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18일날 끝나고 끝나자마자 신청했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1강 강의에 다녀왔습니다. 뭐 한윤형의 사망유희가 아니냐는 농이 나와서 기대감이 더했던 것 같은데요. 어쨌든 시험이 끝나고나니 강의 시간까지 3시간이 남았더군요.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정독도서관 근처 북촌한옥마을 구경이나 갈까? 했는데 책가방메고 돌아다니니까 정말 힘들더군요. 비도 오는데, 언덕을 오르니 땀이 비오듯..;
강의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은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어쨌든 세대론에 관련한 책을 쓴 만큼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한윤형 스스로가 생각하는 우리 세대는 무엇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정의를 듣고싶었는데, 그런건 없었습니다. 책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정의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볼 정도로 문제가 복잡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기대했던 것을 듣지는 못해서 좀 안타까웠구요. 사실 질문할 기회가 주어져서 이걸 물을 수도 있었겠지만, 용기를 못냈습니다. 뭐 괜찮은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지만요.
뭐 여하튼 이런 제 개인적인 기대가 충족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청년세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고 또 요즘 화제가 되었던 일베문제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질문 시간에는 사람들이 이 강의에 기대하고 있는게 무엇인지를 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베에 대한 질문을 엄청나게 하더군요.
이게 좌담형식인지라 한윤형이 세대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박권일에 견해를 묻는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사망유희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좀 아쉽겠죠. 서로 투닥거리거나 그러진 않으니까요. 어쨌든 강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녹음한 것을 토대로 요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각색했습니다.
한 : 이전 프로젝트(세대론)에서 주문했던 것을 제가 극복하진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에 대한 소감을 좀 말해 달라.
박 : 88만원 세대가 정확히 한윤형의 세대였고, 스스로의 세대에 대한 이해와 맥락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 바로 한윤형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세대의 세대론의 처음과 끝을 마무리 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또 세대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한윤형의 블로그와 글들을 다 챙겨보기 때문에) 한윤형이 할 만한 이야기를 했고, 일상에 관한 이야기나 통찰은 배울만한 것이 있었다.
한 : 사실 세대론에 대한 글을 쓰려던 프로젝트 당시에 원고의 초고를 본 박권일이 비판의 타깃이 없고 대안이 없다는 지적을 했었다. 사실 이 책(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해결을 하지 못한 문제로 남아있다. 근데 뒤바꿔서 생각을 해보면 88만원 세대에서는 그 비판의 타깃과 대안이 분명했고, 그것이 오히려 88만원 세대의 한계였다. 타깃인 386세대에 대한 비판은 변희재나 조선일보가 활용하려고 했었고, 대안은 당사자들의 운동이었는데 그것이 당사자들에게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는 이 세대론에 대안 타깃과 대안을 말하기 어려운 악조건을 담아내고 싶었다. 근데 어쨌든 그 지점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조언을 할 당시와 지금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서 좀 더 말해달라.
박 : 88만원 세대를 쓸때는 이것이 세대론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공저자인 우석훈은 생태경제학 전공자로 앞세대의 자원소모가 뒷세대에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세대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기 때문에 그걸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고, 저는 기자로서 노무현 정부 시대에 노동문제와 그 현장을 접하면서 시대가 발전하고 잘 살게되면서도 사회가 점점 야만화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를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이게 세대론이 된 건 반쯤은 우연이고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세대론을 말하는 책은 아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당시 제가 한윤형에게 어떤 조언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체성만으로는 운동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지역이나 지위의 분절을 고려하지 않은채 청년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정체성만으로는 운동을 계속 지속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컨대 지금 바다에서 배타고 있는 지잡대 중퇴생과 서울에서 번듯하게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의 계급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바다에서 배를 타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지잡대 중퇴생은 이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실 이 88만원 세대가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윤형도 지적했지만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계급이 그보다 아래계급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이 88만원 세대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세대가 어떻게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저는 별로 고민하고 있지 않다. 앞서 말했지만, 청년이라는 정체성으로 세대문제를 극복하기엔 세대안에서의 양상과 계급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은 세대가 어떻게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운동보다도 구체적인 정체성과 운동으로서 청년유니온이나 알바연대 이런 운동들이 저는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운동이 지금의 세대론이 메워 줄 수 없는 부분들을 메워주고 있다고 본다.
한 : 사실 88만원 세대 이후 세대론과 계급론의 대립이 있었다. 예컨대 신광영 교수의 경우 세대별로 불평등이 악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이번에 나온 책(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에도 불평등 자체가 심화되고 있지 특정 세대가 불평등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여러 논의들이 있다. 뭐 그 중에서는 이번 강연 3강에 나올 박해천 교수의 경우 그건 근로소득만 봐서 그렇지 부동산 문제로 가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고 하면서 반박을 하기도 하는데, 저의 경우는 책에서 청년세대가 신광영 교수가 언급한 불평등이 더 심화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우리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풀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신광영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 : 저는 일단 세대문제는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세대문제는 있고 계급문제는 없다거나 또는 계급문제는 있는데 세대문제는 없다라는 이런 좌파적 관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단 세대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가 2009년에 있었다. 30대 대기업 그룹 임원들이 모여 결정한 대졸 초임 삭감사건이다. 이걸 어떻게 계급적으로 설명할 수 있나.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 사실 그 대졸자들이 노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는 이 사건이야말로 정확히 계급문제가 세대의 문제로 나타난 가장 적실한 사례였다고 본다. 따라서 저는 계급문제만 있고 세대문제는 없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대문제만 있고 계급문제는 없다고 보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동의하지 않는다.
한 : 좌파들이 왜 계급이 아닌 세대를 이야기하냐라고 했다면, 자유주의적이지만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청년세대를 대상화하여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질타하고 07~08 대선 총선 야권 패배의 책임세대로 지목했는데 이런 관점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2012년에서는 청년층이 꽤 투표를 하고 지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패배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질타하는 사람들의 제대로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좀 들려달라.
박 : 한국사회에서 세대론이 소비되는 양상이 20대를 끊임없이 대상화하고 20대와 무관한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형태로 진행이 되고 있다. 크게는 두 가지로 나뉠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20대 개새끼론' 이 두가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경우 청춘담론의 형태로 그냥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그냥 좀 참으라는 식의 위로를 가장한 무책임한 조언, 이런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양상인 것 같고, 다른 하나의 경우는 한윤형이 말하는대로 개혁진영의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선거마다 20대의 보수화를 말하면서 20대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담론인데, 이게 20대를 대상화하는 하나의 증상과 징후라고 생각되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도 없을 뿐만 아니라, 희생양 만들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386세대는 스스로도 자신들이 민주화를 시킨 영웅적인 세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세대가 보기에 이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고 여기에 대해서 자신들은 책임이 없으니 책임대상을 찾아야하고, 그게 결국은 만만한 20대들이었던 것 같다.
예컨대 2008년 선거에서는 20대 투표율이 19%였다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래서 경향신문에서 대담도 하고 그랬다. 근데 사실은 이게 인터넷에서 누가 말장난해서 말도안되는 수치를 올린거였다. 그거에 경향신문과 지식인들이 다 낚인거다. 근데 낚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저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거다. 20대가 개새끼라고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 사람들은.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20대 개새끼론이 소비되고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게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라 386 지식인들의 습속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2012년의 경우에는 20대 투표율이 높았는데 50대 투표율이 워낙 높아서 졌다는 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투표율이 높고 낮고, 20대 투표율이 높고 낮고의 문제를 떠나서 이 사람들이 20대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일베나 오유에서 다문화까페에서 어떤 말들이 오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실제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가운데 자신들이 만든 것을 자꾸 투사하려고만 한다. 선과 악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던 80년대의 시대엔 그런 인식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이런 전선이 너무나도 많이 형성이 되어있다. 그래서 과거의 그런 느슨한 인식으로는 세대문제를 추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 저같은 경우는 청년세대 보수화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다시 재질문을 던져본다. 가령 진보주의자들은 왜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두려워 하는가. 또 한편으로는 보수화가 되면 개새끼이고, 보수화가 안됐으면 괜찮은건가? 뭐 이런 생각도 충분히 가능하고 그렇다면 보수화가 되었다면 그건 또 무슨 양상인가. 이런걸 물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저는 이번 선거를 보면서 좀 느낀건데, 이 386세대가 설득은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산수만 하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을 좀 했다. 그리고 이번에 투표율이 70%가 넘어가면 무조건 이긴다. 뭐 이런 이야기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투표만 하면 이긴다 이런 말이 나왔었는데 이 산수가 무엇에 기반한 산수나면 2002년 투표때는 40대가 노무현을 많이 지지했었고, 그 사람들이 10년이 지나고 50대가 되었으니까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50대에서는 반띵싸움을 하고 아랫세대에서 60%정도 가져가면 절대 질 수 없다는 이런 생각에서 나온 산수인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사회문제들이 있었는데도 여기에 접근하기보다는 이런 산수에만 매달리고 있었고 청년세대에도 투표안하면 개새끼야라고 부를꺼야라는 심산으로 청년들에게 뭘 해주겠다기보다는 윽박지름만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앞서 던져본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진보담론은 왜 무서워하고 있는가라고 할 때 이들의 산수가 깨지기 때문에 그런거다. 즉, 청년세대의 보수화는 진보담론의 계산과 충돌하고 있는거다. 그래서 진보담론쪽에서는 짜증이 나고, 그래서 청년세대에 분노를 터트리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청년세대의 보수화를 본인들의 라이프 스타일로 지금의 청년세대를 보는거다. 386세대는 20대가 가장 진보적일때다. 근데 이 시대의 청년들도 당연히 그럴거라고 이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짐작을 하는거다. 그러면서 넌 대학생인데도 이정도밖에 정치적인 관심이 없으면 사회가서는 더 보수화가 되겠네? 이런 시선을 가지는거다. 근데 제 주변친구들은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봤었다. 대학생때는 전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 직장가서 전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상황을 맞이하면서 정치적으로 눈을 뜨는 그런 걸 저는 많이 봤었다. 근데 386세대는 노동노동 하긴 했는데 정작 노동으로 정치적 각성을 받은 적은 없다. 그래서 이런것도 청년세대와는 또 다른 차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실 저는 김용민이 굉장히 특이 케이스라고 생각을 하는게, 이 사람은 386세대의 담론을 따르면서도 정작 자신은 386세대와는 다르게 운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다가 짤리면서 정치적으로 각성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분이 어떻게 자신이 살아온 삶과 386세대의 담론을 수입한 것 사이에서 괴리를 못느낀건가 의문이 들었다. 근데 전 사실 사람들이 많이 그러고 산다고 생각한다. 저도 저가 대구태생이지만 대전에서 쭉 살아왔었기 때문에 만약에 저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대구태생이란 자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정치에 관심을 가지니까 사람들이 자꾸 저를 대구태생이라고 진보담론에서 주지를 시키는 것이다. 즉 저를 불신하는거다. 그래서 저는 고민이 되는거다. 386세대의 담론을 수입해서 살았고 그 물적토양에서 살았으니까 386세대가 비난하고 있는 우리 부모세대를 욕할 것인가, 아니면 부모세대를 따라서 386세대들이 사회경험이 없는 얼치기라고 욕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이 양자택일 사이에 다른 지점은 없는가 이런걸 보게 되는거다.
저는 386세대라는 규정 자체도 굉장히 폭력적인 규정이라고 생각을 한다. 당시 대학 진학률도 30%정도였고, 그 대학생 중에서도 운동을 한 사람은 소수다. 근데 그 소수가 이 386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번 대선결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냐면, 이 386세대가 동년배들도 설득을 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386세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동년배들이 이번에 다 새누리당을 찍고 그런가운데 무력했으면서 그 책임을 다 청년세대들에게 돌리는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 이제 슬슬 박권일의 요즘 전문분야인 네오라이트, 일베 이야기로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야스다 고이치씨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 등장하는 일본의 재특회와 일베를 비교하는 기사도 많이 나왔었고, 야스다 고이치씨가 방한을 해서 여러 이야기도 나왔었다. 근데 저는 일본의 재특회와 일베가 비슷한 지점도 있고 유럽의 극우와도 비슷한 모습이 있지만, 각 나라의 특수성도 각 양상에서 보이는 것 같고 재특회를 일베하고만 비교하는 것은 또 좀 맥락이 다르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박권일은 네오라이트를 분석하면서 지금의 일베보다는 더 넓은 문맥으로 분석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네오라이트 개념과 야스다 고이치와의 대담에서 느꼈던 것에 대해서 좀 말해달라.
박 : 저의 관심사는 사실 세대의 문제보다는 주체에 더 관심이 있는데, 세대에 대한 관심은 주체문제의 일부인 것 같다. 제가 네오라이트에 관심을 가진 것도 새롭게 드러나는 주체로서, 주체의 관심이라는 맥락에서 이어진 것이다. 우파의 불만이라는 책에 실린 글은 2010년 대학원때 석사과정에서 낸 기말페이퍼였는데, 그 내용이 다문화 반대 카페,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 담론분석이었다. 그걸 분석하면서 한국에 이렇게 많은 인종주의적인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고 그 담론이 의외로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두번 놀랐다. 그래서 그때부터 흥미를 가지고 계속 추적을 해왔고 일베는 최근에 문제가 됐는데 큰 맥락에서 본다면 일베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온 인종주의적 커뮤니티 운동의 일부로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일베만 주목하면 이런 큰 흐름과 한국사회의 문제를 알기 어려울거라고 본다.
뭐 어쨌든 전 이런 넷우익의 등장이 이런거라고 본다. 더이상 민주화 대 산업화 또는 민주 대 독재와 같은 이런 것들. 앞서 한윤형이 이야기했던 것 처럼 설득없이 이미 우리가 옳다는 이런 선험적인 규정이나 적대들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이 일베같은 현상이라고 본다.
지금 벌어지는 인종주의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물질적인 토대속에서 일어나는거다. 앞서 말했던 바다에서 배타고 일하는 사람들은 외국인노동자,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이미 노동시장의 경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속에서 실제로 이 외국인노동자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경쟁자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가지는 공포와 인종주의는 굉장히 유물론적이다. 따라서 일베에서 벌어지는 것은 사실 표면적인 것일 뿐이고, 그 밑바닥에 있는 진짜 문제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가 이미 외국인노동자들과 최하층의 한국인노동자들이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에 기반하여 등장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일베와 같은 넷우익 현상인 것이다. 이런 넷우익 현상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점점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저의 관심도 이런 예측때문이었다.
한 : 좀 이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일베와 재특회의 차이에도 좀 주목을 하게 됐는데 재특회의 경우는 재일한국인들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치면 이주노동자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흡사하다. 근데 일베의 경우는 호남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조중동까지 나서서 일베를 나무라고 그랬다. 그래서 얼마나 소수자를 차별하느냐의 관점에서 일베는 재특회와 이런 차이가 있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재특회도 그렇고 일베도 그렇고 마치 이들이 경쟁에서 떨어진 낙오자인 것 처럼 해서 이들을 처리하려는 모습도 나타나는데 이것도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일베의 경우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소리도 있고, 뭐 유학을 가있는 사람들이 한다는 소문도 있고 그런데, 저는 뭐 이게 사회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반호남주의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또 지배계층내에도 있었기 때문에 단순화일지도 모르지만, 으레 영남 강남이면 반호남주의를 가지게 되고,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온 자식들의 사고가 나중에 언론에서는 전혀 확인 받지를 못하다가 나중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확인받고 설득되는 이런 상황일 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서 386세대도 이야기했지만 진보담론의 전략이 영남은 새누리당 찍는 촌스러운 인간들, 그리고 강남은 악마화라는 철저한 주변화와 타자화를 해왔는데 그 결과가 사실은 일베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고 일베를 말하면서 역사교육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재밌는 것은 일본은 역사교육을 했는데도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 따라서 단지 역사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를 바꾸고 해서 교육을 하는걸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좀 심층적인 사회문제로서 다루어야 할 것 같은데 역시 진보진영이 해결해야할 어떤 답답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박 : (한윤형의 앞 이야기에서)정정을 할게 있는데, 야스다 고이치와 대담을 하면서 질문을 했던게 재특회 구성원들을 일본사회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느냐, 루저나 사회 낙오자로 보고 있는것이냐라고 물었는데, 야스다 고이치가 본 재특회는 멀쩡하게 좋은 직장다니는 사회 중산층이 절반정도 되고, 특이하게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할 뿐 사실 이 사람들을 루저로 볼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더라. 일본도 처음에는 재특회를 사회에 불만을 가진 루저들의 집단으로 묘사를 했는데 만나보니 그렇지 않았던거다.
저는 일베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표창원이 일베를 루저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알지도 못하지만, 일베가 루저라고 해봐야 걔들 열만 받게 하는 거다. 그리고 일베가 진짜 루저들이면 일베같은 키보드질을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생각해봐라. 키보드질을 할려면 시간이 있고 돈도 있어야 하는데, 진짜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하고 오면 바로 자야된다. 그래서 저는 일베 루저론 같은 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일베가 학력인증하고 그러지 않냐. 그 몇명만 인증해도 깨지는 담론을 왜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재특회나 일베와 같은 현상의 원인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심화되고있는 사회적 불평등에 뿌리가 있지 않은가라고 본다. 일본같은 경우도 워낙 장기불황이 계속되어왔고 그래서 소비를 하지 않는 사토리 세대가 생겼는데 이런게 한국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고, 이런 불황이 계속 진행되면 될 수록 내가 공동체구성으로서 받아야할 정당한 몫을 내부의 타자들이 뺏어가고 있다는 식의 박탈감이 강해질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바로 극우의 토양이다. 일베나 다문화 반대 카페, 인종주의 단체의 토양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사회 불평등을 해소해야한다.
역사교육도 역사교육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역사 교육을 한다 하더라도 그게 그대로 먹혀들 것 같진 않고, 저는 시민교육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시민교육은 역사교육이랑은 다른게 자유주의적인 다원주의와 같이 다른의견을 포용할 수 있는, 관점을 다루는 교육이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이런 시민교육 교과서들을 만들었는데 이런 것들은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인 것을 다루기 보다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갖추어야할 소양이나 태도를 교육하는 것인데 이런게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다.
한 : 네오라이트와 관련해서 박권일이 상상된 착취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즉, 실제로 겪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 사람이 기득권이고 내것을 뺏어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인데, 재특회와 관련해서 재특회의 현상이 한류와도 연관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실 재일한국인이 전적으로 불쌍한 존재라면 이 상상된 착취를 느끼기 힘든데 한류로 인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이 이미지를 재일한국인에 덧씌울수가 있는거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이 가장 작동이 잘 됐던 대상이 유태인아니냐. 소수자이고 탄압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돈을 많이벌고 잘 살고 있으니까 자본주의의 문제를 소수 유태인에 덧씌워서 이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상상된 착취가 잘 먹혔던 것 같고, 이로 연계지어보자면 한국에서도 노무현, 김대중 집권과 더불어 민주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상상된 착취가 (일베에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상상된 착취가 되려면 상대가 전적으로 찌질해서는 안되고 뭔가 좀 가지고 있어야 발동을 하는 것 같다.
근데 이 상상된 착취와 관련해서 좌파들도 스스로 좀 되물을 필요가 있다. 일베와 나꼼수를 비교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만 볼게 아니라 일베와 운동권을 비교한다든지 이런 것도 좀 해야 윤리적이라고 저는 생각을 한다. 나꼼수만 모든 것을 이명박의 탓으로 몰아간게 아니라 사실 이명박 집권 이후 진보담론의 정치평론자체가 다 미묘하게 그런식으로 흘러갔었다. 하지만 이것이 상상된 착취인지 아니면 제대로된 것을 잡고 있는 건지, 어느정도의 현실성이 있는지는 재각각 다 차이가 있지 않겠나? 이런점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경향신문의 일베와 나꼼수 비교는 비교를 한 것 자체로 욕을 먹는 것은 부당하지만, 비대칭적인 부분을 짚어주거나 좌파들 자신의 성찰이 좀 들어가 있으면 좋지 않나 싶은데 여기에 대해서는 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박 : 동의한다. 논리가 일관성이 있으려면, 자신에게도 적용할 줄 알아야한다. 진영논리로 계속 판단을 해버리면 결국 합의도 안되고 뭔가 생산적이지 않은 상황이 되는데, 계속 나꼼수나 일베를 공격한다든지 이런 사회적인 사안에 있어서 사람들은 계속 선험적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미네르바나 나꼼수 같은 경우도 결국 우리편 전문가가 되버린거다. 객관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계속 검증을 하고 논리를 우리편에게도 적용을 하고 해야하는데 사실은 그런게 없는거다. 그래서 어쨌든 형식적으로라도 적에게 적용한 논리를 우리편에게라도 적용을 하고 검증을 하는 훈련을 하는게 민주시민이 갖추어야할 소양이라고 저는 생각을 한다.
한 : 마무리 지어야할 것 같은데 정리멘트좀 부탁한다.
박 : 정리할 건 없지만, 한윤형 개인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논객으로서의 한페이지를 이제는 이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 책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이제는 메타비평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제대로된 비평가로서 자신만의 주제를 잡고 진득하게 써내려갈 수 있는, 뭐 예를 들자면 뉴라이트 사용 후기와 같은 그런식의 자신만의 주제를 잡아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공적 글쓰기를 해왔던 것에 있어서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계속 보여줬으면 좋겠고, 이제 세대론에 대한 건 그만 했으면 좋겠다. 세대론을 넘어서 사실 아직 싸울게 더 많고 아직도 파헤쳐야할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것에 있어서 같이 싸우고 합의하고 논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 저 자신도 세대론은 이 책을 통해서 정리를 하려고 하고 있고 다른 영역으로 활동을 하려는 계획은 있다. 설령 이제 제가 가끔 세대론을 끌어다 쓰더라도 그것이 이제는 세대론을 통한 분석은 아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어쨌든 박권일도 빨리 책을 완성해서 인강스터디를 하게 되면 나를 좀 초대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좌담은 여기까지고, 이후는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었는데 이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각색했습니다. 구체적 사례같은 경우 뺀게 좀 많이 있어요. 그래서 귀찮으신사람들은 그냥 글을 읽어도 되지만 완전히 내용을 파악하고 싶으신 사람들은 꼭 녹음파일을 들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여기 용량 제한 있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메가라니 너무하네. 원하시면 비밀댓글로 이메일 주소 적어주세요. 그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강의의 대략적 결론은 세대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사태(청년세대의 문제)는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로서 벌어지는 다양한 양태에 관심을 가지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정도가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