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도 빡쳐서 신문에 손도 안대고 있는데, 하도 인터넷 문화가 발달해서 그런지 안보려고 해도 눈에 들어오네요. 기초노령연금제도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변명 아닌 변명을 보면서 참 한숨이 나옵니다. 애초에 노인 모두한테 20만원씩 쥐어주겠다고 공략을 한 사람이 재정문제 생각안하고 공약 그냥 남발합니까? 박근혜 정부 들어선지 고작 6개월 지났습니다. 공략할때랑 지금이랑 경제가 달라져봐야 얼마나 달라졌다고 이제와서 그 공약을 지키는게 무리라는 소릴 하나요.


경제가 어렵다고 칩시다. 그럼 그런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공약을 만든 대선캠프측 전문가들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이 만들고 내세운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는건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얼굴에 침뱉는 격이에요. 도대체 왜 못지킬 약속을 그렇게 하나요.


기초노령연금뿐이겠습니까? 기업의 신규순환출자에 대한 것도 경제민주화의 핵심공약이라고 엄청 떠들어댔는데 결국엔 이것도 예외조항을 만들어서 빠져나갈 틈을 허용했죠. 합병, 증자, 구조조정. 너무 뻔하지 않나요? 이런 예외의 상황을 진짜 인정하는 것은 둘째치고 예외조항을 이용해서 기업이 빠져나갈 출구를 만들어줬을때 기업들이 이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린 너무 많이 봐오지 않았습니까?


또 박근혜정부가 최우선적으로 말했던 것 중에 하나가 청년들의 일자리창출이었죠. 그리고 그를 위해서 강조한게 창조경제였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리송하고 감도 안잡히는 창조경제. 뭐한다고 이름을 '창조경제'라고 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창조경제라고 이름짓고 정부가 하고 있는게 뭔지 아시나요? 첨단기술개발입니다. 그것도 IT분야에서의 첨단기술개발이죠. 로봇, 의료기기, 가전, 레저의 영역을 IT와 접목시키겠다는건데 개인적으로는 진짜 이게 필요한건지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도 의문이지만 이걸로 어떻게 청년들의 일자리창출을 가능하게 하겠다는건지도 애매하죠. 그래서 창조경제에 관한 기사도 제대로 없습니다. 최근에 나온게 자동차 튜닝이었죠. 자동차 튜닝산업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선전을 하는데 참 답답하더군요.


6개월간의 박근헤 정부의 공약행보를 보고 있으면 지켜지는것도 거의 없거니와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의 진행과정등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 사람들이 너무 생각이 없다는게 느껴집니다.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하고 무엇을 중심으로 삼아야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기준없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휘둘리는게 보이죠. 그냥 답답합니다. 그리고 저같이 지친사람들은 또 이 나라에 대한 기대를 접고 외면을 하겠죠. 한숨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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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딸의 7일간. 엄청 웃으면서 봤던 일드다. 재미도 있고 나름 교훈도 준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라가키 유이가 정말 가장 이쁘게 나온 일드가 아니었나 싶다. 여고생 역할도 잘 어울리고.


일드 여배우들은 뭐랄까. 자주 역변하는 걸 보게 된다. 데뷔 초때는 정말 이쁘게 나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데뷔 초때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달까, 아니 그보다는 그 이미지를 잘 못지킨다는 느낌이다. 작품과의 연계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이후의 작품들을 보면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아라가키 유이는 역시 긴 머리가 잘어울린다.)



이 드라마의 주요내용은 아빠와 딸이 전설의 복숭아를 먹고 몸이 뒤바뀐 후, 서로의 삶을 대신 살게 되면서 몰랐던 상대방을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서 아빠와 딸의 관계는 가부장적인 아빠를 어려워하는 딸, 그리고 자신을 멀리하는 딸의 눈치를 보는 아빠의 관계다.


가족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는 주제다.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그냥 단순히 내가 상대를 이해하겠다고 마음먹어서 이해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설사 상대의 삶을 알고 있다고 해도 아는 것과 내가 그것을 직접 내 삶의 한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나의 지평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라는 것은 나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기때문에 완전한 이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시간과 과정을 거쳐야만 어느정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짧은 텀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하는 일드로서는 이 주제의 무거움과 긴 과정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일드는 몸이 뒤바뀌는 설정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긴 과정도 어느정도 극복하고 이 주제가 무겁게 갈 수 있는 것을 가벼우면서도 재미있게 소화해냈다.





이 드라마가 참 재미있는 이유는 서로의 삶에 던져진 아빠와 딸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지평속에서 아빠와 딸의 삶을 살아내는 것을 너무 실감나게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히 살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까지 보여준다. 


이것이 재미와 교훈을 둘 다 잡은 확실한 지점이 아니었나 싶다. 서로가 인격과 몸이 뒤바뀌었기 때문에 사실은 몸만 다를뿐 여전히 아빠와 딸은 그대로이다. 하지만 뒤바뀐 몸으로 상대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에 서로는 어쩔수 없이 상대방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해서 상대방의 방식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딸의 삶을 아빠가 살고 아빠의 삶을 딸이 살고 있으니까.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딸은 아빠의 삶의 지평을 바꾸고 아빠는 딸의 삶의 지평을 바꾼다. 물론 서로가 자기방식대로 또는 마음대로 상대의 삶의 지평을 바꾸는게 아니다.



(아빠가 자신의 몸을 볼까봐 불안해서 자신의 몸을 씻기고 있다. 이 장면은 극 중 자주 등장한다.)



(목욕할 때 뿐만 아니라 몸이 바뀐 후 여러가지를 의논하는 아빠와 딸)


서로가 함께 대화하고 조언하면서 상대의 의견을 참고하면서 자신의 방식을 행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의 마지막에 이르러 완전하진 않지만 서로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기가막힌 연기로 이 드라마를 완전히 주도한 아빠(타치 히로시))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최고의 요소를 꼽으라면 바로 저 아빠다. 인격이 바뀐 연기를 너무 실감나게 잘했다. 각키도 연기를 잘했지만 정말 타치 히로시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가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었을까? 


어쨌든 꼭 보시길. 너무 재밌고 보고나면 여운도 좀 남는 좋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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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뜨기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아주 유명했던 사이트는 단연 싸이월드였다. 일촌이라는 말과 도토리를 유행시키며 돌풍을 일으켰던 싸이월드는 블로그와 같은 자신만의 글과 사진을 올리는 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친밀한 사람들과 그 공간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도 그 싸이월드에 미쳐있었던 사람이고 지금과는 다르게 그곳에서 엄청난 글을 써댔다. 하루에 2~3번씩. 참 대단하구만. 그런 의욕이 지금은 어디로 간건지.



(절대로 쇠락할 것 같지 않았던 싸이월드. 지금은 내 주변에서도 하는 사람을 찾기 드물다.)


싸이월드는 지금의 SNS와는 다르게 어느정도 폐쇄성을 지니고 있었다. 일촌을 맺은 사람만이 자신의 공간에 써진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일촌 모두에게 내 공간을 오픈한다는 점에 있어서 싸이월드는 열린 측면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SNS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이러한 싸이월드가 가진 어느정도의 폐쇄성마저도 완전히 무너트리고 최대한의 넓은 네트워크망을 구축하는 공적인 공간을 추구했다. 싸이월드도 사실상 SNS 서비스와 다름이 없지만 지금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싸이월드보다 더 단순해지고 더 넓어진 네트워크망을 구축하고 소통할 더 열린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SNS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 다르지만 사실 싸이월드에 익숙했던 우리로서는 이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도 마찬가지로 같은용도로 쓸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이월드가 몰락한 이유는 스마트폰의 발전과 통용, 그리고 그에 맞게끔 개발된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모바일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사람들이 모바일을 통해서도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 빠르게 관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싸이월드는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SNS의 단순성과 더 강화된 개방성이, SNS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그것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빚게 만들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말았다.


(140자로만 쓸 수 있는 트윗은 물론, 페이스북도 내용은 더욱 짧아진 대신 양은 증가했다.)


싸이월드에서도 난 개인적으로 그것을 통해 상대방과 소통을 하다가 오해를 산 적이 꽤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내가 쓴 글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자주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나 그 내용이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거나, 뭔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길때 더욱 그랬다. 내용이 짧거나, 추상적인 내용일수록 그러한 오해는 더욱 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는 SNS에서는 거의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상대에 대한 배경적인 이해나 앎 없이 우리는 오로지 그 텍스트만으로 의미를 파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를 잘 알고 있을만한 지인도 나의 글을 보면서 그 내용과 의미에 대해 숱한 문제와 오해를 제기해왔다. 그런데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관계하는 SNS에서는 오죽할까?


지금의 기성용과 윤석영선수의 사태에 대해서도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쉽게 왈가왈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설령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가린다고 해도 나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된 것에 최강희감독과 기성용 윤석영 선수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글을 쓴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그 글이 오해를 살 수도 있고 또 모든 사람들이 볼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치 못한 기성용선수나 윤석영선수에게도 문제가 있고 해외파 선수들의 불만이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러한 지경에 다다를때까지 그들과 직접적 대화를 하지 않은 최강희감독에게도 문제가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객관적 사실을 알려주는 공적인 역할을 하는 언론은 그 사건이나 인물이 가진 배경적인 영역을 다 알지못하고 사건의 단면만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 단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조심해야한다. 사람과의 대화든 SNS든 언론이든 우리는 그것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제대로된 판단을 하려면 상대나 사건이 가진 배경과 내막을 충분히 알고나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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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지금 정치권이 개판이 됐습니다. 오늘자 신문들도 가관이네요. 특히 조중동은 합심이라도 했나요? 1면 기사제목 똑같이 하자고 입이라도 맞췄습니까? 아니면 삼위일체입니까? 






국정원이 대화록을 공개했죠? 이런 외교적 사안을 일반인도 아무렇지않게 상세하게 볼 수 있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다 공개합시다. 전부요. 타국과 외교적 협상하는거 일반인에게 전부 투명하게 공개해서 어떠한 의심도 남지 않게끔 하도록 합시다. 국민들의 알권리는 매우 중요하니까요. 안그렇습니까?


이번 국정원장 남재준도 정말 골때리네요. 아무리 원본이 아니라지만, 발췌본이든 대화록의 요약본이든 외교적 사안이 담긴 문서입니다. 이런걸 개인이 독단적으로 처리한다는게 말이됩니까? 그 파장은 생각안합니까? 국정원의 명예가 외교적 문서 공개로 회복된답니까? 국정원이 이런거 하는 조직인가요?


북한이 무슨 국가냐? 테러단체지. 하면서 이들이랑은 외교 자체가 성립하지도 않는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정신차리세요. 엄연히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기도 하지만 국가입니다. 그리고 이런 북한과 하는 모든 관계 설정이 외교입니다. 테러집단이니까 저놈들이랑 우리가 대화하거나 협상을 할 이유는 없다라고 생각을 해도 북한은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고 북한과의 외교는 불가결한 겁니다. 무슨 감정 앞세우면 일이 해결된답니까?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북한이 우리의 주적인거 몰라서, 정상회담하고 그러나요? 그럼 정상회담한 대통령들은 다 욕먹어야됩니까?


앞으로도 북한과의 외교는 피할 수 없는데, 대화록은 공개해버렸습니다. 이제 앞으로 북한은 이걸 걸고 넘어질 겁니다. 외교적 사안을 다 공개해버린 것에 대해서 말이죠. 비공개회담 같은것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북한과의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외교적 관계를 갖는 것도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이건 다른 의미로 남북관계의 악화죠. 북한이 앞으로 뭘 믿고 우리나라랑 협상을 할까요? 외교의 기본도 안지키는데요.


뭐 NLL 포기 발언을 들고 나온 여권이 국정원 사건의 물타기를 하려 한다 어쩐다 소리가 있는데, 그런걸로 연관지으면 피로감만 쌓이니 집어치우고 공개한 전문이나 한번 보죠.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발언이 있나요? 지금 올려놓은 사진 한번 살펴보시죠.


단호하게 말해서 없습니다. NLL 포기 발언도 없고 NLL을 바꿔야 한다는 것도 평화협력지대로 바꾸자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죠. 근데 지금 보수언론이랑 여당에서는 이걸 NLL을 포기했다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어요. 아니 어디 포기발언이 있습니까? NLL이 영토선으로 주장되고 있다는 걸 노무현 대통령도 너무 잘 알고 있을만큼 이 NLL의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데 말이죠. 어디 그런 발언이 있나요? 서해바다를 통채로 내줬다는 그 발언 어디 있나요?


"그렇고 이걸 풀어나가는데 좀더 현명한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거기 말하자면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그건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큰 틀의 뭔가 우리가 지혜를 한번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죠..."(이게 회담에서 노통이 NLL에 대해 처음으로 발언하는 겁니다. 기본취지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협의한다라고 명확히 되어있죠.)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의 일부만 봐도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볼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의원이 지금 빡쳐서 녹취록 원본 공개하자고 주장하고 있죠. 개판입니다. 이거 공개하는 것도 골때리는 일이지만 공개되었을때 여권의 이러한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어떻게 책임을 집니까? 전부 의원직에서 사퇴할 것도 아니고.


NLL 포기 발언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항상 이런식으로 난장판의 정국을 만드는 걸 성공시켜온 것이 여당입니다. 그 상황속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국민과 국가죠. 정치가 이런 걸 하라고 있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오늘도 국민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정치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가질테죠. 정치가 개판입니다. 문제는 이걸 정리정돈 해줄 사람이 없다는 거죠.


NLL대화록 상세한 전문은 프레시안 기사에 잘 나와있네요. 링크 겁니다. 전문 다 읽어보시고 판단들을 하시죠?


링크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30625101343&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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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18일날 끝나고 끝나자마자 신청했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1강 강의에 다녀왔습니다. 뭐 한윤형의 사망유희가 아니냐는 농이 나와서 기대감이 더했던 것 같은데요. 어쨌든 시험이 끝나고나니 강의 시간까지 3시간이 남았더군요.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정독도서관 근처 북촌한옥마을 구경이나 갈까? 했는데 책가방메고 돌아다니니까 정말 힘들더군요. 비도 오는데, 언덕을 오르니 땀이 비오듯..;


강의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은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어쨌든 세대론에 관련한 책을 쓴 만큼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한윤형 스스로가 생각하는 우리 세대는 무엇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정의를 듣고싶었는데, 그런건 없었습니다. 책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정의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볼 정도로 문제가 복잡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기대했던 것을 듣지는 못해서 좀 안타까웠구요. 사실 질문할 기회가 주어져서 이걸 물을 수도 있었겠지만, 용기를 못냈습니다. 뭐 괜찮은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지만요.


뭐 여하튼 이런 제 개인적인 기대가 충족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청년세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고 또 요즘 화제가 되었던 일베문제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질문 시간에는 사람들이 이 강의에 기대하고 있는게 무엇인지를 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베에 대한 질문을 엄청나게 하더군요.


이게 좌담형식인지라 한윤형이 세대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박권일에 견해를 묻는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사망유희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좀 아쉽겠죠. 서로 투닥거리거나 그러진 않으니까요. 어쨌든 강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녹음한 것을 토대로 요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각색했습니다.


한 : 이전 프로젝트(세대론)에서 주문했던 것을 제가 극복하진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에 대한 소감을 좀 말해 달라.


박 : 88만원 세대가 정확히 한윤형의 세대였고, 스스로의 세대에 대한 이해와 맥락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 바로 한윤형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세대의 세대론의 처음과 끝을 마무리 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또 세대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한윤형의 블로그와 글들을 다 챙겨보기 때문에) 한윤형이 할 만한 이야기를 했고, 일상에 관한 이야기나 통찰은 배울만한 것이 있었다.


한 : 사실 세대론에 대한 글을 쓰려던 프로젝트 당시에 원고의 초고를 본 박권일이 비판의 타깃이 없고 대안이 없다는 지적을 했었다. 사실 이 책(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해결을 하지 못한 문제로 남아있다. 근데 뒤바꿔서 생각을 해보면 88만원 세대에서는 그 비판의 타깃과 대안이 분명했고, 그것이 오히려 88만원 세대의 한계였다. 타깃인 386세대에 대한 비판은 변희재나 조선일보가 활용하려고 했었고, 대안은 당사자들의 운동이었는데 그것이 당사자들에게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는 이 세대론에 대안 타깃과 대안을 말하기 어려운 악조건을 담아내고 싶었다. 근데 어쨌든 그 지점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조언을 할 당시와 지금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서 좀 더 말해달라.


박 : 88만원 세대를 쓸때는 이것이 세대론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공저자인 우석훈은 생태경제학 전공자로 앞세대의 자원소모가 뒷세대에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세대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기 때문에 그걸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고, 저는 기자로서 노무현 정부 시대에 노동문제와 그 현장을 접하면서 시대가 발전하고 잘 살게되면서도 사회가 점점 야만화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를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이게 세대론이 된 건 반쯤은 우연이고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세대론을 말하는 책은 아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당시 제가 한윤형에게 어떤 조언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체성만으로는 운동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지역이나 지위의 분절을 고려하지 않은채 청년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정체성만으로는 운동을 계속 지속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컨대 지금 바다에서 배타고 있는 지잡대 중퇴생과 서울에서 번듯하게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의 계급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바다에서 배를 타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지잡대 중퇴생은 이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실 이 88만원 세대가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윤형도 지적했지만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계급이 그보다 아래계급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이 88만원 세대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세대가 어떻게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저는 별로 고민하고 있지 않다. 앞서 말했지만, 청년이라는 정체성으로 세대문제를 극복하기엔 세대안에서의 양상과 계급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은 세대가 어떻게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운동보다도 구체적인 정체성과 운동으로서 청년유니온이나 알바연대 이런 운동들이 저는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운동이 지금의 세대론이 메워 줄 수 없는 부분들을 메워주고 있다고 본다.


한 : 사실 88만원 세대 이후 세대론과 계급론의 대립이 있었다. 예컨대 신광영 교수의 경우 세대별로 불평등이 악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이번에 나온 책(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에도 불평등 자체가 심화되고 있지 특정 세대가 불평등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여러 논의들이 있다. 뭐 그 중에서는 이번 강연 3강에 나올 박해천 교수의 경우 그건 근로소득만 봐서 그렇지 부동산 문제로 가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고 하면서 반박을 하기도 하는데, 저의 경우는 책에서 청년세대가 신광영 교수가 언급한 불평등이 더 심화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우리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풀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신광영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 : 저는 일단 세대문제는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세대문제는 있고 계급문제는 없다거나 또는 계급문제는 있는데 세대문제는 없다라는 이런 좌파적 관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단 세대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가 2009년에 있었다. 30대 대기업 그룹 임원들이 모여 결정한 대졸 초임 삭감사건이다. 이걸 어떻게 계급적으로 설명할 수 있나.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 사실 그 대졸자들이 노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는 이 사건이야말로 정확히 계급문제가 세대의 문제로 나타난 가장 적실한 사례였다고 본다. 따라서 저는 계급문제만 있고 세대문제는 없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대문제만 있고 계급문제는 없다고 보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동의하지 않는다.


한 : 좌파들이 왜 계급이 아닌 세대를 이야기하냐라고 했다면, 자유주의적이지만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청년세대를 대상화하여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질타하고 07~08 대선 총선 야권 패배의 책임세대로 지목했는데 이런 관점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2012년에서는 청년층이 꽤 투표를 하고 지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패배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질타하는 사람들의 제대로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좀 들려달라.


박 : 한국사회에서 세대론이 소비되는 양상이 20대를 끊임없이 대상화하고 20대와 무관한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형태로 진행이 되고 있다. 크게는 두 가지로 나뉠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20대 개새끼론' 이 두가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경우 청춘담론의 형태로 그냥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그냥 좀 참으라는 식의 위로를 가장한 무책임한 조언, 이런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양상인 것 같고, 다른 하나의 경우는 한윤형이 말하는대로 개혁진영의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선거마다 20대의 보수화를 말하면서 20대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담론인데, 이게 20대를 대상화하는 하나의 증상과 징후라고 생각되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도 없을 뿐만 아니라, 희생양 만들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386세대는 스스로도 자신들이 민주화를 시킨 영웅적인 세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세대가 보기에 이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고 여기에 대해서 자신들은 책임이 없으니 책임대상을 찾아야하고, 그게 결국은 만만한 20대들이었던 것 같다.

예컨대 2008년 선거에서는 20대 투표율이 19%였다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래서 경향신문에서 대담도 하고 그랬다. 근데 사실은 이게 인터넷에서 누가 말장난해서 말도안되는 수치를 올린거였다. 그거에 경향신문과 지식인들이 다 낚인거다. 근데 낚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저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거다. 20대가 개새끼라고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 사람들은.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20대 개새끼론이 소비되고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게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라 386 지식인들의 습속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2012년의 경우에는 20대 투표율이 높았는데 50대 투표율이 워낙 높아서 졌다는 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투표율이 높고 낮고, 20대 투표율이 높고 낮고의 문제를 떠나서 이 사람들이 20대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일베나 오유에서 다문화까페에서 어떤 말들이 오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실제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가운데 자신들이 만든 것을 자꾸 투사하려고만 한다. 선과 악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던 80년대의 시대엔 그런 인식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이런 전선이 너무나도 많이 형성이 되어있다. 그래서 과거의 그런 느슨한 인식으로는 세대문제를 추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 저같은 경우는 청년세대 보수화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다시 재질문을 던져본다. 가령 진보주의자들은 왜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두려워 하는가. 또 한편으로는 보수화가 되면 개새끼이고, 보수화가 안됐으면 괜찮은건가? 뭐 이런 생각도 충분히 가능하고 그렇다면 보수화가 되었다면 그건 또 무슨 양상인가. 이런걸 물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저는 이번 선거를 보면서 좀 느낀건데, 이 386세대가 설득은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산수만 하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을 좀 했다. 그리고 이번에 투표율이 70%가 넘어가면 무조건 이긴다. 뭐 이런 이야기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투표만 하면 이긴다 이런 말이 나왔었는데 이 산수가 무엇에 기반한 산수나면 2002년 투표때는 40대가 노무현을 많이 지지했었고, 그 사람들이 10년이 지나고 50대가 되었으니까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50대에서는 반띵싸움을 하고 아랫세대에서 60%정도 가져가면 절대 질 수 없다는 이런 생각에서 나온 산수인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사회문제들이 있었는데도 여기에 접근하기보다는 이런 산수에만 매달리고 있었고 청년세대에도 투표안하면 개새끼야라고 부를꺼야라는 심산으로 청년들에게 뭘 해주겠다기보다는 윽박지름만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앞서 던져본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진보담론은 왜 무서워하고 있는가라고 할 때 이들의 산수가 깨지기 때문에 그런거다. 즉, 청년세대의 보수화는 진보담론의 계산과 충돌하고 있는거다. 그래서 진보담론쪽에서는 짜증이 나고, 그래서 청년세대에 분노를 터트리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본인들의 라이프 스타일로 지금의 청년세대를 보는거다. 386세대는 20대가 가장 진보적일때다. 근데 이 시대의 청년들도 당연히 그럴거라고 이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짐작을 하는거다. 그러면서 넌 대학생인데도 이정도밖에 정치적인 관심이 없으면 사회가서는 더 보수화가 되겠네? 이런 시선을 가지는거다. 근데 제 주변친구들은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봤었다. 대학생때는 전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 직장가서 전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상황을 맞이하면서 정치적으로 눈을 뜨는 그런 걸 저는 많이 봤었다. 근데 386세대는 노동노동 하긴 했는데 정작 노동으로 정치적 각성을 받은 적은 없다. 그래서 이런것도 청년세대와는 또 다른 차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실 저는 김용민이 굉장히 특이 케이스라고 생각을 하는게, 이 사람은 386세대의 담론을 따르면서도 정작 자신은 386세대와는 다르게 운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다가 짤리면서 정치적으로 각성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분이 어떻게 자신이 살아온 삶과 386세대의 담론을 수입한 것 사이에서 괴리를 못느낀건가 의문이 들었다. 근데 전 사실 사람들이 많이 그러고 산다고 생각한다. 저도 저가 대구태생이지만 대전에서 쭉 살아왔었기 때문에 만약에 저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대구태생이란 자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정치에 관심을 가지니까 사람들이 자꾸 저를 대구태생이라고 진보담론에서 주지를 시키는 것이다. 즉 저를 불신하는거다. 그래서 저는 고민이 되는거다. 386세대의 담론을 수입해서 살았고 그 물적토양에서 살았으니까 386세대가 비난하고 있는 우리 부모세대를 욕할 것인가, 아니면 부모세대를 따라서 386세대들이 사회경험이 없는 얼치기라고 욕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이 양자택일 사이에 다른 지점은 없는가 이런걸 보게 되는거다.

저는 386세대라는 규정 자체도 굉장히 폭력적인 규정이라고 생각을 한다. 당시 대학 진학률도 30%정도였고, 그 대학생 중에서도 운동을 한 사람은 소수다. 근데 그 소수가 이 386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번 대선결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냐면, 이 386세대가 동년배들도 설득을 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386세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동년배들이 이번에 다 새누리당을 찍고 그런가운데 무력했으면서 그 책임을 다 청년세대들에게 돌리는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 이제 슬슬 박권일의 요즘 전문분야인 네오라이트, 일베 이야기로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야스다 고이치씨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 등장하는 일본의 재특회와 일베를 비교하는 기사도 많이 나왔었고, 야스다 고이치씨가 방한을 해서 여러 이야기도 나왔었다. 근데 저는 일본의 재특회와 일베가 비슷한 지점도 있고 유럽의 극우와도 비슷한 모습이 있지만, 각 나라의 특수성도 각 양상에서 보이는 것 같고 재특회를 일베하고만 비교하는 것은 또 좀 맥락이 다르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박권일 네오라이트를 분석하면서 지금의 일베보다는 더 넓은 문맥으로 분석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네오라이트 개념과 야스다 고이치와의 대담에서 느꼈던 것에 대해서 좀 말해달라.


박 : 저의 관심사는 사실 세대의 문제보다는 주체에 더 관심이 있는데, 세대에 대한 관심은 주체문제의 일부인 것 같다. 제가 네오라이트에 관심을 가진 것도 새롭게 드러나는 주체로서, 주체의 관심이라는 맥락에서 이어진 것이다. 우파의 불만이라는 책에 실린 글은 2010년 대학원때 석사과정에서 낸 기말페이퍼였는데, 그 내용이 다문화 반대 카페,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 담론분석이었다. 그걸 분석하면서 한국에 이렇게 많은 인종주의적인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고 그 담론이 의외로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두번 놀랐다. 그래서 그때부터 흥미를 가지고 계속 추적을 해왔고 일베는 최근에 문제가 됐는데 큰 맥락에서 본다면 일베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온 인종주의적 커뮤니티 운동의 일부로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일베만 주목하면 이런 큰 흐름과 한국사회의 문제를 알기 어려울거라고 본다.

뭐 어쨌든 전 이런 넷우익의 등장이 이런거라고 본다. 더이상 민주화 대 산업화 또는 민주 대 독재와 같은 이런 것들. 앞서 한윤형이 이야기했던 것 처럼 설득없이 이미 우리가 옳다는 이런 선험적인 규정이나 적대들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이 일베같은 현상이라고 본다.

지금 벌어지는 인종주의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물질적인 토대속에서 일어나는거다. 앞서 말했던 바다에서 배타고 일하는 사람들은 외국인노동자,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이미 노동시장의 경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속에서 실제로 이 외국인노동자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경쟁자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가지는 공포와 인종주의는 굉장히 유물론적이다. 따라서 일베에서 벌어지는 것은 사실 표면적인 것일 뿐이고, 그 밑바닥에 있는 진짜 문제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가 이미 외국인노동자들과 최하층의 한국인노동자들이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에 기반하여 등장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일베와 같은 넷우익 현상인 것이다. 이런 넷우익 현상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점점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저의 관심도 이런 예측때문이었다.


한 : 좀 이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일베와 재특회의 차이에도 좀 주목을 하게 됐는데 재특회의 경우는 재일한국인들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치면 이주노동자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흡사하다. 근데 일베의 경우는 호남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조중동까지 나서서 일베를 나무라고 그랬다. 그래서 얼마나 소수자를 차별하느냐의 관점에서 일베는 재특회와 이런 차이가 있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재특회도 그렇고 일베도 그렇고 마치 이들이 경쟁에서 떨어진 낙오자인 것 처럼 해서 이들을 처리하려는 모습도 나타나는데 이것도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일베의 경우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소리도 있고, 뭐 유학을 가있는 사람들이 한다는 소문도 있고 그런데, 저는 뭐 이게 사회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반호남주의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또 지배계층내에도 있었기 때문에 단순화일지도 모르지만, 으레 영남 강남이면 반호남주의를 가지게 되고,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온 자식들의 사고가 나중에 언론에서는 전혀 확인 받지를 못하다가 나중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확인받고 설득되는 이런 상황일 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서 386세대도 이야기했지만 진보담론의 전략이 영남은 새누리당 찍는 촌스러운 인간들, 그리고 강남은 악마화라는 철저한 주변화와 타자화를 해왔는데 그 결과가 사실은 일베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고 일베를 말하면서 역사교육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재밌는 것은 일본은 역사교육을 했는데도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 따라서 단지 역사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를 바꾸고 해서 교육을 하는걸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좀 심층적인 사회문제로서 다루어야 할 것 같은데 역시 진보진영이 해결해야할 어떤 답답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박 : (한윤형의 앞 이야기에서)정정을 할게 있는데, 야스다 고이치와 대담을 하면서 질문을 했던게 재특회 구성원들을 일본사회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느냐, 루저나 사회 낙오자로 보고 있는것이냐라고 물었는데, 야스다 고이치가 본 재특회는 멀쩡하게 좋은 직장다니는 사회 중산층이 절반정도 되고, 특이하게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할 뿐 사실 이 사람들을 루저로 볼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더라. 일본도 처음에는 재특회를 사회에 불만을 가진 루저들의 집단으로 묘사를 했는데 만나보니 그렇지 않았던거다.

저는 일베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표창원이 일베를 루저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알지도 못하지만, 일베가 루저라고 해봐야 걔들 열만 받게 하는 거다. 그리고 일베가 진짜 루저들이면 일베같은 키보드질을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생각해봐라. 키보드질을 할려면 시간이 있고 돈도 있어야 하는데, 진짜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하고 오면 바로 자야된다. 그래서 저는 일베 루저론 같은 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일베가 학력인증하고 그러지 않냐. 그 몇명만 인증해도 깨지는 담론을 왜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재특회나 일베와 같은 현상의 원인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심화되고있는 사회적 불평등에 뿌리가 있지 않은가라고 본다. 일본같은 경우도 워낙 장기불황이 계속되어왔고 그래서 소비를 하지 않는 사토리 세대가 생겼는데 이런게 한국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고, 이런 불황이 계속 진행되면 될 수록 내가 공동체구성으로서 받아야할 정당한 몫을 내부의 타자들이 뺏어가고 있다는 식의 박탈감이 강해질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바로 극우의 토양이다. 일베나 다문화 반대 카페, 인종주의 단체의 토양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사회 불평등을 해소해야한다.

역사교육도 역사교육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역사 교육을 한다 하더라도 그게 그대로 먹혀들 것 같진 않고, 저는 시민교육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시민교육은 역사교육이랑은 다른게 자유주의적인 다원주의와 같이 다른의견을 포용할 수 있는, 관점을 다루는 교육이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이런 시민교육 교과서들을 만들었는데 이런 것들은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인 것을 다루기 보다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갖추어야할 소양이나 태도를 교육하는 것인데 이런게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다. 


한 : 네오라이트와 관련해서 박권일이 상상된 착취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즉, 실제로 겪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 사람이 기득권이고 내것을 뺏어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인데, 재특회와 관련해서 재특회의 현상이 한류와도 연관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실 재일한국인이 전적으로 불쌍한 존재라면 이 상상된 착취를 느끼기 힘든데 한류로 인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이 이미지를 재일한국인에 덧씌울수가 있는거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이 가장 작동이 잘 됐던 대상이 유태인아니냐. 소수자이고 탄압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돈을 많이벌고 잘 살고 있으니까 자본주의의 문제를 소수 유태인에 덧씌워서 이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상상된 착취가 잘 먹혔던 것 같고, 이로 연계지어보자면 한국에서도 노무현, 김대중 집권과 더불어 민주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상상된 착취가 (일베에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상상된 착취가 되려면 상대가 전적으로 찌질해서는 안되고 뭔가 좀 가지고 있어야 발동을 하는 것 같다.

근데 이 상상된 착취와 관련해서 좌파들도 스스로 좀 되물을 필요가 있다. 일베와 나꼼수를 비교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만 볼게 아니라 일베와 운동권을 비교한다든지 이런 것도 좀 해야 윤리적이라고 저는 생각을 한다. 나꼼수만 모든 것을 이명박의 탓으로 몰아간게 아니라 사실 이명박 집권 이후 진보담론의 정치평론자체가 다 미묘하게 그런식으로 흘러갔었다. 하지만 이것이 상상된 착취인지 아니면 제대로된 것을 잡고 있는 건지, 어느정도의 현실성이 있는지는 재각각 다 차이가 있지 않겠나? 이런점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경향신문의 일베와 나꼼수 비교는 비교를 한 것 자체로 욕을 먹는 것은 부당하지만, 비대칭적인 부분을 짚어주거나 좌파들 자신의 성찰이 좀 들어가 있으면 좋지 않나 싶은데 여기에 대해서는 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박 : 동의한다. 논리가 일관성이 있으려면, 자신에게도 적용할 줄 알아야한다. 진영논리로 계속 판단을 해버리면 결국 합의도 안되고 뭔가 생산적이지 않은 상황이 되는데, 계속 나꼼수나 일베를 공격한다든지 이런 사회적인 사안에 있어서 사람들은 계속 선험적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미네르바나 나꼼수 같은 경우도 결국 우리편 전문가가 되버린거다. 객관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계속 검증을 하고 논리를 우리편에게도 적용을 하고 해야하는데 사실은 그런게 없는거다. 그래서 어쨌든 형식적으로라도 적에게 적용한 논리를 우리편에게라도 적용을 하고 검증을 하는 훈련을 하는게 민주시민이 갖추어야할 소양이라고 저는 생각을 한다.


한 : 마무리 지어야할 것 같은데 정리멘트좀 부탁한다.


박 : 정리할 건 없지만, 한윤형 개인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논객으로서의 한페이지를 이제는 이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 책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이제는 메타비평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제대로된 비평가로서 자신만의 주제를 잡고 진득하게 써내려갈 수 있는, 뭐 예를 들자면 뉴라이트 사용 후기와 같은 그런식의 자신만의 주제를 잡아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공적 글쓰기를 해왔던 것에 있어서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계속 보여줬으면 좋겠고, 이제 세대론에 대한 건 그만 했으면 좋겠다. 세대론을 넘어서 사실 아직 싸울게 더 많고 아직도 파헤쳐야할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것에 있어서 같이 싸우고 합의하고 논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 저 자신도 세대론은 이 책을 통해서 정리를 하려고 하고 있고 다른 영역으로 활동을 하려는 계획은 있다. 설령 이제 제가 가끔 세대론을 끌어다 쓰더라도 그것이 이제는 세대론을 통한 분석은 아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어쨌든 박권일도 빨리 책을 완성해서 인강스터디를 하게 되면 나를 좀 초대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좌담은 여기까지고, 이후는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었는데 이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각색했습니다. 구체적 사례같은 경우 뺀게 좀 많이 있어요. 그래서 귀찮으신사람들은 그냥 글을 읽어도 되지만 완전히 내용을 파악하고 싶으신 사람들은 꼭 녹음파일을 들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여기 용량 제한 있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메가라니 너무하네. 원하시면 비밀댓글로 이메일 주소 적어주세요. 그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강의의 대략적 결론은 세대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사태(청년세대의 문제)는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로서 벌어지는 다양한 양태에 관심을 가지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정도가 될 것 같군요.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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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에 돌입한지라 블로그 안하려고 했는데 오늘 꼭 리뷰를 쓰고 싶어서 블로그에 접속을 안할 수가 없었다. 일드가 2분기 또는 4분기에 항상 괜찮은 작품이 나왔던 만큼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기대를 받던 작품들이 별로여서 실망하던 차에 발견한 가족게임. 진짜 재밌어서 미치겠넼ㅋㅋㅋㅋ





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주인공인 가정교사 요시모토 코우야(사쿠라이 쇼). 가정교사인데 그냥 한마디로 상 또라이다. 가정교사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도청, 감시, 신상조사 등으로 가정교사를 맡은 집안의 가족 모두를 철저하게 파악하려한다. 이 드라마를 쭉 보다보면 따라하게 되는게 있다. 바로 요시모토 코우야가 항상 하는 대사. 『いいね-!』중독성 장난 아니다ㅋㅋㅋ





요시모토 코우야가 가정교사를 맡은 누마타 집안의 장남 누마타 신이치(카미키 류노스케)다. 이 드라마에서 요시모토 코우야와 가장 대립하는 존재다. 요시모토 코우야가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의 신뢰를 얻고 집안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걸 못마땅해한다.  가족을 위해서 요시모토 코우야를 쫒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요시모토 코우야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점점 고립되어감과 동시에 자신의 영역을 요시모토 코우야에게 침범당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다. 우등생이고 운동도 잘해서 집안에서 신뢰받는 아들이고 장남이었지만, 요시모토 코우야가 등장한 이후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감추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누마타 집안의 차남 누마타 시게유키(우라가미 세이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집에서는 공부못한다고 무시를 당하는 불쌍한 중학생이다. 처음 드라마가 시작할 땐 가장 문제가 많아보이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중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로 자리잡아간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가정교사인 요시모토 코우야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를 집안에서 숨기지 않고 가장 먼저 드러내고 있었던 시게유키를 코우야는 제일 먼저 도와 준다. 물론 그 방식은 꽤나 가정교사 답지 않지만. 시게유키가 학교에서 당하는 이지메의 고통과 괴로움, 가족으로부터 외면받는 괴로움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게 하기 위해서 요시모토 코우야는 시게유키를 이러한 상황의 궁지로 완전히 몰아넣는다.(예컨대 방안에 짱박혀 격리된채로 살려는 시게유키의 방문을 철문으로 바꿔 막아버리고 창문도 시멘트로 막아버린다. 아예 나오지말라고. 또 이지메하는 학교 친구들에게 시게유키를 더 괴롭히라고 의뢰하기도 한다. 완전 막장이다ㅋㅋ)




가부장적 사고관에 찌든 누마타 집안의 가장 누마타 카즈시게(이타오 이츠치)다. 자식들 교육 잘 시키고, 직장에서 일 열심히하면 자기 할 일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상이다. 게다가 불륜은 보너스. 집안일의 나머지는 모두 아내에게 떠넘기고 나몰라라다. 가정교사인 요시모토 코우야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없다. 자식들에게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데도 성적이 확실히 오르자 요시모토 코우야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보너스로 돈을 막 준다. 물론 이런 가장을 요시모토 코우야는 마음껏 비웃고 이용한다.





누마타 집안의 엄마 누마타 카요코(스즈키 호나미). 집에서 집안일만 하고 있다. 자식들에 대한 관심은 전적으로 자식들에게 문제가 없는가에서부터 출발한다. 문제가 없다면 된거다. 왜냐하면 문제가 있을 경우 비난의 시선을 받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엄마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관리인일 뿐이다. 집에서 집안일만 하고 있다보니 심심하다. 그래서인지 결국엔 주식에 손을 댄다. 남편이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안 이후, 더욱 주식에 매달린다.



(칼로 위협하는 누마타 신이치의 손을 잡아 스스로 자기를 찌르는 요시모토 코우야. 고통을 아는 요시모토 코우야에게 고통은 두렵지 않다. 오히려 고통을 모르는 신이치는 요시모토 코우야의 행동에 완전히 쫄아버린다.)


역시 이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가정교사인 요시모토 코우야에게 있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한마디로 상식 파괴자다. 오늘날의 가족을 파괴하고 평화를 파괴하고 윤리를 파괴한다. 그는 단란하고 평화로워야 할 가족 한명 한명의 사생활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가족이라는 평화의 이름아래 감춰진 개개인의 관계에서의 나약함과 무관심함의 문제를 들춰내고 이를 대면하게끔 하는 존재다. 갈등하지 않으려고 하고, 문제를 감추려고 하는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훼방놓는 훼방꾼이다. 스스로만을 생각하고 간섭하지 않으려는 개인주의를 헤집어놓는 난봉꾼이 따로없다.


그는 드라마에서 "널 망가뜨려주겠다"든지, "널 죽이겠다"든지 가정교사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말은 잔혹한 세상을 먼저 대면한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스스로가 아픔을 느끼고 망가지지 않으면 현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가 생각한 이상이나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서 살게된다. 상처받고 아픔을 대면할때, 즉 자신의 이상과 자신의 영역이 무너질때 현실을 살아가고 강해지는 것이 가능하다. 가족게임 1화의 마지막에 요시모토 코우야는 누마타 시게유키를 몰아붙이며 이런 말을 한다. "현실은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잔혹하다. 그러니 강해져라."


그는 끊임없이 이 누마타 집안 사람들에게 현실을 보여준다. 누마타 집안의 개개인이 어떤존재인지. 정상적이어 보였던 누마타 가족이 얼마나 가족같지 않은지를 철저하게 까발려서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1980년대 소설 가족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2시간짜리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참 대단하다. 가족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드라마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도 그렇고 각색도 그렇고 정말 잘 만든 드라마이지 싶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 되겠지만 어쨌든 상당히 재밌고 결말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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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 2분기가 시작된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가니 슬슬 2분기를 찾아볼까 하고 여러가지를 보는데 마땅히 괜찮은 일드가 없다. 시청률을 확인해봤을때 대박을 치고 있는건 역시 갈릴레오 시즌2였고, 그 다음 눈에 들어온게 라스트 신데렐라인데..




나름 지금 일드 챙겨보시는 분들은 호평을 하고 있는것 같은데 난 지금 2화까지보고 이걸 봐야되는지 고민이 생겼다. 왜?




드라마의 한줄 소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전형적인 초식녀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뭐 이런소재는 별로 새롭지 않다. 초식연애에 관한 일드는 꾸준히 있어왔으니까. 근데 이 라스트 신데렐라의 컨셉은 뭐랄까. 2007년에 나왔던 호타루의 빛 1기와 매우 흡사한데..




엄청 일 열심히 하는 여자라는 설정이나(여기에서는 여주가 미용실 부점장이다. 호타루의 빛에서 여주는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회사원.)




가까운 곳엔 여주와는 완전히 상극인 남주가 존재하며, 그 남주는 여주와 동거를 하거나 또는 바로 옆에 살면서 조언을 해주는 역할로 등장하는 설정이나(여기서는 여주의 집 바로 옆집에 남주가 들어온다. 생각해보니 둘이 직장동료인것도 호타루의 빛과 같다. 게다가 여주의 상급자인 것도. 어쨌든 호타루의 빛에서는 여주와 남주가 동거를 한다. 미치겠는건 그 호타루의 빛에 남주가 후지키 나오히토라는 것! 그래서 더 호타루의 빛이 더 생각나.)




여주가 자신과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남주가 아니라, 갑자기 뜬금 없이 잘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고백을 받아 사귀게 된다는 설정이나(호타루의 빛에서도 갑자기 회사에 등장한 남자가 여주를 좋아해 사귀게 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는 남주가 의도적 접근을 한 것이긴 하지만.)




따라서 건어물녀의 초식연애 컨셉이 너무 호타루의 빛과 비슷하달까. 그래서인지 2화보고 좀 질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난 호타루의 빛1기 너무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2기는 초반부를 보자마자 질렸다. 왜냐하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달라진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스트 신데렐라도 호타루의 빛과 비슷한 컨셉이라니.. 같은 드라마를 세 번 볼 인내심이 내겐 없다.


다만 이 드라마가 호타루의 빛과는 다를 수 있는 부분이있는데.. 바로 저거다. 일드를 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일드는 저렇게 과감한 노출이나 키스신이 잘 안나온다.(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인 것 같다. 동양 최대의 AV산업을 가졌으면서..) 근데 라스트 신데렐라는 1화부터 엄청 과감하다. 여주의 친구들도 상당히 노골적인 성향을 지닌데다 툭하면 관계를 가지는 문란한 친구들이다. 이 드라마는 불륜, 섹스와 같은 요소를 감추지 않고 막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의 여주와 연애를 시작하려하는 남자는 나쁜 의도를 가진 남자인데다 여자관계가 문란하다.(이것 때문에 계속 보게될지도 모르겠다. 초식연애라는 뻔한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가게 해줄 수 있는 측면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이 드라마의 결론이 여주가 결혼을 한다든지 연애에 성공한다든지 이런 방향으로 가게될 것 같진 않다. 호타루의 빛과 비슷한 결말을 맺게 될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영 안땡긴다. 뭐 여튼 만약에 다 보게되면 다시 한번 리뷰를 써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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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민주당의 '일베 사이트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갑을논박이 이어지고 있죠. 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베 사이트를 그냥 유해한 사이트 정도로 생각하고 민주당의 행동에 대해 잘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건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문제이거든요.


일단은 지금의 민주당의 처신이 골때린다 싶은게 이런식으로 일베가 문을 닫게 되었을때 생길 파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죠. 민주당이 일베를 하나의 완전한 극우 사이트로 보고 있는데, 일베에게 있어서 정치적 커뮤니티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한겁니다. 일베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이트가 아니에요. 다양한 커뮤니티 요소를 가진 사이트인겁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요소 하나만을 보고 이 사이트를 폐쇄시켜야 한다고 접근하는 민주당의 방식이 맞는걸까요? 민주당의 이러한 방식은 극우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발붙일 공간 자체를 막아야한다고 보는 입장인건데, 근데 이는 극우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게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일베를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자신들이 누릴 권리를 박탈당하는 상황에 처하는 겁니다. 착각하지 마셔야할게 '일베하는 사람 = 극우적 인간' 이건 정말 초딩같은 발상입니다. 일베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죠. 그런데 일베의 가장 나쁜점만 부각시켜 일베 사이트를 폐쇄하는건, 어떤 사람의 한 면만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는 겁니다.


문제는 말이죠. CBS라디오 인터뷰를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민주당의 이러한 접근이 지금의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겁니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김현정이 "그런데, 이 사이트를 닫는다고 한들 이 사람이 우르르 다른 데 몰려가서 유사한 사이트를 또 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자 바로 한계가 드러났죠. 신경민 의원은 그런 일이 발생하면 계속 같은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알다시피 정치의 스팩트럼에서 극좌와 극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에요. 즉 일베에서 극우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을겁니다. 이런 접근 방식으로는 지금의 사태를 막을 수 없어요.


이런 가운데 지금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이후에 정권이나 법을 판결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의해 같은 방식이지만 다른 해석으로 또 다른 피해를 낳을 겁니다. 예컨데 지금의 우파적 정권을 신랄하게 까대는 다른 좌파적 사이트가 사실을 왜곡했다거나 국가에 해가되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해석해 지금의 방식과 동일하게 접근하면 어쩔껍니까? 이건 부메랑이 되서 돌아오는겁니다.


지금의 일베사태에 대처하고 있는 민주당이나 일베에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진영논리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꽤 있는데요. 좀 위험합니다. 조국교수가 제안한 '일베에 광고하고 있는 기업의 불매 운동'도 진영 논리로 접근한 것과 다름 없죠. 일베에 광고하는 기업과 일베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냥 광고를 부탁하고 받는 금전적인 관계일 뿐인데 말이죠. 조국교수가 말한다고 다 들을게 아니라 기업에 정치적 관점을 주입하고 그것을 통해 진영 논리로 개편하는 이러한 접근이 얼마나 위험스러운건지 아셔야합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불법이나 잘못을 저지른 집단에 후원을 하거나 금전적인 거래를 한 모든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과 그들을 잘못된 기업으로 보는 시선이 정당화되는 거죠.(애초에 일베는 이 범주에도 들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일베의 몇 사람이 문제지 일베 자체가 문제가 되는 사이트가 아니에요.) 반대로 잘못을 저지른 기업에 후원을 받는 집단도 여지없이 잘못된 집단이 되는거구요.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에 제대로 평가받을 집단은 없습니다. 예컨데 과거에 삼성에 광고를 받아서 삼성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신문에 게재하지 않아 논란을 빚었던 경향신문도 그 신문의 가치에 상관없이 삼성이라는 기업이 가지는 윤리적 가치에 따라 동등하게 평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더러운 삼성한테 후원을 받아? 경향신문 개객끼"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죠.


제가 이렇게 하니까 마치 일베를 옹호하고 있는 것 처럼 되고 있는데, 저도 일베에서 극우적 정치성향을 지니고 말도 안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하지만 지금의 일베 사이트 폐쇄에 진영 논리적 접근은 좋은 해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에 대해 균형잡힌 접근을 하고 있는 사람이 홍성수 숙대 법학부 교수인데, 홍성수 교수가 제안한 방식으로 접근을 하려면 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그 분이 꺼내든게 차별금지법인데 문제는 그 차별금지법 법 발의를 민주당이 포기했죠. 그것도 정치적 이유로 말이죠. 참 아이러니입니다. 민주당이 이런점에서 일관성이 없다는게 드러나는거죠. 매번 느끼지만 한심합니다.

여튼 홍성수 교수는 일베의 5.18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혐오적인 발언을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접근해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했는데요. 이게 표현의 자유도 최대한 지키면서 극우적 발언을 제한할 가장 나은 대안이라고 보여집니다. 문제는 법안을 제정하는 것이죠.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 일베의 극우적 성향의 사람들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광주의 피와 투쟁으로 이루어낸 민주화의 역사를 부정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일베의 모순적 태도에 대해 사람들은 민주주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거에요. 저들은 민주주의를 우습게 생각하고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면, 이 또한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순이 아닐까요. 일베를 제거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면, 빈대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짓이 되는 게 아닐까요. 

일베의 사태는 민주주의의 딜레마 입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그 딜레마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진영논리가 아닌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접근해야합니다. 표현의 자유도 지키면서 민주화 정신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야합니다. 쉽게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는 사람과 진영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민주화를 이루어낸 사람들이 우리에게 준 권리입니다. 이를 잊지 않으면서 지금의 사태에 접근해야합니다. 그래야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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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저자
한윤형 지음
출판사
어크로스 | 2013-04-1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잉여 시대를 명랑하게 돌파하는 청춘 여행!매체 비평지 '미디어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청년논객이라 불리는 한윤형이 쓴 책이다. 알다시피 이 책의 제목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뭐 하지만 그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한윤형이 뭐한다고 굳이 그 영화의 제목을 패러디 했는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냥 그 문장이 썩 괜찮아서 선택한 것일 수도 있겠다.


여튼 이 책의 주 내용은 청년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쓴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20대 청년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한윤형은 지금 20대가 아니지만. 여튼 이 책의 내용은 한윤형이 20대의 시기를 글쟁이와 비평가로 보내면서 숱하게 요구받은 20대의 시선에서 보는 청년의 세대론에 대해 저자가 내어 놓았던 과거의 여러가지 판단과 생각을 다시금 긁어모은 것이다. 여기에 저자의 삶과 더불어 자신의 20대의 시절을 곁들였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생각해봤을땐 세가지다. 첫째로는 청년세대를 통한 정치, 사회, 노동의 문제 드러내기. 둘째로는 현존하는 청년 세대에 대한 규정에 새로운 관점 부여하기. 셋째로는 청년들 스스로 자신의 세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청년 세대를 통한 정치, 사회, 노동의 문제를 고발하는 이유는 청년 세대의 문제가 단순히 독립적으로 청년들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통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청년의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이 속해 있는 가족의 문제 즉, 부모의 문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청년들과 관계 맺는 여러 사회 집단들(직장이든, 학교든)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한 세대의 문제가 갖는 의미와 파급력이 어느 한 지점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년의 문제는 이 사회를 대변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현존하는 청년 세대에 대한 규정(20대 세대론)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는 것은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또는 청년만이 말할 수 있는 '청년'이라는 어떤 영역을 확보하고 지키기 위한 저자의 또다른 노력이다. 지금까지의 20대나 청년세대에 대한 여러가지 세대론은 모두 외부에서 온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대론은 청년 세대의 어느 일면을 제대로 짚었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틀로서 청년을 규정하는 하나의 족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청년들의 세대 문제와 일면에 대한 어떤 제대로된 대안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뭐 사실 이 책도 그런면에서는 마찬가지이긴 하다. 읽고 느끼는 바가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난 이 책에서 앞선 세대론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 동의하면서도 이전 세대론의 주창자들과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20대의 세대론이 가야할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물론 저자는 자신이 그러한 대안을 제시할 정도의 인물이 못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꽤나 괜찮은 책이다. 어쭙잖은 이야기로 결론을 내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 평론가 답게 저자도 이를 잘 안다.

여튼 앞선 세대론 뿐만 아니라 청년들에겐 청년들이 말하는 자신들의 세대론이 필요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까지 없었으니까. 이는 청년 세대를 규정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청년들이 말하는 청년을 알려줄 필요로 이어진다. 그래야 그들도 청년 세대를 재조명하고 반성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좋은 예는 아니지만, 나를 잘 아는 것은 바로 나 아닌가.


마지막으로는 세대문제를 조명함으로서 청년 세대가 가야할 길과 추구해야할 방향은 무엇인지. 청년 세대가 지향해야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스스로 자신의 세대를 되돌아보고 방향을 찾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실상 문제제기는 계속되어도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당장은 스스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조언을 해주는 책도 아니고, 무슨 유의미한 해답을 내놓는 책도 아니지만, 청년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사회 정치 노동을 파악하는 그 통찰과 이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통해 그렇다면 청년들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고민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청년들에겐 이 부분이 가장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은 여기서 인용해봐야 그 맥락을 살리기 어렵고 번잡스럽기 때문에 넣지 않겠다. 그나저나 이 책이 청년들에게도 그렇고, 청년을 규정했던 세대론을 만든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의미하게 읽힐지는 미지수다. 특히나 청년들에겐 여전히 답답한 책이 될 수 있겠다 싶다. 겉으로는 위로도 안되고, 해결도 안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음을 다 잡고 몇번 정독해본다면 분명 이 책은 의미있는 책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지금의 청년 세대가 무엇을 해도 잉여가 되는 세대이며, 잉여가 되는 세대로 강요받았다는 것을 저자 자신의 삶과 사회 구조의 비판을 통해 드러내는 지점은 같은 잉여인 청년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느끼게 해준다. 난 여기에서 큰 위로를 얻었다. 여전히 앞은 캄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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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쯤 학교 축제였다. 아마 최근 기간이 대학교들의 축제기간인것 같은데, 어김없이 신문에서는 대학교 축제의 술문화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고, 나는 그 기사를 읽고 한편으로는 기사의 논조에 동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모르게 화가났다.



(술문화를 비판하는 기사를 올린 충청투데이;;)


알다시피 요즘 대학교 축제는 정말 재미가 없다. 내가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던 06년도 당시에도 대학교 축제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당시에도 술문화가 주를 이루었고 밤이 되면 대학교 곳곳에 오물을 쏟아내거나 길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술 문화속에서도 선후배들간의 대화는 있었고 함께 무언가를 준비하고 협동한다는 점에서 대학교의 축제는 화합과 축제의 장이었다. 또한 타 대학교의 학생들도 자유롭게 다른 학교와 어울려 노는 것(예를 들면 다른 학교 축제에 가서 타 학교 학생들과 즉석에서 3:3 미팅을 하고 그랬다. 요즘은 이런 것도 없다.)이 익숙했던 당시의 축제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대학교의 축제는 분명 참여의 장이자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문화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놓인게 지금의 대학 축제의 분위기다.



(연예인이 오면 모든 학생들은 자신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무대에 시선이 쏠린다.)


요즘의 대학 축제는 어떠한가. 관심은 오로지 '어떤 연예인이 오는가' 이다. "너네 축제에 연예인 누구와?" 라고 묻고 누가 오는지에 따라 그 연예인을 보러 그 대학교의 축제에 간다. 대학교 축제의 주체는 대학생인데, 요즘 대학교 축제의 주체는 대학생이 아니라 연예인이 되버렸다. 그 학교의 축제에서 어떤 것을 하고 내가 가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는지. 즐길 거리는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 학교에 오는 연예인만 보면 난 그 학교의 축제를 즐긴게 된다. 대학교의 축제가 학생들의 참여공간이 아니라 '연예인 콘서트'가 되버렸다. 그게 오늘날의 대학 축제다.


술문화는 어찌보면 대학교의 오래된 문화였다. 대학교축제의 문제를 술로 접근해 비판하려면 대학교만 비판할께 아니라, 회사생활에 있어서의 술문화도 지적해야한다. 아마 이게 더 심할꺼다. 사실 대학교 축제의 문제는 술에 있다기보다, 어떻게 해야 즐기고 함께 놀지를 모르는 현실에 있다.


원론적이자 답답한 소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학교의 경쟁과 성적에 대한 중요성을 강요받기 시작한 시점부터 학생들은 욕망을 거세당한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하는 공부에 욕망은 방해요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게임하고 노는 것, 이런 수준의 욕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관심있어하는 역사, 연주를 잘 하고 싶은 기타,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 옷과 패션에 대한 관심, 연애 또는 사랑, 재미있는 무협지 소설, 여러가지 스포츠 활동 등등 인간이라면 당연히 관심을가지고 할만한 모든 것에 있어서 학교와 어른들은 억압을 한다. 왜냐하면 모두 공부에 방해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왜 해서는 안되는지에 대해 오로지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욕망을 억제해야된다고 계속적으로 강요받는 존재들이 된다. '너의 욕망은 쓸모없다. 왜냐하면 그건 공부에 도움이 안되니까.'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난 이말이 정말 싫다. 어른들은 학생을 오로지 학생의 틀에서만 보려고 할 뿐 한사람의 인간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도 자신들처럼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또 그런것을 해도 되는 존재라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통제해야하고 가르쳐야할 하등한 존재로만 바라보고 있는게 어른과 선생의 기본적인 시선이다.


이러한 억압을 지속적으로 당한 학생들이 이후 자유로운 환경에 놓이는 대학교의 시기에 오면 어떻게 될까? 이젠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되버린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적성검사를 하고, 나의 욕망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타인의 의견을 구하고 다니는 것이다.


대학교의 축제는 이러한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축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싶은지 모르는 학생들이 만드는 축제다. 정말 직관적으로 너무나 분명해진 욕망만이 남은 학생들이 벌이는 축제가 단순할 수 밖에 없는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실상 이러한 현상이 비단 대학교 축제에만 국한된 문제이겠는가. 잉여세대로 살아야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사회가 필요로하는 것을 추구해도 잉여가 되고,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해도 잉여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장의 정점에 다다른 나라에 더이상 인력은 필요치 않다. 따라서 학생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열심히해도 대부분 잉여가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욕망이다. 사회의 필요성에서 버림받은 젊은 청년들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이상 사회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서 의미를 찾아야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고 사회인이 되어가는 길로 오로지 한가지만을 요구받아 자신의 욕망을 억제해온 오늘날의 청년들이 자신의 욕망에서 의미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된 오늘날의 청년들은 우울한 존재다. 잉여가 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잉여여도 살 의미가 있다면 청년들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잉여세대는 자신의 욕망을 모른다.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욕망까지 잃어버린 세대. 참으로 슬픈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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