부터 시청률 19.4%를 찍더니 2화는 20%를 넘겼네요. 그럴만한 작품인것 같습니다. 일단 1화를 스페셜로 2시간 방영한것부터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했다싶고 이를 잘 담아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쿄 중앙 은행 서부지점 융자 과장인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사카이 마사토))


드라마의 첫화를 보면 알겠지만, 드라마의 시작은 도쿄 중앙 은행 서부지점에서 융자 과장으로 일하는 주인공 한자와가 도쿄 중앙 은행의 각 지점들중 최고의 지점이 되기 위한 지점장의 야심을 위해 실적을 올리던 중, 지점장의 지시로 한 회사에 대한 무리한 융자를 시도하고 융자를 해준 회사가 도산하면서 지점장이 그 책임을 모두 한자와에게 지게 합니다.


따라서 한자와는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도산한 회사에게 빌려준 5억원을 회수해야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자와가 단순히 책임만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자와에 대한 인물의 설정을 1화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그가 은행원이 되기로 마음먹은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도산할때 은행의 냉정한 태도와 그로인해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본 한자와는 결심을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말입니다. 아버지는 한자와에게 무슨일이 있어도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와 신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은행은 아버지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냉담하기만 했습니다. 한자와는 이를 통해 사회에 대한 눈을 뜨죠. 이러한 냉담함은 바로 한자와가 맞서야할 1차적인 적입니다.


(서부 지점장 아사노 타다스(이시마루 칸지))


따라서 서부 지점장은 한자와의 가장 우선적인 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심심하면 은행의 많은 직원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위해 일해달라고 한자와에게 말했지만 실상은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은행을 이끌어온 사람이죠. 한자와는 이런 지점장의 말을 믿었지만 지점장은 자신의 직위가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한자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합니다. 바로 한자와가 가장 처음 맞닥드린 사회의 냉담함을 다시 만난겁니다. "날씨가 화창할때는 우산을 빌려주지만, 비가 올때는 우산을 빼앗아 간다." 따라서 서부 지점장은 어떻게든 한자와가 극복해야할 적 중 한명입니다. 자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그리고 냉담함과 대적하기 위해서 말이죠.



(5억을 융자받은 후 회사를 도산시키고 도망간 히가시다 미츠루(우카지 타카시))


히가시다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한자와의 은행에 융자를 받아주다시피 하는 것 처럼 행동하지만 이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 하나의 처사에 불과합니다. 그는 개인을 위해 회사를 계획적으로 도산시키고 돈을 챙겨 도망을 가죠. 한자와는 단순히 이 사람을 5억을 회수해야할 인간 정도로 여기지 않습니다. 반드시 심판해야할 적으로 여기죠.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의기투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에게 고통받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대가를 치루게 해주겠다는 각오를 볼 수 있습니다.



(국세청 사찰부의 쿠로사키 슌이치(카타오카 아이노스케))


쿠로사키 슌이치는 뭐랄까요. 한자와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5억을 회수해야하는데 그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적입니다. 국세청도 계획 도산후 돈을 빼돌려 달아난 히가시다 미츠루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죠. 따라서 한자와를 방해하는 가장 성가신 존재이자 또하나의 적입니다. 지금까지의 드라마의 진행은 국세청과 한자와 둘 중 누가 먼저 히가시다 미츠루의 돈을 회수하느냐의 대결로 흘러가고 있죠. 지금으로서는 이 쿠로사키 슌이치가 이 드라마를 주도할 상당히 비중있는 인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문제는 결국 쿠로사키 슌이치도 한자와의 적인데 그는 국가가 해야할 당연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자와의 적이 되기엔 뭔가 명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행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쿠로사키 슌이치 뿐만 아니라 한자와 나오키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둘은 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돈을 회수하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죠. 쿠로사키 슌이치는 국세청의 정보를 통해서 사람을 협박하고 그를 통해 자신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한자와도 마찬가지죠. 은행원으로서 돈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이를 통해서 상대를 협박하고 그를 통해 정보를 얻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는 한자와의 가장 큰 적인 냉담함을 그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모순적이죠. 그를 돕는 다케시다 금속 공업 사장인 다케시다 키요히코는 이러한 한자와의 모습을 보면서 한자와를 모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자와가 평상시 보여줬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사실 한자와가 쿠로사키 슌이치를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극복해야합니다. 지금의 한자와는 쿠로사키 슌이치를 이길수 없습니다. 쿠로사키 슌이치는 한자와와 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거든요. 한자와는 최대의 적과 마주친 겁니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죠.





드라마의 성공도 한자와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렸겠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가 쌓아올린 것을 무너뜨려야하는 한자와를 이 드라마가 어떻게 그려낼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일단 지금까지는 엄청 재미있고 앞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이번년도 최고의 드라마가 하나 나온 것 같아요.



(한자와 나오키의 아내 하나(우에토 아야))


이 드라마에서 긴장감을 잠깐이지만 해소시켜주는 케릭터인 한자와의 아내 하나입니다. 우에토 아야가 이렇게 사랑스러웠나요;; 장난스러우면서도 남편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아내로서 연기를 너무 잘 소화하는 걸 보면서 완전 반했습니다. 쩌네요. 우에토 아야.. 짱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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