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2002)

Sympathy For Mr. Vengeance 
8.4
감독
박찬욱
출연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 임지은, 한보배
정보
스릴러, 범죄 | 한국 | 120 분 | 200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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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어딘가에서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계급모순'이었다는 어느 블로거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보게된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직관적으로 오는 느낌을 한마디로 하자면 "존나 잔인하다." 이렇게 자극적인 영화로 인해서 계급모순이라는 것이 잘 드러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대부분의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이게 뭐지?' 라는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다 뒈지니까.




이 영화를 복수하는 착한 사람과 복수 당하는 나쁜 사람. 또는 윤리적인 사람과 비윤리적인 사람의 대결로 보면 답이 안나오는 영화다. 그렇게 보지말라고 이 영화는 친절하게 나오는 사람들을 다 죽인다. 복수 한사람도 죽고, 복수 당한 사람도 죽는게 이 영화의 결말이다. 결국 착한놈도, 나쁜놈도 없는게다. 따라서 이 영화를 선과 악의 구도로 본다면 이 영화는 그냥 엽기적인 영화일 뿐이다.




그럼 계급모순을 생각하면서 영화로 들어가보자. 영화를 보면 극중의 류는 노동자다. 아픈 누나를 위해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나 열심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렇다고 그가 이런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의 심성은 착하다. 누나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지나가는 이웃에게도 신경써주려는 사람. 그러던 그는 이유없이 해고당한다. 회사의 새로운 방침과 이익에 따라 정리해고 당한 것이다. 류는 회사에 실컷 사용당하고 버림받았다.




회사에서까지 해고를 당하고 누나를 살릴 뾰족한 수가 없어진 류는 결국 장기매매를 하기로 한다. 업자들은 류에게서 신장과 천만원을 받고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당연히 이는 구라였다. 류는 속았고 그는 업자들에게 착취당한 것이다.




21일 후, 병원을 찾은 류는 희망고문과도 같은 소릴 듣는다. 누나에게 신장을 이식해줄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천만원을 요구한다. 병원장에게 문제는 다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돈이 있다는 전제하에. 류에게 있어서 회사나, 장기매매업자나, 의사는 다 똑같은 놈들이다. 류를 노동으로든 돈으로든 장기로든 착취하는 인간들이고 류는 착취당하는 인간이다. 류는 결국 자신의 힘만으로는 누나를 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류와 그의 여자친구인 영미는 왠 사장 딸을 유괴해서 돈을 요구하기로 계획한다. 이로 인해 사업가인 동진의 딸은 납치 아닌 납치를 당하게 된다.




동진은 한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으로 여느 자본가와 다를바 없는 사람이다. 회사의 구조조정에 의해 오랫동안 충성해왔던 노동자를 잘라야하는, 즉 자신의 회사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는 가차없이 버릴 수 있는 자본가인게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본가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가장이고 딸을 위해 열심히 회사를 운영한 아빠이다. 가난한 시절을 이겨내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 지금에 올라온 경영가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된 것. 그리고 그로 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 밖에 없다.




그런 그는 딸을 잃었다. 왜? 돈 때문에. '유전무죄'라고 돈이 많은게 무슨 죄인가. 하지만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딸은 돈 없는 자의 표적이 되었고 그로인해 그의 딸은 죽어버린 것이다. 물론 딸이 죽은건 딸이 실수로 물에 빠져서이지만 사실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자본가인 동진은 딸을 잃은 순간 자신의 돈을 노린 사람들이 모두 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각성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동진은 자신의 돈을 노릴 만한 사람을 용의선상에 놓고 찾아다니다가 전에 자신이 해고했던 노동자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일가족이 약을 먹고 자살한 현장을 보게 된다.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일까? 대답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그 노동자가 동진에게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화해할 여지를 몇가지 두었다. 동진은 자본가였지만 자신의 딸을 죽인 사람을 추적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악랄한 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동진은 노동자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본가와 노동자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복수극인 이유다.




결국 서로의 적을 무찌르며 최후에 만난 자본가의 대표 동진과 노동자의 대표 류의 싸움은 동진의 딸에 대한 복수와 승리로 끝나는 것만 같았다. 동진은 류를 찾아다니면서 류의 상황을 알게된다. 그는 류를 이해할 수 있다. 누나를 살리기 위해 청각장애를 가진 가난한 그가 할 수 있었던게 이것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안다. 하지만 그는 그를 용서하길 거부한다. 똑같이 소중한 사람을 위해 행동했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동진은 류를 용서할 수 없다. 내 돈을 노리고 빼앗은 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동진은 딸을 잃었으니까.




류도 마찬가지다. 딸을 잃은 동진이 자신을 찾아다니고 자신의 여자친구를 죽인 것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진은 피할 수 없는 적이자 여자친구를 죽인 사람이다. 노동자로서 착취당하고 가진 것이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다. 싸우고 죽이는 것 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착취한 장기매매자를 무참히 죽이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계급모순의 영원한 순환을 끊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에서는 절대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나왔던 설국열차 역시 마찬가지의 메세지를 담고 있지 않았는가? 열차를 파괴하는 것이 열차에서 벌어지는 계급모순을 끝내는 유일한 길인 것 처럼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과 모순은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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