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의미

단상 2013. 2. 9. 10:01

설날이다. 설날이 되었는데도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은지 거의 4년쯤이 되어가는 것 같다. 사실 이번 설날에는 내려가려고 했었는데, 아버지의 차가 몇일전 고장이나고, 버스와 기차가 모두 매진되어버려서 못내려가게 되었다. 뭐 그런 이유이긴 하지만 사실 작정하고 내려가려면 내려갈 수 있었을테다. 하지만 그냥 귀찮아지신게지. 나 역시도 별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 친척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왕래가 잦아서 친밀한 것도 아닌데다 애초에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뭉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전에 그렇게 "가족이 먼저다."를 외치시며 명절을 챙기고 빠짐없이 내려가시던 아버지가 명절을 챙기지 않게 된 이유가 있다. 그건 고모로 인해 생긴 가족간의 다툼 때문이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모부를 교통사고로 잃게 된 고모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가 자식과 아내도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뒤 집안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일단 고모가 유부남과 교제한다는 사실에 모든 가족들이 분노했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동의했다. 하지만 이후에 고모를 더이상 가족으로 대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들간의 다툼이 심화되면서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들의 사이도 어색해져버렸다.


참 바보같다. 뭐한다고 그런 다툼을 벌이는지.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실상 그런 다툼의 자리에 고모는 없는데, 없는 사람을 두고 가족끼리의 다툼으로 또 서로가 어색해져버리다니. 당사자인 고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고, 그냥 유부남을 좋아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만 몰두해 고모를 그냥 가족의 이름을 더럽힌 사람으로 낙인 찍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렇게 고모는 우리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와버렸다. 물론 여전히 고모가 혈연으로 맺어져있다는 사실은 무슨 수로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혈연이라는 것이 지금 이 사태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너는 내 핏줄이다.' 이거? 다 쓸모 없다. 특히 고모는 절절히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최근들어 깨어지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이혼률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상처받고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이제는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자연스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막 종교를 믿기 시작했던 2006년쯤부터 적어도 청년들에게 중요했던 한가지 화두는 가족의 깨어짐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힐링. 회복. 참 지금 생각해보면 종교가 그런 변화의 지점을 민감하게 잘 잡아내긴 한 것 같다. 물론 그 해결 방식에 있어서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랬던 흐름이 이제는 세상에까지 퍼졌다. 힐링캠프. 힐링이 필요해. 서로다른 힐링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힐링의 지점도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개개인에게 이 힐링이라는 단어는 먹히고 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지점이다.


뭐 어쨌든 가족의 회복 또한 필요한 것이겠다. 노력도 해야하고 뭔가 좋은 방법도 찾아야할 것 같다. 왜? 가족이니까.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니까. 누가 뭐래도 내 가족이니까. 그런데 가족이 가족을 죽이고, 이혼을 하고, 자식을 버리고. 이런 일이 힐링을 이야기하고 가족을 회복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왜? 가족이잖아! 근데 왜?


"가족 가족 가족!!" 가족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족이 형성되었던 그 과정과 역사의 사실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애초에 한 가정이 형성되는 시작은 남남에서부터다. 생판 모르는 남남이 만나서 결혼을 해 가정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끊을 수 없는 인연 이런건 없다. 그런 종교적 발상은 제발 집어 치우자. 오로지 가족의 형성은 남남이라는 존재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남의 존재로 만났기때문에 앞으로 만들어나가야할 가족의 영역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은 그 영역을 만들기 위한 책임의 시작일 뿐이다. 결혼했기때문에 이제 가족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남남의 연합의 이루어짐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자식을 낳아 새로운 가족이 생겨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 자식이 바로 너, 바로 나라는 사실은 애초부터 정해져있던 것도 아니고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같은 자식이 나올 줄 알고 부모가 나를 낳았을까? 전혀. 자식을 가졌지만 그 자식은 완전히 하나의 낯선 존재로 가족의 영역에 들어올 뿐이다. 가족은 그 낯선 존재를 책임지고 보살핀다. 그렇게 자식을 키우는 것이다.


아주 대충이라도 가족의 형성을 살펴봤을때 가족을 유지하고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드러날 것이다. 바로 책임이다. 오로지 낯선존재들끼리 만나 연합하는 이 과정가운데 그들이 가장 우선시 해야할 것은 책임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의 주체로서 그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택하지 못한 것은 가족을 형성하는 대상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내가 원하는 아내, 내가 원하는 자식을 선택하지 못했을 뿐,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 그 모든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이 선택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대상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부터 가족의 깨어짐과 상처와 고통은 시작된다.


따라서 사실상 가족의 깨어짐, 상처와 고통은 피할 수가 없다. 운 좋게 정말 내가 원하는 존재를 만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가족의 깨어짐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로서는 두 가지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나는 가족을 형성했을 경우 책임을 의무화 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말이다. 법으로. 또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제거하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우리를 깨어짐과 고통으로 내모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이라는 개념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는 실현 불가능하다.


가족으로 인해 생겨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감당하려면 우리는 힐링을 외칠 것이 아니라 제대로된 현실을 직시하는 것 뿐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약한 고리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 가족을 잘 형성하고 꾸려 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무시무시한 책임을 감당해야하는지 말이다. 자신이 전혀 원하지도 않았던 존재를 책임져야한다니.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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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노령연금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게다가 인수위의 방안도 시시각각변하고 시민단체의 반발과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답답한건 제대로된 사실과 국민연금의 논란의 지점이 어디에있는지를 언론이 명확하게 짚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연금제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에 올린 글에서 조선일보의 기사를 바탕으로 글을 썼었는데, 그 글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상 문제는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국민연금의 금액이 20만원이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기초연금제도의 적용을 받을 경우 손해를 볼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국민연금의 제도개편을 통해서 기초노령연금을 20만원 지급하겠는 그 연금제도개편의 지점에 있다.


현재 기존의 연금지급금액이 책정되는 방식은 '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50%) + 전체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50%)' 을 통해 지급되는 방식이다. 즉 예를 들면 어떤사람이 국민연금을 2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10만원은 그 사람의 평균소득액이며, 나머지 10만원은 전체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 측정으로 나오게된 것으로 이 두 부분을 합쳐서 20만원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20만원 받았던 사람이 기초노령연금까지 받았다면 현행 30만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국민연금제도를 개편해 기초연금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 기초연금의 구성은 국민연금을 구성하는 '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전체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 에서 전체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 부분과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을 합쳐서 20만원을 만들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식으로 제도를 개편하면 기존의 연금제도에서 기초노령연금까지 합해 30만원을 받았던 사람은 '국민연금(10 + 10) + 기초노령연금(10)'으로 30만원을 받는 것인데 변화되는 제도에서는 '기초연금(20) + 가입자평균소득액(10)'으로 똑같이 30만원을 받으며 전혀 달라지는게 없는 것이다.


정말 황당하다. 오늘자 언론에서 인수위가 역차별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기존에 받는 연금에서 4~5만원 정도를 더 받는 수준으로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논란을 잠재우기위한 눈가리기용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기존에 공약했던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20만원 지급하겠다던 공약에서 너무나도 벗어난 제도임에 틀림없다. 연금제도의 복잡함을 이용해서 국민들을 조삼모사식으로 속이려는 태도에 화가난다. 빨리 인수위가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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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001)

One Fine Spring Day 
9.2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박인환, 신신애, 백성희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06 분 | 2001-09-28




영화 '봄날은 간다' 이다. 사실 필자는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필자가 봤던 한국 로맨스 영화중에서는 가장 잔잔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극단적인 설정(예를 들면 둘중 한명이 죽을병에 걸렸다든지.)도 없고, 아주 무난하면서도 잔잔하게 사랑을 다룬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나니 뭔가 복잡한 감정이 들었고, 영화를 이해하려하기 시작하니까 영화가 어렵게 다가왔다. 뭐 이 영화에 대해서 아는 동생 녀석과 이야기를 했더니 사랑 영화는 이해하려고 보는게 아니래나 뭐래나...





굳이 나오는 등장인물의 배경을 일일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나니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떻게 사랑이 변해가는지에 대한 과정 인것 같다.


시작은 극중 상우(유지태)의 할머니가 역에서 죽은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할머니는 죽은 할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자주 역으로 찾아가 기다리는 행동을 보인다. 이 장면은 나중에 상우가 후반부에 동일한 장면에서 할머니에게 울분을 토하는데, 이것은 할머니의 변함없는 할아버지를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계속된 기다림에 대한, 즉 자신이 믿었던 사랑에 대한 울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만남. 상우는 녹음실에서 오디오 녹음하는 일을 하고, 은수는 시골의 자연의 소리를 담아 들려주는 라디오 진행자다. 우연히 일을 같이하게 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상우는 은수와 함께 작업하면서 조금씩 은수에 대해 알고싶어한다. 하지만 은수는 이미 한번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상처가 있다. 누군가 걱정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마음에는 벽이 있다. 상우는 은수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만, 은수는 소화기 사용법에나 주목하면서 상우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과거의 사진첩을 보면서 젊었을때의 할아버지는 알아보면서도 나이 들고 나서의 할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늙고 변해버린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상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랑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상우는 지금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둘은 계속 함께 작업하며 더욱 가까워진다. 여전히 은수는 상우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지만, 그의 세세한 배려 덕분인지 은수는 상우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명대사.. 봄날은 간다가 원조였다..)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분명 은수는 상우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걸로 모자라 자고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분명 상우에게 저 말은, 은수가 자신을 다 받아들인 것 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섹스야말로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 아닌가? 하지만 은수에게는 함께 자는 것 또한 사랑의 과정이다. 여전히 가까워져가는 과정인 것이다.




은수는 자신이 자고 가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으면서도, 상우와 관계하는 것은 좀 더 친해진 후에 하자고 미룬다.




상우는 드러난 자신의 마음과 욕망에 부끄러워하지만 더이상 감추지 못한다.





은수는 한자리에 있는 무덤을 보면서 "저 무덤처럼 죽으면 같이 묻힐까?" 라고 묻는다. 상우는 대답하지 않지만 벌써 마음은 저 무덤과 같다. 영원히 함께하고 싶고,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일까? 은수는 저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상우와 같은 마음이 아닌 것 같다.






은수는 직장에서 상우와의 관계에 대해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상우는 은수의 그런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지만 은수는 둘의 관계가 알려지면 상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짤릴 수도 있고, 그러면 만나기 어려워지니까 그런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관계를 확실히 하고싶었는지 상우는 은수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꺼내지만 은수는 난감해한다.




결혼이야기를 꺼낸 상우가 부담감으로 다가왔을까? 일을하면서 만난 다른 남자 앞에서 또 소화기 사용법을 이야기하는 은수. 아마 이 지점에서 은수는 상우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우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은수에게 그 남자는 분위기 전환을 이야기 한다.





은수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어디었을까? 은수는 왜 여전히 상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가? 상우와 은수의 관계는 왜 변하고 있는가? 아니 정확히는 왜 은수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기는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분명한 것은 결혼을 이야기한 지점부터 은수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수가 이미 한번 결혼생활을 했었고, 그리고 이혼한 이후 결혼에 대한 상처가 있어 그 생활이 부담이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상우가 싫어서 그런 것인지, 아직은 상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은수는 상우에 대한 마음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상우는 여전히 멈춰있다. 상우는 은수가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게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필자처럼..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상우의 달라진 지점이다. 언제부터인지 상우는 은수에 대해 궁금해하고 은수의 지점에서 출발했던 자신의 사랑이 완전히 자기중심으로 변해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은수가 부담스러워하는 지점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필자가 앞에서 던진, 은수가 왜 그러한지에 대한 질문을 은수에게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는다. 그냥 '도대체 왜 나의 사랑은 이다지도 힘든 거지?' 에 그는 빠져있다.





은수가 떨어져서 시간을 갖자는 말도 상우에게는 헤어지자로 받아들여진다. 은수는 헤어지자일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상우는 받아들일 수 없다.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명언이 나온 장면. 영화는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상우의 저 말에 은수가 사랑한다고 대답했어도 상우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사랑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수는 분명 상우를 사랑했다. 하지만 상우에게 은수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고 거짓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장면. 상우는 아직도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화를 낸다. 자신도 은수를 기다리면서. 할머니와 똑같이 은수와의 좋았던 시간을 기다리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을 부정하고 싶고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롭다.




"여자와 지나간 버스는 기다리는게 아니란다." 하지만 할머니는 사랑이 변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기다린다. 사랑의 모습은 변화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다시만난 은수가 상우에게 다시 함께 있자고 말하지만 상우는 은수와 함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수에 대한 상우의 마음은 여전하다.




진짜 어렵다. 사랑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니. 이 영화에 대해 쓰면서 나온 결론이다. '사랑은 변한다'로 끝나는 것 같지만, 무언가 남았다. 사랑에 대한 모습은 변했지만 사랑에 대한 추억, 기억, 감정, 마음은 남았다.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수용해야할 사랑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 이것이 아닐까? 근데 난 모르겠네.. 모르겠네........(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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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쯤되면 대학교와 관련한 뉴스를 장식하는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대학교 등록금 투쟁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등록금과 관련한 뉴스가 쏟아졌다. 대부분의 대학이 동결에 가까운 수준의 인하를 하거나 등록금을 동결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은 대학의 등록금 인하율이 지난 10년간 50%에 가까운 인상율에 비해 현저하게 낮을뿐더러 반값등록금만으로 등록금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으로 대학의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필자도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서 반값등록금의 정책이 정치권에서 튀어나왔을때 혹하는 마음이 있었다. 안그래도 비싼 등록금을 반으로 깎아주겠다니. 여태까지 내가 빚내서 낸 등록금만 해도 천만원이거늘. 이게 웬일이래? 그것도 20대에겐 관심도 없던 정치인들이?


분명 대학교의 등록금은 비싸다. 필자가 대학교 입학할때 냈던 등록금이 정확히 495만원이었다. 당시에 학교 등록금을 두고 고등학교에서 같은반 아이들과 순위권 싸움을 한적이 있었는데 반에서 다섯번째로 필자의 학교 등록금이 비쌌다. 하지만 처음에 다가왔던 그 어마어마하던 액수는 몇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필자에게 무신경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려니. 뭐 내가 다니는 대학만 그런것도 아니고 등록금이 비쌌던게 하루이틀인가?


등록금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거나 그들의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등록금 인하를 위한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등록금보다 더 뼈저리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있을것이다. 특히나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서울의 메이저 대학이 아닌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느끼는 학교의 변화말이다.




등록금이 비싸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고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그것이 정치권의 커다란 이슈가 되고 선거철이 다가오고 하면서, 결국에는 반값등록금이 정책화 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반값등록금 정책이 확정되고 대학에 대한 등록금지원이 이루어지고 나서부터 대학교 감사와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정부가 모든 학교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수도 없거니와, 한국에 대학교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중 부실한 대학은 퇴출을 시키거나 자구적 노력을 통해 대학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게끔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의 지원을 위한 기준을 마련했고, 기준미달이 되는 학교를 부실대학으로 선정해 지원제한을 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부실대학에 대한 선정기준은 취업률, 재학생충원율, 전임교원확보율, 교육비환원율,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장학금 지급, 등록금과 관련한 대학의 재정건전성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대적 평가지표 외에 정부가 지정한 절대 지표로서 존재하는게 취업률, 재학생충원율, 전임교원확보율, 교육비환원율이다.


사실상 중요한 것은 바로 정부가 지정한 절대지표다. 저 절대지표중에 2가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부실대학으로 지정되 대출에 제한이 걸린다. 지난 2012년도 2학기 부실대학 선정에서 정부가 지정한 절대지표의 선정 기준은 4년제 대학의 경우 취업률 50%, 재학생충원율 90%, 전임교원확보율 61%, 교육비환원율 100% 였다. 이 기준에서 3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무조건 부실대학으로 선정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교 측에서 결국 신경쓰는 것은 취업률과 재학생충원율이다. 언론에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이 대부분 충족하지 못한 기준이 바로 저 두 지표다. 이렇다보니 학교측에서는 가장 민감한 지표가 되었다. 올해 들어서 지표의 비중을 조정했다지만 정부가 지정한 절대지표가 존재하는 한 저 비중의 변화가 의미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청년 실업이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들이 맘먹고 자기 마음대로 취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정부는 반값등록금 재정지원을 위한 부실대학 선정기준으로 취업률을 뽑아들었고, 이러하다보니 학교측에서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취업하라고 재촉이다. 어떻게 해서든 학생이 졸업을 하면 최대한 빨리 취업을 해야 학교도 살 수 있으니까 학생의 선택과 진로에 대한 고민은 학교가 더이상 책임질 영역이 아닌 것이다. 졸업여건에 취업캠프를 넣고 학생들에게 이거 안가면 졸업도 시켜줄 수 없다고 협박하며, 취업만이 살 길임을 대학생들에게 더욱 깊이 각인 시켜준다.


그런데다가 점점 취업과는 연관이 없는 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실상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학교의 취업률과 관련해 예술대나 인문대의 경우 일자리 자체가 굉장이 적고 취업의 문이 상당히 좁아서 취업률이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취업률 절대지표로 인해 학교는 취업률의 평균치를 깎아먹는 인문계와 예술계쪽의 학과를 가만히 둘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학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시키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학에서의 인문학과 예술의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한번 대학교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라. 과거에 대학교의 인문계열에 존재했던 학과들을 생각해보고 지금 대학교 홈페이지에 존재하는 인문계열 학과의 수를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학교의 경우엔 국제어학부, 문화콘텐츠학부, 아동학과만 존재한다. 이게 뭔가 대체.


고등교육을 배우고 배움의 자유라는 유일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대학교에 왔고, 등록금이 너무 비싸 등록금을 깎아달라는 요구를 했을뿐인데, 그 댓가로 대학생들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지금 어떤 고등학생이 자신이 배웠던 것을 더욱 심화시켜서 더 깊은 학문을 추구하고 싶어서 대학교에 간다고 한다면, 그 학생은 대학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은 그런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배움의 자유와 선택권에 대한 권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돈은 엄청 내는데 말이다. 한 학기에 500만원이라는 돈을 내고 내가 원하는 공부도 할 수 없다면 대학교는 왜 가야하는 것인가?


학생들은 이러한 대학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한다. 대학교에 등록금을 인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내고 배우는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더 분노해야한다. 대학이 취업스펙의 하나일뿐이라는 소리를 들었을때도 한국에서의 대학의 위상은 참 굴욕적이었는데 지금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해버릴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실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고등교육으로서의 대학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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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이 공략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지급안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계속될 것 같다. 어제 저녁부터 기초노령연금과 관련해 박근혜 당선인의 발언을 인용해 기초노령연금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실상 기사를 읽어봐도 뭔가 시원하게 해명되는 것 같지가 않다.


재정부분에 있어서 벌어졌던 논란인 재정조달과 관련해서는 조세확대를 통해 자원을 마련하겠다는 이야기로, 국민연금적립금 일부 사용을 통한 충당과 관련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 같다. 조세확대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자주 언급되었던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통한 재원마련인 것 같다. 이 방안으로 얼마나 세금을 충당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재정충당의 문제는 그렇다치고 지금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급대상에게 얼마만큼의 금액이 지원되는가이다. 국민연금가입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현행 받고 있던 기초노령연금 94,600원의 두배에 달하는 20만원의 금액을 받게 된다.(언론보도를 보면 97,100원이라고 되어있다. 보건복지부 사이트에는 2013년 3월까지 94,600원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연금가입자로 기초노령연금을 받게되는 사람들이다.





다른 언론보다도 조선일보가 가장 구체적으로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일단 기존에 기초노령연금을 수령하고 있던 소득하위 70퍼센트 중 국민연금가입자는 기본으로 97,100원이 국가에서 보장된다. 국민연금가입자도 10만원정도는 기본으로 국가에서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차등지급 부분이다. 기존의 국민연금 비가입자는 20만원을 기본으로 받을 수 있는데 반해, 국민연금가입자중 소득하위 70퍼센트는 국가에서 10만원만 지원을 해주고 나머지는 선별을 통해서 차등 지급 하는 것이다. 뒤에 언급되는 소득과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른 차등지급은 어떤식으로 진행될지 아직은 구체적 계획이 없어 미지수다.


따라서 국민연금가입자중 국가에 1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고, 연금이 20만원 안팎을 받게 되는 사람들에겐 지금 언급되고 있는 기초연금제도가 불만으로 다가올 소지가 크다. 사실상 연금을 내도 돌아오는 혜택이 연금을 내지 않는 사람과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금을 10만원을 받는 사람은, 100만원의 임금을 받는 사람이 10년동안 연금가입자로 납부를 이행했을 때 10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걸 내지 않아도 20만원을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10년동안 국민연금을 납부할만한 동기를 찾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이런 문제에 놓이게 될 사람들이 최소 74만명이다. 국민연금수령액이 20만원 미만에 있는 사람들은 아예 납부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한 금액을 수령하는 것에 대해 차별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 박근혜 당선인이 현행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의 대상자를 전원으로 바꾸고 그 금액도 2배로 인상하겠다고 한 공약이 재정의 문제로 인해 금액의 차등지급과 선별과정의 문제로 번지는 것이 안타깝다. 

사회복지시설에서 2년간 노인복지에 어설프게나마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올리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 분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은 작지만 정말 생계를 유지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돈이기 때문이다. 의료복지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만한 복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독거노인 어르신들은 연금으로 집세를 감당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삶을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분들이 제대로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고소득 어르신이나 연금을 많이 받는 어르신을 제외한 모든 어르신들에게 국민연금가입여부에 상관없이 2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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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키: 모태솔로 탈출기 (2013)

Love Strikes! 
6.8
감독
오오네 히토시
출연
모리야마 미라이, 나가사와 마사미, 아소 쿠미코, 나카 리이사, 마키 요코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일본 | 118 분 | 201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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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테키다. 아는 동생녀석이 추천을 해줬다.

 "형, 모테키 꼭 보세요. 형이랑 싱크로율이 거의 80퍼센트인 주인공이 나와요."

이게 무슨소리인가 했다. 나랑 싱크로율이 80퍼센트인 주인공?


내가 일본어를 좋아한다지만, 모테키가 무슨말인지 몰랐다. 모테키?


'모테키(モテ期) : 절정기'


즉, 최고조에 달한 시기라는 것이다. 오타쿠스러운 표지를 보아하니 대충 감이 온다.



(극중 남자주인공인 후지모토 유키오 역의 모리야마 미라이)


응? 뭐지? 피골이 상접한 듯한 이 얼굴과 외모.. 외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느낌이 필자와 너무 흡사하다. 이 영화에서 그는 서른 한살 먹도록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 한 번 못해본 세컨드 동정으로 나온다.(세컨드 동정은 잠자리를 가져본 경험은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 그에게 모테키는 있었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지만 영화의 배경은 드마라 모테키의 1년 후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여전히 서른 하나 먹도록 솔로에 사랑도 못해본 찌질한 남자인 것이다.




전형적인 솔로의 모습. 솔로는 여러 이유로 손가락에 잔 근육이 많다.





기자로 취직한 유키오는 취재를 다니면서도 동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커플을 저주한다던지





별 생각없이 말을 걸어온 여자를 보며, 온갖 자기만의 상상과 소설을 써 나가며 오해를 하는 모습까지.


하지만 그런 솔로에게 사랑이 자연스레 찾아올리가 없다. 이상하게 솔로들이 괜찮다고 생각한 여자들에겐 꼭 남자친구가 있지 않던가? 왜 그러하냐면, 솔로는 눈이 꽤 높기 때문이다. 솔로들이 외모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한 이성은 실제로 외모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솔로들만 그 사실을 부정할 뿐이다. "나 눈 낮아요. 근데 난 왜 연애를 못할까?"




(극중 마츠오 미유키 역을 맡은 나가사와 마사미)


그런 그에게 모테키가 찾아오는가? 그의 트윗놀음이 성공을 거둔 것인가? 트윗으로 우연히 알게된 마츠오라는 사람, 그 사람과 만남의 약속을 잡고 기대도 하지 않고 기다리던 그에게 나타난 마츠오 미유키는 엄청난 미인이었던 것. 게다가 취향도 비슷하고 이야기도 잘 통한다.




게다가 완전 외쿡인 마인드다.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그녀는 거침이 없다. 이런 여자 어디 없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는 도의를 지킨다. 그래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어. 골키퍼있는 여자는 건들지 않는게 도리야. 도리를 무시할 정도로 솔로에게 그런 패기가 있을리가 없잖아. 게다가 31년산 솔로라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랑에 매우 오랫동안 굶주려 있던 사람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다. 자신에게 키스까지 해버린 미유키에게 유키오의 마음은 벌써 다 넘어가버렸다. '고백하면 될꺼야. 우린 키스한 사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정신을 못차리는 그는 31년산 솔로다. 그에게 사랑은 여전히 현실이 아닌 소설이고 상상이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현실을 말한다. 미유키가 너를 좋아할리 없다고, 그런 여자는 모든 남자에게 그렇게 행동한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주위 사람들의 말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잘 대해주지만, 그에겐 분명 남자친구가 있다. 그의 소설과도 같은 사랑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항상 무너지고 만다.



(극중 에이아이 역의 나카 리이사)


소설같은 사랑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유키오에게 아이의 이야기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그녀는 유키오가 실은 미유키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게 아닌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유키오는 미유키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던 것이지, 자신이 정말 미유키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묻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유키오가 지금 고백해서 사귀게 된다해도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뼈있는 이야기를 던진다.




(극중 루미코 역의 아소 구미코)




그가 미유키의 태도와 행동에 의해 흔들리고 있으며,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은 루미코를 통해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루미코는 유키오에게 용기있게 고백하고, 유키오와 루미코는 잠자리를 함께한다. 유키오는 루미코와 잠자리를 가져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도 거부하지 못하고 자신을 그냥 내버려둔다. 자신은 미유키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표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연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세 사람. 결국 그는 루미코와 사귀기로 마음먹고, 미유키에게 루미코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해버린다. 그리고 그날 취재간 공연의 진행을 맡은 사람이 미유키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또 한번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사랑에 좌절감이 몰려온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에게 루미코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미유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루미코는 그를 마음으로 좋아하고 용기있게 고백하지만, 미유키에게 집착하는 유키오는 자신의 처지와 남자친구가 있는 미유키의 상황을 따지며 스스로 자신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며 미리 좌절한다.

'나같이 초라한 놈이 미유키와 이루어질리가 없잖아. 미유키는 완전 이쁘고 죽이는데..'





유키오는 마지막까지 찌질하다. 미유키의 남자친구가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그 사랑은 잘못된 것이라며 날뛴다. 하지만 여전히 그건 자신의 사랑과는 관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유키오는 인지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고 있는 자신,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인데 말이다.



리뷰를 다 쓰고나면서 보니 모테키는 전형적인 사랑에 대한 영화였다. 솔로들에게 무슨 희망적인 메세지를 던져주기 위한 영화는 아니다.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인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여배우들은 이 영화의 서비스. 난 나가사와 마사미 보다도 나카 리이사가 더 좋다. 너무 귀여우면서도 섹시해..


어쨌든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보기를 추천한다. 필자는 드라마는 보지 않았지만,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드라마도 꼭 봐야겠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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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초대장을 받고 티스토리 블로그 세상에 들어왔다. 사실 어제 토요일 내내 이 초대장을 받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쉽게 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아침부터 굽신거리며 초대장을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댓글을 남기고 다녔지만, 나에게 초대장은 주어지지 않았다.


꼭 이래야 되나 싶었다. 네이버 블로그도 있는데 굳이 티스토리 블로그를 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이상하게 이 초대장 받는게 어려워지니까 더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그리고 겨우 어젯밤쯤에 초대장이 온 걸 확인하고 상당히 들떠서, 새벽알바를 하는 동안 집에가서 얼른 블로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시작하는 블로그는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분명히 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에 있어서 말이다. 전문적인 글을 쓸 수는 없다. 내가 너무나도 지식이 얕고 부족하며 어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통해서 좀 더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한동안 글을 정말 안 썼다. 지인들이 싫어해서. 그래서 지인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맘 껏 싸질러야지.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대권을 주신분에게 너무 감사하다. 주신분 블로그에 가서 방명록을 남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방명록이 입력이 안된다. 그래서 인삿말도 못남겼다. 인삿말 남기는게 매너인데.. 여하튼 너무 감사합니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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