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 녀석이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나진 오늘 경기를 보니 리빌딩이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아마 블레이즈와의 마스터즈 경기를 본 것 같다. 보지는 못했으나, 경기 결과는 나진의 승리.


친구놈이 괜찮다고 한 것은 경기력이었을 것이다. 리빌딩 이전의 나진소드의 경기력은 분명 하락세였다. 그리고 분명 리빌딩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도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진소드의 리빌딩은 뭔가 안타깝고 아쉽다. 너무너무.




아 그리운 나진 소드여!..


나진 소드가 나진 소드인 이유.


나진 소드가 왜 나진 소드인가. 왜 나진 소드가 CJ팀과 더불어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그 요인에는 바로 저 선수들이 있었다. 특히나 나진 소드에 막눈(윤하운)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진소드의 전성기 시절에도 경기력의 논란은 있었으나, 나진 소드는 소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화끈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저 막눈이 있었다. 지금이야 탑이라는 포지션 자체가 팀을 지탱해주는 탱커로서 역할이 상당히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나진 소드가 활약할 당시의 시즌2와 시즌3에만 해도 탑이 하드캐리하는 그림이 종종 나오곤 했다. 그래서 탄생한 스타가 플레임, 샤이, 막눈이었고.


막눈은 플레임과 샤이보다 더 공격적인 스타일의 탑 유저였다. 그리고 그는 항상 경기에서 캐리를 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욕심은 다이브로 나타났다. 과감하게 적진에 파고들어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즐겁게 했다. 물론 그게 때로는 독이 되고, 패배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떄문에 '나진 소드'라고 하면 언제나 공격적인 플레이를 지향하는 팀. 다이브를 즐기는 팀으로 각인되었다. 나진 소드가 공격적이지 않으면 그건 나진 소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나진 소드를 만든 것은 다름아닌 저 5명의 게이머였다.



팀의 간판 스타 대접이 그 팀의 명성을 좌우한다.


이랬던 나진 소드가 2013년 여름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팀의 간판인 막눈이 계약 만료로 나진 소드를 나가게 된다. 2013 스프링 시즌의 부진에 대해 여러 말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막눈이 팀을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진이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곧 나진 소드와 다름없었으니까.


지금도 의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막눈과 나진을 갈라서게 한 것인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진에게 이는 상당한 도박이었다는 점이다. 팀의 인기와 실력, 그 모든 것을 따져보아도 당시의 막눈을 대체할 만한 게이머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실상 소드의 탑을 새로 키우는 것과 다름없는 결정이었던 것이다. 이 결정 이후 나진 소드는 계속된 내리막의 길을 걷는다. 물론 NLB와 중간에 나간 롤드컵에서는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과거의 명성을 생각하면 성적과 팀컬러 모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진 소드의 팬들은 나진을 응원해왔다. 성적이 부진하더라도 나진 소드를 대표하고 있는 선수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의 대대적인 리빌딩에 나진 소드 팬 대부분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축구팀에서도 그 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선수가 있으면 레전드로 대접을 해준다. 그 선수의 경기력이 떨어져도 쉽게 선수를 팔거나 팀에서 내보내지 않으며, 은퇴할 때엔 레전드로서의 대접을 해준다. 그런데 이번 나진의 리빌딩은 막눈과 재계약을 하지 않을 때보다 더한 처사였다. 시즌 도중에 리빌딩을 발표하고, 그 명단까지 공개해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이다. 나진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과 지금의 나진 소드를 만들어낸 선수들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 있을까? NLB결승전을 치러야 했던 선수들이 그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라는 것을 확정받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E스포츠 역시 성적으로 말하는 경기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성적이 안 나오는 팀이 계속된 인기를 구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적만이 그 팀의 인기를 좌우하는 것도 아니다. CJ프로스트와 블레이즈가 과거보다 성적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다수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에는 원년 멤버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단순히 성적이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는 요소가 그들에게 있다. 압도적인 서포터 실력을 통해 신이라 불리는 메드라이프, 팀원 모두가 잘생긴 외모로 인기를 구가했던 블레이즈와 여전히 그 팀의 얼굴을 담당하는 플레임. 다이브로 유명했던 막눈과 도도리아 프레이. 이들 모두가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것을 넘어 롤이라는 대회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팬들은 이 아이콘을 따라 움직인다.


실력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많다고 해서 선수들을 존중하지 않고 내치는 프로게이머단의 처사는 팬들을 화나게 하고 E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꺾는 계기가 된다. 선수단의 변경에 대한 그들의 권한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겠으나, 팬들과 선수들을 생각한다면 좀 더 신중한 결정과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굿바이 나진 소드.

Posted by honjo
,

얼마 전 친한 친구A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오랜만에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대학교의 선교단체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대학생활을 보내던 독실한 친구B놈이 졸업을 하고 나자 극심한 회의감에 빠졌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친구B가 회의감에 빠진 이유가 궁금했다. 친구A놈은 말했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만났다는 간증으로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간증에 박수를 치고 감동을 하는 광경을 교회에서는 자연스레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런 교회의 간증에 익숙해진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착각에 빠지곤 한다. 너도 만났고, 나도 만났고. 그러니 너도 만날 테지.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예컨대 불신자가 기독교인에게 '당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나에게도 보여줄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 기독교인은 어떻게 대처할까? 아마 100이면 100 이렇게 답할 것이다. 교회에 다니세요. 성경을 보세요. 기도하세요. 정말 이것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다는 기독교인들의 대답에 나는 친구B놈을 반례로 제시할 수 있다.


많은 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이런 것을 했음에도 만나지 못했다면, 노력과 간절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것은 너무 주관적이다. 내가 볼 때 친구B놈은 단언컨대 어떤 기독교인보다도 성경을 열심히 읽었고, 기도했고, 교회와 공동체에 헌신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친구A는 몇 년 전부터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다. 신앙생활로 하는 것이라곤 집에서 성경 좀 보고, 기도 좀 하는 것이 전부가 된 녀석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하나님을 만났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너는 네가 만난 하나님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친구는 어떻게 하면 증명이 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네가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도 경험할 수 있으면 증명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잠깐 철학적인 이야기이지만, 개인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내가 경험한 것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믿음은 누구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이것은 컴퓨터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누구도 여기에 반박할 수 없다.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누가 거기에 터치를 할 수 있는가? 아무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생각을 하나의 사실이나 지식으로 증명할 경우 문제가 일어난다. 스마트폰을 보며 '이것은 컴퓨터다.'라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고 이것을 사실로 내세울 경우 이를 정당화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 컴퓨터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이라든지, 속성이라든지 뭐 그런. 그리고 그것이 정당화되고 받아들여지면 주장은 하나의 사실과 지식이 된다.


지루한 소리를 좀 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저 정당화다. 신을 경험했다는 친구의 주장을 정당화할 근거를 보여주었으면 했다. 그가 신을 경험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까지 내가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나 지식이 되려면 정당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친구A는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친구의 주장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친구A)을 통해 나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와 바로 관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누구도 하나님의 경험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직접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친구의 주장이 실존철학의 시초라고도 불리는 키에르케고르의 주장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신과 만나는 '단독자'라는 주장을 통해 교회의 교리나 기독교 윤리를 통해 만나는 하나님이 아닌 직접 신과 대면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주장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직접적 만남에는 '감성'이든, '이성'이든 그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다. 완전히 발가벗은 존재 그 자체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답답해진다. 존재 그 자체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교회의 그 어떤 요소도 직접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다. 그럼 인간은 신을 만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1.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2. 무슨 짓이든 해본다.


사실 1번이든 2번이든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키에르케고르의 주장도 인간의 입장에서 의미가 있지, 저 신이 없다면 말짱 꽝이다. 


좀 억지를 부려 친구A와 B를 저 1, 2로 나눠보자면, 친구B는 거의 2에 가깝게 행동했고, 친구A는 거의 1에 가깝게 행동했음에도 친구B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며, 친구A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한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 가지 사실은 지극히 종교가 사적이고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무한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으나, 누구에게는 정말 손톱만큼도 의미가 없는 게 바로 종교이고 신이다. 그리고 이를 구분 짓게 하는 것은 바로 저 믿음이다. 증명되지 않는 믿음. 믿음이라는 속성 자체가 사적이기 때문에 증명을 요구받지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래서 종교는 사적일 수밖에 없다.

'단상 >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의 성  (0) 2014.10.08
동성애를 보고 날뛰는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2) 2013.09.09
Posted by honjo
,

ⓒ연합뉴스


어제죠. 축구대표팀 명단이 드디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발표되자마자 인터넷이 난리가 났습니다. 홍명보 감독의 "엔트으리"에 대한 비아냥이 상당하더군요. 원칙과 실력이 결국에는 인맥 축구로 귀결되었다며 실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수 선발이 감독의 고유 권한이라며 두둔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속팀에서의 출전과 활약 여부를 통해 선발하겠다던 원칙을 깨고 올림픽을 같이 겪었던 선수를 12명이나 선발(부상으로 가지 못한 선수까지 포함하면 15명)한 결정에 의문부호를 달지 않는 게 이상하죠.


그럼 과연 홍명보는 인맥 축구를 한 것일까요? 전 그렇다고 보지 않습니다. 가장 큰 논란이 된 박주영의 발탁과 이번 홍명보의 아이들이 대거 선발된 것에는 한 가지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의 전술을 잘 이해하고 오랫동안 경험했던 선수들이라는 것이죠.


홍명보의 원톱 고집


올림픽대표 시절부터 홍명보 감독의 고민은 공격수였습니다. 그리고 와일드카드로 박주영을 발탁했죠. 왜 홍명보 감독이 계속 공격수를 고민했을까요? 바로 원톱 전술의 고집 때문입니다. 올림픽대표 시절부터 홍명보 감독이 주로 사용한 전술은 4-2-3-1 전술이었습니다. 미드필더를 많이 가져감으로써 수비의 안정감을 높이고, 공격에서는 측면 미드필더와 원톱의 다재다능함을 통해서 2선에 공격을 지원하거나 가능하다면 원톱이 마무리하는 식의 축구스타일을 고집했죠. 따라서 최전방 공격수는 홍명보 감독에게 정말 중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승리를 위한 전술의 핵심 역할이니까요. 몸싸움과 패스는 기본이고 결정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박주영이 선택된 것이죠.


이번 국가대표에서도 그 전술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근데 문제는 대표팀 선수들을 소집하면서 꾸준히 그 전술을 시험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공격도 살아나지 않았고, 수비도 계속 불안함을 노출했죠. (홍명보의 지금까지 국대 전적은 5승 3무 6패(14경기, 15득점, 17실점)) 원톱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김신욱의 경우, 유럽파의 시험무대와 박주영 발탁 전까지 거의 부동의 원톱 역할을 해왔습니다만, 득점력에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다시 꺼내 든 게 박주영입니다. 그리고 일어난 것이 원칙 논란이었습니다. 홍명보도 분명 이런 논란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았겠으나 박주영을 고집합니다. 소속팀에서의 실력을 떠나 원톱 역할로서 다재다능함을 가진 선수가 박주영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죠.


이쯤 되면 원칙도 원칙이지만,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왜 꼭 원톱 전술이어야 하는가. 다른 전술을 통해 대안을 마련할 수는 없는가. 그런데 홍명보에게 이러한 선택지는 없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홍명보 감독이 다른 전술을 사용한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전술이 공격적으로나 수비적으로나 부진했음에도 말이죠. (공격은 해외파의 합류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수비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미국으로 A매치 경기를 하러 갔을 때도 가장 신경 쓴 것이 아마 이 부분일 겁니다. 공격보다도 수비 조직력의 점검이 더 중점적이었겠죠.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전술적 변화가 국대에서는 도박이기도 합니다. 조직력을 쌓을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커다란 전술 변화는 선수와 국대 경기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도 하죠. 사실 그래서 더 빠른 결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홍명보는 자신의 전술을 수정하지 않았고, 결국 대안은 박주영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전술 속에서 검증된 선수와 함께


런던올림픽에서 같은 전술로 동메달을 딴 것은 분명 성과입니다. 그리고 홍명보감독과 선수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죠. 그리고 이후 국가대표팀을 맡은 홍감독의 입장에서 자신의 전술이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않고 큰 전술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면, 선택은 하나밖에 없는 거죠. 자신의 전술 속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을 대거 발탁하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 대표팀 명단은 이해가 가는 명단입니다. 자신의 전술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고, 성공 사례도 있다고 한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거죠. 문제는 언론에서 밝혔던 원칙입니다. 박주영뿐만 아니라 몇몇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활약이 없는 경우가 있음에도 발탁해 자신의 원칙에 모순되는 상황을 만든 것이죠.


그렇다면 결과는?


이제는 명단이 정해졌고 더는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를 내야 할 텐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요? 초 치는 것 같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유는 홍감독의 전술이 너무 뻔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월드컵을 치르는 상대 팀에게 우리나라는 전술을 너무 대놓고 노출하고 있습니다. 매번 같은 전술이었죠. 같은 수법을 계속 보여주는데 다른 팀이 대비하지 않을 리가 없죠.


아마 우리나라는 측면이 활약을 못 하고, 박주영이 고립되면 공격에서 실마리를 풀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겁니다. 이건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홍감독의 4-2-3-1의 약점입니다. 2선의 미드필더는 수비에 중심이 있지, 공격에 중심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측면과 원톱의 활약이 절대적이거든요.


홍명보 감독 입장에서는 박주영의 발탁이 정말 도박입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 것이고, 월드컵 이후 감독직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론이 정말 좋지 않거든요. 어쨌든 결과는 지켜봐야죠. 이렇게 까도 저는 대한민국 응원할 겁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니까요.

'단상 >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vs 알제리 리뷰  (1) 2014.06.23
Posted by honjo
,

침몰 사고 보도하는 CNN과 MBC의 차이? ‘부끄럽다’ vs ‘악마의 편집’

JTBC 앵커 “친구 사망, 아나?” 구조 여학생 ‘울음’

김문수, 세월호 참사 자작시 사과에도 '진정성 논란'

'기념사진 공무원' 안행부 송영철 국장 직위해제, 진중권 "이정도면 일베수준" 일침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 세월호 침몰 사고에 ‘색깔론’ 발언 논란

 

 

 

ⓒMBC

 

이 이외에도 많겠지만, 이쯤 되면 정말 이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인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타인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하고 무심한지 세월호 사태가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막 구출된 구조자에게 친구의 사망 소식을 직접 묻는 언론이나, 사고로 사람이 실종된 상황에서 돈 계산을 하는 언론이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 사이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겠다며 비키라고 하는 국가의 고위 관료나, 말 하나를 해도 조심해서 해야 할 정치인이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학부모를 위로한답시고 시를 올리는 행동이나, 세월호 사태에 극단적 정치의 발언을 일삼는 행동이나. 모두가 지금의 사태를 몸으로 크게 느끼고 있다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사회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

 

총체적인 사회의 시스템 구축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시스템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들 그 시스템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다. 이번 세월호의 사태도 마찬가지다. 비상사태에 따른 행동 요령을 선장이 몰랐을까? 그런 것을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그런 메뉴얼을 지키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을 내버려 두고 혼자 탈출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국민적 분노를 샀다.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좋은 환경을 구축해 놓은들 이를 따르는 사람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세월호의 선장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버젓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시스템을 지적하기에 앞서 진정으로 이 사회 전체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반성이 아니다. 전 사회적인 반성이 필요하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인에 대해 무심하며 무감각한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Posted by honjo
,



모즈 시즌1은 이미 다음 분기에 시즌2의 연속 방영이 확정된 드라마로 이번 분기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일단 연출부터 상당히 공을 들인 느낌이 든다. 이번 분기에서 가장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드라마.





사실 이 드라마를 2화까지 봤는데도 이 드라마가 어떻게 진행되어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테러의 발생 이후 테러의 뒤에 숨어있는 거대 조직과 여러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주인공의 수사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인데 주인공의 가족, 주인공이 소속된 공안 조직, 주인공에 맞서는 다른 범죄 조직들의 상황과 이해가 얽혀 너무나도 많은 스토리 진행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건을 조사하면서도 서로의 이해가 달라 갈등하는 이 3명의 구도는 드라마의 흥미를 더 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3명의 캐릭터의 각각의 행동을 통해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되어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연출과 스토리, 배우(니시지마 히데토시, 카가와 테루유키, 마키 요코)의 연기력이 더 해져 이번 분기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공산이 큰 드라마다. 어쨌든 이번 분기에서 제일 강추하는 드라마.

Posted by honjo
,



우에노 주리의 3년 만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앨리스의 가시다. 보면 알겠지만, 악덕 의사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의사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가 희생된 병원에 들어가 복수를 하는 내용.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일드는 1화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1화에서 모든 설정과 앞으로의 진행의 실마리를 거의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앨리스의 가시는 그렇게 스케일이 큰 드라마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반전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아주 무난한 복수극이 진행될 것 같다는 느낌. 1화와 2화를 봤지만 정말 그냥 무난하다는 느낌.







이번 작품을 보고 노다메와 너무 달라진 우에노 주리의 모습에 놀랐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나는 라스트 프렌즈로 우에노 주리를 본 게 마지막이어서 그런지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라스트 프렌즈라는 작품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에노 주리는 그 작품에서 동성애의 아픔을 너무 잘 그려냈고, 노다메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남성적 느낌의 캐릭터를 너무 잘 소화했다(우에노 주리의 진정한 매력을 그 때 알아버렸다.). 하여튼 이번 드라마에서도 이런 우에노 주리의 연기력은 훌륭하다.





이번 앨리스의 가시를 한자와 나오키의 의학판이라고 하는 글도 간간이 보이는 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앨리스의 가시는 철저한 복수극 드라마다. 선의 입장에서 악을 징벌하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다. 앨리스의 가시에서 우에노 주리의 캐릭터는 보고 있으면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도, 통쾌하고 시원하다기보다는 꺼림칙하고 거부감이 든다. 애초에 그녀의 목적이 악의 징벌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복수이고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자와 나오키는 한자와와 맞서는 인물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와 책임으로서의 복수가 진행된다. 게다가 한자와는 "당하면 당한 만큼 갚아 준다. 배로"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느낌으로 간 것이 아니라, 철저히 상대방의 판에서 상대방과는 다른 방식으로 복수를 진행해 나갔고, 결국은 상대를 스스로 굴복하게 만드는 결말을 보여주어, 복수 이상의 권선징악의 통쾌함을 선사했다.


어쨌든 이 드라마는 유쾌하지 않고, 통쾌함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끝날 때까지 지금의 음울한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갈 가능성이 크다. 아마 시청률도 갈수록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1화만 봤는데도 좀 지친달까. 연출이나 배우의 연기력은 나무랄 게 없지만, 스토리가 너무 단순해서 앞으로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는 드라마.

Posted by honjo
,

어제저녁까지 뉴스와 언론 보도를 지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구조작업이 거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다퉈야 하는 상황임에도 사실상 어제 24시간을 날린 것이다.

 

어제까지 허탕만 친 구조 작업

 

구체적으로 보자. 잠수부의 선체 진입은 바다의 빠른 유속과 잠수시간이 3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단순히 잠수해서 내려갔다 올라오는 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10분이기 때문에 내부 진입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선체 내부를 수색하면서 작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내부 진입 자체도 단 한 번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어제의 언론 보도였다.

 

이러다 보니 그렇게 많이 언급된 에어 포켓의 여부도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에어 포켓이 있다 한들 공기를 주입하려면 선체 내부에 잠수부가 직접 진입해야지 가능한데 이것이 되고 있지 않으니 사실상 공기 주입이 불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공기 주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JTBC

 

구조 작업의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크레인

 

 

지금까지 외부에서 선체로의 진입이 모두 실패한 상황에서 남은 방법은 선체를 절단하고 내부로 진입하는 것이다. 근데 어제까지도 그 작업을 하지 못했다. 물에 떠 있는 선체 앞부분에 에어 포켓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앞부분을 절단할 경우 배가 가라앉아버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변수가 될 수 있는 크레인이 왔다. 선체 전체를 들어 올리는 작업은 당장 불가능한 것이 맞다. 게다가 생존자가 있다고 가정하는 상황에서 선체를 뒤집고 물을 빼야 하는 인양 작업은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선체 앞부분만을 어느 정도 들어 올린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선체를 절단하고 진입하는 작업이 배의 앞부분이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크레인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이런 작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시간이 없다. 사망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생존 확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구조 체계를 잘 갖추고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서 빨리 구조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단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 실종자 가족들과의 직접 인터뷰가 공개되고 정부와 관계자들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공영방송과 주류 언론이 얼마나 부실한 보도를 하고 있는지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제발 언론도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고, 정부도 제발 제대로 된 구조 작업과 체계를 보여주어서 실종자 가족들을 안심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honjo
,

먼저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과 승객들이 무사히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제 벌어진 진도 여객선의 참사로 나라가 침통하다. 결혼해서 이제 막 자식을 양육하기 시작한 몇몇 지인들은 대부분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말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 역시도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마음에서 올라오는 답답함에 짜증이 났다.

 

근데 사실 나를 더 짜증 나게 한 것은 언론보도였다. 구조인원의 오보도 오보지만, 도통 쓸모 없는 감정 소모식 기사가 난무하고 있는 것 때문이었다. 단적인 예가 부모와 자식의 카톡, 문자 내용 공개와 군대 투입의 숫자 보도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세월호 탑승 학생 카톡 눈물

 

 

감정을 자극하는 문자 내용 공개 ⓒsbs

 

기사 전달의 핵심은 팩트이며,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상황의 변화다. 그런데 지금 언론의 보도를 보면 현장취재와 구조현황파악이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나 관계자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언론이 낼 수 있는 기삿거리가 군대 투입의 숫자, 부모와 자식의 카톡 내용, 시민들의 반응 등의 감정적 내용밖에 없는 것이다.

 

언론이 취재하는 것을 관계자들이 막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조난 보도에서 현장상황을 실시간으로 취재해 보여주지 않고 있는 언론의 보도 실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계속되는 감정 소모 식의 기사의 노출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판단을 흐리게만 할 뿐이다.

 

제발 언론이 제대로 된 보도를 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실이 없다면 보도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 감정을 파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본에 찌든 언론이라도 기본을 지켰으면 좋겠다.

Posted by honjo
,

여고생의 죽음, 성형 대국 위한 불가피한 희생?(프레시안 기사)

 

답 안 나오는 갑갑한 기사를 봐버렸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항상 이런 식의 노답 기사를 접하게 되곤 한다. 인간을 사고파는 시점에서 시작된 인간의 상품화가 결국에는 인간의 외모까지도 개조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이 사태를 결국 다시 인간의 노동이라는 관점으로 돌아가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

 

근데 이걸 해결할 수 있을까? 맑스 말대로 노동자의 혁명이라도 일으켜서 자본주의를 엎어버리고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려 있고, 모두가 자본주의에 익숙해져 있는 지금이라면, 자본주의를 바꾸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윤리적 가치를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막아보겠다는 건 더더욱 나이브한 생각이다. 자본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환의 즉각적이고 분명한 현상을 사람마다 다르게 가진 윤리적 가치로 막아보겠다? 이것이 가능했다면 성형수술의 붐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성형수술에 대해 "인조적이다. 다 똑같이 생겼다. 로보트다." 라고 하면서 비하하는 사람을 자주 접할 수 있지만, 그런 현상은 전혀 성형 수술의 증가 추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맞추어야 할 초점은 의료 사고

 

성형수술을 하는 현상에 대해, 그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식의 논쟁은 더는 무의미하다. 자본의 사회에서 내가 내 돈 주고 외모를 고치겠다고 할 때, 뭐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성형을 하고 싶고, 해서 내가 잃는 것 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면 당연히 성형을 선택할 것이다.

 

 

(쌍꺼풀 수술은 수술도 아닐 만큼 성형은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문제는 의료사고다. 성형수술이 빈번하기 때문에 의료사고도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형수술을 받는 사람은 돈을 내고 의료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서비스가 잘못되었다면 응당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런데 프레시안의 저 기사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초점은 성형 수술 현상에 있지, 의료서비스에 있지 않다.

 

성형수술이 늘어나는 추세와 그 원인에 대한 지적이라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성형수술 의료사고에 의료민영화, 인도주의, 윤리라는 단어를 끌어들이면 문제는 복잡해지고 붕 뜰 수밖에 없다. 성형수술이 범죄가 아니며, 그것이 시장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면 남은 것은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성형수술 의료사고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법률 적용과 감시가 필요하다. 이것이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Posted by honjo
,

일단 먼저 이 글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견해라는 것을 밝혀두고 가는 바이다. 무도가 지금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예능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거니와, 예능으로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겨난 팬덤 또한 무시할 수 없으므로 먼저 사족을 달고 간다.

 

 

 

 

무한도전 위기설이 솔솔 피어나는 요즘, 과연 무한도전은 위기가 맞을까? 나는 위기라고 생각한다. 기사가 지적하는 시청률 하락 때문이 아니다. 방송을 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예능에 시청률 잣대를 들이대 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무한도전은 신생 예능이 아니니 말이다. 문제는 웃음이다. 예능이 재미가 없고 더 이상 웃음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위기다. 근데 요즘 무한도전? 솔직히 말해 재미없다. 그렇다면 왜 재미가 없을까? 몇 가지 이유를 대 보겠다.

 

1. 캐릭터 실종

알다시피 무한도전은 예능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후반기에 들어온 길을 제외하고 6명의 멤버들을 보자면 정말 무수한 별명이 무한도전에서 양산되었고, 이는 멤버들의 타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얼마나 많은 별명이 있는지는 엔하위키에서 멤버들의 이름을 검색해보라. 그리고 무한도전에서 있었던 멤버들간의 관계 설정도 생각해보라.). 무한도전의 캐릭터는 무한도전이 어떠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하더라도 무한도전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자 힘이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기반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캐릭터가 사라졌다. 덩달아 스토리도 없어졌다. 어느샌가 멤버들이 가지고 있던 별명과 캐릭터가 드러나거나, 언급되지 않는 상황에 와버렸다. 누구는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프로그램을 하면서 상대의 모든 것을 다 알만큼 익숙해진 것과 친밀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과거 초창기에 무도가 멤버들의 삶의 폭로를 통해서 이야기를 생산해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의견에 충분히 공감할 만 하다. 그들은 이제 폭로를 하지 않는다. 각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삶이 정형화되고, 무한도전에서의 시간도 익숙해지면서 더는 폭로할 것이 없어진 것이다(폭로할 것이 있다면 가정사인데 아무래도 이는 안되나 보다.).

 

2. 토크 실종

토크 실종의 상징적인 모습을 하나 꼽자면 바로 유재석이다. 과거 무한도전에서의 유재석의 역할과 지금 무한도전에서의 유재석의 역할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낀다. 지금의 유재석은 말이 많다. 사실 말이 많아진 것인지, 상대적으로 멤버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무엇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유재석은 과거보다 말이 많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에는 분명 멤버들이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특히 하하, 노홍철, 박명수는 당시 캐릭터답게 주도적으로 떠들어댔다(정준하, 정형돈은 받아치면서 토크에 들어왔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유재석의 역할은 멤버들의 끝나지 않는 토크를 정리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해가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재석이 토크를 주도하고 있다. 유재석이 말을 하고 멤버들이 끼어드는 식이다. 

과거 유재석은 무한도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긴 했지만, 그리 돋보이는 존재는 아니었다. 유반장으로 불릴 당시에 그는 자신의 캐릭터 없음을 걱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른 멤버들의 캐릭터 부재, 토크의 부재와 맞물려 그의 역할과 능력은 극도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유재석이 계속 이끌어갈 수는 없다.

 

3. 대한민국 예능의 다양화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예능의 선구자와 같다. 정형화된 틀 없이 많은 것을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모범과 롤 모델이 되었다. 특히나 달력특집, 가요제, 추격전 등의 흥행은 이후 등장한 오디션 예능, 음악(가요)  예능, 로드 예능 제작에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오디션이나 음악, 로드 예능(그리고 그 외 너무 많은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사람들의 인기를 끌게 되면서 무한도전이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가요제나 달력특집과 같은 건 지금도 인기를 끄는 아이템이 될 수 있을 것이나, 굳이 무한도전이 아니어도 이와 비슷한 포맷을 접할 수 있는 대체 예능이 존재하고, 오히려 그런 예능들이 무한도전의 아이디어를 정규 프로그램화하면서 더 높은 퀄리티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굳이 무한도전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무한도전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장기 프로젝트뿐이다. 다른 예능과 차별화되면서도 무한도전의 어떤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장기 프로젝트밖에 없기 때문인데, 그래도 이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멤버들이다. 아무리 장기 프로젝트로 무한도전 특유의 예능력을 살리려 한들 멤버들이 이렇게 힘이 없으면 답이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예능을 살리는 핵심은 멤버다. 멤버들이 이렇게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면 무도는 살아날 수가 없다. 사실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거나, 기존 멤버를 교체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가 있을 텐데, 이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미 멤버들이 무한도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도 무한도전의 팬으로서 무한도전이 잘 되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의 무한도전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된다. 과연 무한도전이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Posted by honj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