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이었나요? 트위터가 하루종일 성희롱 관련 트위터로 시끄러웠죠. 목요일 새벽 1시쯤이었을겁니다. 여성 트위터 유저가 뜬금없이 고은태를 언급하며 인권운동가라는 타이틀의 이면에 있는 그 사람의 더러움을 폭로하겠다고 폭풍 트윗을 했었죠. 근데 그 내용이 장난이 아닌지라, 만약 사실이 아니면 이 사람은 적어도 트위터에서만큼은 엄청난 공격을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죠. 그런데 그 트윗 이후 3시간이 지나고 고은태가 인정을 했어요. 충격을 먹었습니다. 이전까지 인권운동가로서 상당히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있었고 그분의 글도 상당히 좋아했었는데, 그게 산산조각 나버렸죠.


고은태가 상대에 대한 성희롱적 발언에 대해 인정한 이후에 오전부터 트위터가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고은태를 감싸는 사람들과 비판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져서 시끌시끌했죠. 그 사태를 보면서 참 여러가지 면이 드러났어요. 첫째로는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권위를 얻음으로 생겨난 팬덤이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대상을 지지하려고 하는지가 드러났죠. 고은태가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인정을 했음에도피해자가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과 피해자의 평소 트윗의 행태가 문란했다는 이유를 들면서, 고은태를 변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에서 2차 피해를 이야기하면서 고종석을 언급했는데 고종석도 그렇고 다수의 트위터리안들이 피해자의 과거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피해자의 음란함을 드러내려고 했었죠.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해자를 옹호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고 그렇게 행동한건지 참 의문이예요. 그리고 둘째로는 우리나라가 여성의 성에 대해 얼마나 억압적이고 보수적인지가 드러났습니다. 여자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드러냈을때의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이 얼마나 억압적인지 말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주요 신체부위를 드러내서는 안되고, 성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행위나 언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왜 여자는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분출해서는 안되는 합당한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그냥 여성의 성을 억압하죠. 피해자가 과거 트윗에서 섹스하고싶다는 트윗을 남겼는데 그게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것처럼 사람들이 리트윗을 하고 언급을 하더군요. 피해자도 말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여자가 섹스하고싶다고 말하면 음란한 걸 좋아하는거니까 대놓고 섹스를 요구하고, 섹스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그 외에도 남자들의 성도덕을 언급하면서 남자는 고은태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진짜 웃기는거죠. 성도덕이란게 어딨습니까. 성욕에는 도덕이 없어요. 행동에만 도덕이 있을뿐이죠. 고은태가 변태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젊은여자랑 섹스하고 싶어서 제안을 할 수도 있어요. 모두 별 문제가 안되는 일이에요. 남자가 여자랑 섹스하고 싶은건 당연한겁니다. 거기에 무슨 도덕이 있나요. 욕구만 있을뿐이지. 다만 문제는 그가 영향력있는 공인이자 인권운동가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있어서 도덕적인 비판을 받는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지속적으로 음란한 메세지를 보내면서 심리적인 압박을 줬죠. 그런 그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거예요. 그런데 남자는 원래 다 성적으로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고은태를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런사람들에게 극단적으로 말해서 자기 딸이 성희롱을 당했는데도 그런 입장을 취할건지 묻고싶어요.


위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언론에서는 고은태 사태를 성희롱으로 규정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문제가 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에 고은태는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거든요. 법적인 성희롱이 단순히 음란한 대화를 보낸다고 걸리는게 아니예요. 필수적으로 '직위'를 이용해 상대에게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줬을때 성립하는 겁니다. 이번 고은태 사태가 성희롱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직위'때문이에요. 고은태와 피해자 간에 직위관계가 성립되지 않죠. 언론에서는 피해자가 엠네스티 회원이라고 되어있는데 이것도 사실인지가 불분명하고 고은태의 국내엠네스티에서의 직위도 일반회원이에요. 이건 엠네스티가 공식적으로 언급해준겁니다. 따라서 직위를 이용해서 고은태가 피해자에게 성적인 요구를 해서 굴욕감을 줬다고 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에요. 그리고 피해자도 고은태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할 위치에 있었는지가 애매한 상황이구요. 따라서 이번사태를 법적으로 끌고간다고해도 성희롱이 성립할지의 여부는 불투명하죠.


피해자의 경우는 법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는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엠네스티측에서는 고은태의 처벌을 꽤나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 같구요. 어찌되었든 고은태는 인권운동가로서 쌓아왔던 이미지나 자신의 위치에 있어서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겁니다. 트위터 계정도 지웠고, 한동안 보기 힘들것 같네요. 뭔가 안타까운 마음도 있긴한데, 처신을 잘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만큼 무거운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Posted by honjo
,

관계

단상 2013. 3. 20. 19:58

20대의 시간을 형성한 나의 대부분의 사람관계엔 종교가 얽혀있다. 스무살이 된 그 좋은시절 종교에 귀의한게 문제였던게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꽤나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질릴정도로.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관계의 소중함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자유로움에 놓여지는 스무살때가 아닌가 싶다. 따라서 사실 그 시간에 형성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좋은 사람들과 꽤나 두터운 신뢰관계를 쌓으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가 허무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오늘날엔 워낙 인터넷, 전화가 발달하다보니까 물리적 거리가 있어도 가깝게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인터넷과 전화를 통한 관계는 뭐랄까. 그 토대가 참 부실하다고나 할까? 자칫 그 관계가 단절되거나 주위를 의식했을때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때 몰려오는 허무함이라는 건 참 감당하기 쉽지 않으니까. 따라서 아무리 전화나 인터넷이 발달해도 관계는 직접 얼굴을 대고 만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지금 내 관계는 위와 같이 허무한 관계가 되었다. SNS를 하고 스마트폰을 쓰고, 거기에 존재하는 무수한 연락처들과 친구관계가 있지만, 그들과 실제 오프라인 관계는 단절되었고, SNS와 스마트폰은 나에게 더이상 관계의 수단으로서 다가오지 않고 하나의 공허한 환상으로만 다가온다.


괴로운 지점은 애초부터 그랬으면 상관없는데, 믿음을 버리기 전까지 내가 쓰던 SNS의 친구와 스마트폰 연락처에 있는 그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는 사실. 바로 그 지점이다. 손에 잡혔던 관계가 지금은 공허한 관계가 된 것이 꽤나 나를 괴롭게 한다. 없던 사실을 망상으로 만들어냈다면, 그냥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있던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고, 현재의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으니 그 간극속에서 생겨나는 끊임없는 추억과 관념들이 날 자꾸 괴롭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추억을 더듬다가 잡힌 외로움에 놀라 멍하니 그 외로움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괴롭다. 이 감정을 마음껏 토해내던 과거의 시간이 사라진 것도 괴롭고. 이런식으로 내 괴로움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도 괴롭다.


Posted by honjo
,



경산 고교생 자살사건으로 이번에 학교폭력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네요. 매번 느끼는거지만 학교폭력이 일어나고 나오는 온갖 사설과 원론적인 이야기들, 선생님들의 심경을 듣고 있으면 좀 짜증나요. 과연 이 사람들이 정말 학교폭력을 근절하려는 생각이 있는건지. 그냥 어떤 일어난 현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자로서의 진단만 내리고 이 사태를 그냥 가볍게 지나가려고 하는건 아닌지. 매번 그냥 그렇게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학교폭력이 때린 학생과 맞아서 죽은 피해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이 사회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폭력의 현장에 뛰어들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이게 문제예요. 학교폭력이 어쩌고 저쩌고 그건 그냥 집어치우라고 하세요. 원론적인 진단은 까놓고 말해서 개나소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를 찾고 분석해서 학교폭력의 문제에 대해서 진단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성적지상주의로 인한 학교안의 경쟁구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지는 학교교사들에 대한 교원평가,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강화되는 교문지도 속에서 지켜지지 않는 학생인권,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는 교권 침해 등등 차고 넘치는 원론적 문제들이 던져주는 메세지는 학교가 엉망이라는 겁니다. 그걸 무슨 유식한 말 써가면서 설명 안해도 누구나 다 알아요.


하지만 누구도 이 문제와 현실을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진단만 할 뿐이죠. 이번에 자살한 학생의 유서를 보세요. 쇼킹이예요. CCTV를 더 설치해달랍니다. 자신은 CCTV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말이죠. 여전히 학교폭력이 첨단설비를 통한 경비의 강화나 제도를 통해서 근절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학생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CCTV가 작년 6월 쯤부터 대폭 늘어났죠. 전국에 설치된것만 10만대입니다. 근데 이게 지금 관리가 부실하거나 CCTV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나 엉뚱한데 설치되어있다는게 이번에 드러났죠. 한심해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겠습니까. 학교폭력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학교폭력예방책을 보여주기식으로 빠르게 진행하려고 하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한거죠. 졸속행정이예요. 진짜 학교폭력을 해결할 마음이 없었던겁니다. 이제와서 CCTV 손본다고 하는데 집어치우세요. 애초에 그걸로 막아질거였다면 이런일 발생하지도 않았죠.


전국 학교폭력에 대한 2011년도의 실태조사와 학교폭력의 예방과 근절대책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있는 글입니다. 복사해서 붙여넣는거보다 링크가 낫겠죠. 굳이 제가 일일히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조사에서 학교폭력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예방에 대한 좋은 의견을 개진해놨고 객관적인 자료도 많이 있어요.


2011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 발표 및 경향(청소년폭력예방재단)

링크 : http://blog.naver.com/bakbht/156204036


결국 문제는 뭘까요?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문제의 파악은 예전부터 이미 충분히 되어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실천하려는 의지죠. 학교폭력을 근절하고 학생들을 지켜내겠다는 확고한 의지 말입니다. 더이상 분석하려고 들지마세요. 피곤한 짓입니다. 지금이라도 실천하려고 작정해서 제대로 하면 학교폭력 확실히 줄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정신차리고 제대로 좀 합시다. 한심하게 CCTV를 바꾸겠다는 소리나 하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욕나옵니다 진짜.

Posted by honjo
,



공정위가 편의점 실태조사에 착수했네요. 작년 10월 쯤에 편의점의 수익구조에 대한 기사가 나서 관심이 있었어요. 오랫동안 편의점에서 일했고, 일했던 편의점에서 점장님과 두터운 친분을 쌓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편의점의 수익과 구조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도 들었고요. 제가 일한 곳은 직영점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점주님이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게 시급을 줬어요. 오래 일을 해서 그랬죠. 근데 편의점을 관두고나서 여러기사를 읽고 또 그때 일했던 편의점을 매출등을 생각해보니 정말 제가 최저임금보다 훨씬 많이 받은게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재수가 좋았던거죠.


신문에서도 아르바이트의 최저임금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꼭 언급되는게 편의점이예요. 최저시급 안주는 곳 1순위로 항상 꼽히죠. 근데 실상 편의점이 운영되는 실태를 생각하면 당연해요. 왜냐하면 편의점의 수익구조가 점주가 모든 것을 갖는 구조가 아니니까요. 편의점의 수익구조는 본사 35 : 점주 65의 비율이예요. 즉 100만원을 벌면 본사가 35만원을 가지고 나머지 점주가 65를 가지는거죠. 수익구조만 생각하면 점주에게 나쁘지 않은 구조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건물 임대료와 관리비 그리고 알바생을 쓸때의 비용이죠. 건물 임대료와 관리비 같은 경우 건물주와 계약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달라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기 힘들지만 알바를 고용해서 쓸 때 비용은 따져볼 수 있어요. 최저시급으로 24시간 알바를 고용하면 한달에만 361만원의 비용이 들죠. 이 인건비를 고스란히 점주가 부담해야해요. 편의점의 매출과 수익의 비율이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일했던 편의점의 경우 보통 평균 하루 매출이 110만원 안팎이었어요.(여름에 장사가 정말 잘될때는 최고 140만원 이상이고 겨울엔 거의 100만원 이하로 떨어지더군요.) 편의점은 여름장사라고 그러더군요.) 역세권이었고 상당히 장사가 잘되는 편이어서 점주님이 만족하고 있었죠. 원가와 판매가를 생각해서 대략적으로 단순하게 매출의 50%가 이익으로 남는다고 치면 55만원이 하루 이익인거예요. 그러면 점주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36만원 정도죠. 이걸로 한달 벌고 임대료에 알바비 다 주고나면 400정도 이윤이 남겠죠. 하지만 여기에서 편의점 물건의 발주비용과 관리비등의 비용을 모두 점주가 부담한다고 하면 거의 월 250 ~ 300정도가 될 것 같아요. 사실 이게 제가 건물이나 위치에 따른 임대료, 그리고 한달에 나오는 관리비나 발주비용을 잘 모르기때문에 대략적으로 계산한 것이이예요. 그리고 이 예는 굉장히 장사가 잘 되는 경우를 든겁니다. 아마 실제로 이보다 이윤이 안나올거예요. 이게 역세권의 편의점이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의 편의점의 경우죠.


따라서 매출이 60~70 하는 동네의 편의점을 예로 들면 확 달라지죠. 아마 한달에 100만원 정도 버는 것도 많이 버는거 일꺼예요. 따라서 점주가 편의점을 24시간 운영하면서 한달 수익을 더 내기 위해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편의점 알바의 시급 뿐이죠. 관리비, 매출에 따른 발주비용의 경우는 거의 고정으로 변하지 않거든요. 당연히 부담해야하는 돈이죠. 게다가 임대료는 재계약에 따라 오르면 올랐지 떨어질리가 없죠. 따라서 돈을 더 벌려면 두가지 뿐이예요. 점주가 아르바이트생 대신에 한 타임을 맡아서 근무를 하든지 아니면 알바생의 시급을 낮추든지. 사실 그래서 최저시급 안주고 알바고용해서 쓰는 편의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장사하는거예요. 먹고살기위해서 말이죠. 어떻게든 이윤을 얻어야해요. 편의점을 시작할 때 본사가 지원해준 건축과 인테리어등의 기본자금을 점주들이 장사를 하면서 본사에 갚아나가야하죠. 장사를 하다가 매출이 안나오고, 이윤이 적자로 돌아서고 편의점을 어쩔수 없이 폐점해야할 경우 점주는 본사에 위약금을 물어줘야하고, 따라서 바로 빚을 지게 되는게 현실이예요.


최저시급을 지급하지 않는 점주들이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장사를 하고 있는 점주도 본사와 상당한 불공정 계약속에서 쫒기면서 장사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물론 자기가 선택해서 한 장사니까 책임져야 하는 것이 순리겠지만, 점주가 책임있게 알바를 고용하고 책임을 지려면 본사와의 계약 구조도 공정하게 바꾸고, 운영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점주책임으로 돌리는 본사의 무책임한 태도도 개선할 필요가 있겠죠. 그래서 공정위의 실태조사는 당연하고 이로 인해서 편의점 점주와 본사의 계약구조가 개선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단순히 실태조사만 하고 끝나면 의미가 없죠.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계  (0) 2013.03.20
경산 고교생 자살사건을 보며 - 학교폭력예방에 대한 생각  (0) 2013.03.18
동성애에 대한 잡생각  (0) 2013.03.08
노원병 보궐선거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0) 2013.03.04
  (0) 2013.02.27
Posted by honjo
,



몇일전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가 동성애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동성애 이야기가 나온건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자꾸 깜빡깜빡한다. 나이를 하나 더먹어서 그런가. 하여튼 근데 갑자기 그 동성애의 주제가 사람이 아닌 동물로 바뀌었다. 동물도 동성애를 한다? 난 그런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아서 좀 놀랬다. 정말 동물도 동성애를 하나? 친구들은 동물도 동성애를 한단다. 심지어 사람과 거의 비슷한 비율일지도 모른단다. 전체 인구중에서 거의 5%정도가 동성애를 한다고 하는데 동물도 그와 비슷할꺼라나?


근데 궁금해졌다. 동물이 동성애를 한다는 걸 인간이 어떻게 알지? 사람의 동성애도 사실 자신이 "난 동성애자다." 라고 커밍아웃 하지 않으면 겉모습과 행동으로 알기가 어려울 정도로 동성애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리고 설사 동성애로 의심될만한 행동을 했다고 해도 동성애라고 쉽게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동물사이에서도 동성간에 친밀함을 표시하는 행동이나 성행위같은 것이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동성애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동성끼리 성관계를 하면 동성애일까? 단순히 자신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위해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 아닐까? 예컨데 뭐 애완고양이나 애완견같은 경우 중성화를 시키지 않으면 발정기가 됐을때 주인의 팔이나 다리에 매달려 묘한 짓을 한다던지 하는 그런거말이다.


그리고 인간처럼 동물이 다른 성에 대해서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의문점이 생겼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지만, 평범한 이성애자가 사랑을 할 때 사랑하는 대상을 대하는 행동과 태도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이만을 생각하고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육체의 다름이나 생김새의 차이를 넘어서 이성이라는 인식 가운데에서 여러가지 경험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관념이 있고 그런 관념속에서 사랑하는 것일테다. 동성애도 동성이라는 것만 다르고 이와 마찬가지일테고 말이다. 하지만 동물도 이러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인가? 상대가 동성이라는 인식을 가진 상태에서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일까? 동물들은 암수를 구별하기는 하겠지만, 상대의 성이 무엇인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단순하게 생물학적으로 암수를 찾기는 하지만, 욕구의 해소는 그 구별을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그냥 수컷 암컷이라는 인지 없이 그냥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뭐 그냥 쓸데없이 이것저것 생각해봤지만 역시 전문가도 아니고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결론을 낼 수는 없겠다. 사실 욕구 해소가 암수를 가리지 않는다면, 사실 동물의 동성애적 행위는 더 많이 발견되어야 하겠지만 사실 동물세계에서도 동성애는 자주 발견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따라서 사실 내가 생각한 것도 결국은 아닌 것 같다. 여튼 동물의 동성애도 그렇고 인간의 동성애도 그렇고 복잡하다. 단순히 욕구의 해소 뿐만 아니라 그 욕구의 대상 그리고 그 욕구의 해소 형태 또한 다양하다보니 어떠한 결론에 쉽사리 도달할 수 없다. 많이 생각해봐야할 문제인 듯 싶다.


Posted by honjo
,



요 몇일 노원병 지역구의 보궐선거로 언론이 떠들썩 하네요. 특히나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노원병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마자 정치판이 또 아수라장이 됐어요. 게다가 노회찬 측에 양해를 구했다는 송호창 의원의 이야기에 노회찬 측이 반박하고 나서면서 야권이 또 사분오열하는 양상이 되고 있죠. 대선때 야권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놓고 티격태격한지 몇 달이 됐다고 또 이런 양상을 보이는 건지.


먼저 안철수 측에서는 안철수가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출마를 결정했다고 밝혔죠. 하지만 왜 노원병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정치를 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서의 지역구 출마라면 다른 곳에 출마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야권에 유리한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달리 뭔가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남은 지역구가 부산 영도, 충남 부여·청양인데 두 지역구 모두 새누리당이 유리한 지역이죠. 따라서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의 결단이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소지가 높습니다.


그런데다 지금 야권이 안철수라는 존재로 인해 다시금 사분오열하는 모습은 이전에 받았던 대통령 단일화 과정의 정치적 피로를 다시금 안겨주는 행태인지라 야권에도 안철수에게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요. 그때의 그 피로감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데 말이죠.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안철수가 출마를 하게 될 것같은데 솔직히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대선이후의 3개월 칩거 생활 이후 노원병 출마를 선택한 안철수의 정치에 대한 약속이 그가 말하는 새로운 정치로 받아들여질까요?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질리도 없고 출마하면 무조건 손해일 겁니다. 무엇보다도 노원병이 왜 보궐선거지역이 됐는지를 안철수가 알고 있고, 노회찬의원의 의원직 상실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다면 출마하지 않는게 도리라고 생각했을겁니다. 권력비리를 폭로하고 그로인해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의 지역구에 자신의 정치를 위한 출마 결정. 이게 좋게 보일리 없죠.


민주당의 경우에도 난감하게됐죠. 안철수가 노원병에 정말 출마한다면 민주당은 양보 하는 것도 생각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가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민주당의 입장이 난처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죠. 안철수가 출마하는데 이번에도 안철수와 민주당의 대결구도를 만든다면 국민들이 민주당을 좋게 생각할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이번 보궐선거에서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노원병 지역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진 않아요. 대선 패배를 극복할 기회로 이번 선거를 생각하고 있을테니까요.


사실 가장 억울한건 진보정의당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억울한 판결로 상실한 지역구를 탐내는 세력이 너무 많아요. 공익적 일을 하고 의원직을 상실한 정치인을 생각해 도의적인 양보를 생각할 법도 한데 그런게 전혀 없죠. 새누리당보다 민주당 그리고 안철수와 경쟁해야하게 생겼어요. 야권연대를 이야기하던 얼마전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기가찰 노릇이죠. 야권이 무엇을 위해 하나가 되었던건지를 생각해보면 국민을 위한 정치, 새정치를 언급했던 그들의 말은 미사여구에 불과했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이정희 통진당대표도 언급했죠. 야권의 힘을 모을수 있는 고리는 오로지 여권의 집권을 막는 것 밖에 없었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것만 생각하면 안되죠. 권력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결국 권력을 취하려는 야권들의 투쟁속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혼자서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여권뿐입니다. 따라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보궐선거가 전혀 기대가 안되네요. 정신좀 차립시다. 무엇이 국민을 위한 정치고 국민을 위한 선거인지 잘 좀 생각좀 했으면 좋겠어요.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저임금 안지키는 편의점에 대한 생각  (0) 2013.03.10
동성애에 대한 잡생각  (0) 2013.03.08
  (0) 2013.02.27
민주당의 모바일 투표 폐지 흐름을 보며.  (0) 2013.02.21
노회찬 대법원 판결을 보며  (0) 2013.02.16
Posted by honjo
,

단상 2013. 2. 27. 18:33


방학이 다 끝나간다. 길고긴 방학의 끝자락에서 마음이 뒤숭숭하다. 방학을 허무하게 보냈다는 생각. 이런저런 고민과 뭔가 해야된다는 의무감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채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분명 겨울방학을 맞이하기 직전에 다짐했던 것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잊어버렸다.


요즘 이렇게 자꾸 잊어버린다. 기억했던 것과 기억해야할 것들을 말이다. 자꾸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으며 잊으려고 한다. 바보같이 말이다. 그런 물음을 던져봐야 괴로울 뿐인데, 잊혀지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는데.


2년 전부터 책을 잡았다. 어른들은 틈나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책 좀 읽어라' 인데 그렇게 읽으라고 다그쳐도 읽기를 싫어했던 내가 책을 손에 잡은 것이다. 그리고 이래저래 2년정도 책을 읽고 나서 한가지 느낀게 있었다. 내가 지금의 나를 참 싫어한다는 것을. 책 속에 적혀있는 온갖 좋은 말들과 글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채 책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나를 보는 순간 내 자신이 텅 비어있음을 느꼈다.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책 어딘가에서 나를 완성시켜줄 좋은 무언가를 찾으면 그걸 나의 것으로 하고 싶은 욕망에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저런 변명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이번 방학때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분명 책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난 책을 잘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책에 빠져있는동안 나는 나를 잃어버린다. 내 삶도 내 생각도 내 마음도 잊은채 책에 빠져버린다. 하아. 바보같다.

Posted by honjo
,



상당히 유명한 일드 1리터의 눈물입니다. 심심해서 봤는데 완전 빠져버렸어요. 드라마를 너무 잘 만들었더군요. 실제이야기여서 그런지 억지스러움도 없고, 현실적이면서도 드라마의 요소도 잘 갖춘 것이 각색을 엄청 잘 한것 같았어요. 뭐 이렇게 말해도 영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여튼 각설하고 잘 만들었습니다. 정말.


드라마의 이야기는 불치병에 걸린 한 소녀가 점점 자신의 몸에 장애가 생겨나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나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죠. 누구는 이 드라마가 엄청 뻔한 이야기라고 그러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주변 친구중에도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거든요.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 친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니까 저에게는 이 드라마가 뻔하게 다가오는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더군요. 



무엇보다 주인공의 몸에 장애가 생겨나면서 주인공 주변의 삶이 달라지고, 주인공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지면서 겪게 되는 주인공의 심경변화와 고통을 이 드라마가 정말 잘 담아낸 것 같아요. 내가 이전에는 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없다는 현실때문에 자신의 삶이 가장 우선적으로 달라지죠. 게다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생겨나고, 자신의 몸에 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해야하는 것들을 남들이 대신 해주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부담. 그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인식이 주인공을 엄청나게 괴롭히죠. 주인공을 당연히 돕는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주인공에겐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인공의 가장 소중한 가족이고, 그들 개개인의 삶의 소중함을 가족의 일원인 주인공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학생이었던 주인공은 학교에서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다만 학교에서 함께지내는 학우들의 태도는 가족과는 조금 다르죠. 주인공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학우는 주인공을 짐으로 생각합니다. 주인공때문에 다수의 학우들이 불편함과 피해를 입어야하는 것에 대해 학우들은 불만을 가지죠. 그래도 변함없이 자신을 도와주던 친구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부담이 된다는 것을 확인해가는 주인공의 마음은 또 한번 괴롭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불편한 몸으로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도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가죠. 사실 이 부분이 드라마의 가장 불편한 부분이예요.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지만 장애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과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장애를 가진 자신의 몸으로 이제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선택해야한다는 것이죠. 여기엔 필시 원망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내가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런 병에 걸려서 고통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냥 남들 다 하는 것처럼 살고싶고 그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생겨나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줍니다. 장애를 가진 그 순간부터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지점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게 주인공을 다시금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요.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주인공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스스로 감당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의 도움을 구하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장애를 감당할 권리와 장애로 인해 자신이 할 수 없는것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권리, 그 모두가 장애인들에겐 있죠. 즉 불편함을 감수할 권리와 할 수 없는 것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권리 모두가 장애인들에겐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를 인정하고 그 권리를 부여하고 지켜 주는 것이 필요하죠. 이 드라마는 그것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어요. 나중에는 정말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는 주인공이 가족의 배려를 받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불편해하죠. 그러면서 자신이 감수해야할 불편함을 찾으려고 애써요. 그게 자신의 권리이고 자신이 감당해야할 것이니까요.



장애를 겪지 않는 우리로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저 부분이예요. 장애인이 감당해야하는 부분과 장애인이 감당 할 수 없는 부분을 어떻게 구분하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도와야하는지에 대한 부분말이죠. 그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필시 도움을 받아야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우리는 잘 알지못합니다. 따라서 고민하게 되죠. 어디까지 장애인들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이들과 우리의 삶을 공유해야하는지, 또 어디까지 장애인과 우리는 다르다는 선을 그어야하는지 말이죠. 낙인 찍기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일원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죠.


장애를 겪고 있는 제 친구는 대학교 들어와서 만나게 됐는데 정말 대단한 친구죠. 신체가 조금 부자연스럽고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대화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친구인데, 대학교에서 항상 성적 장학금도 받을 정도로 열심인 친구였거든요. 지금은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지 않지만, 알게되었을때 2년정도는 정말 그친구와 대화를 많이 하려고 애썼었어요. 언어장애가 있다보니 대화를 받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하고싶은 말도 많은 친구였고 또 외로움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자주 긴 시간동안 대화를 하고 그랬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의 외로움과 긴 대화의 시간이 저에게도 슬슬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친구의 언어장애로 인한 대화의 길어짐과 그 친구의 말하고싶은 그 욕구를 제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죠. 제가 그 친구에게 해줄수 있는 것은 단순히 일상의 대화였고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었는데도 그것도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참 이 친구가 가엾고 힘들었겠구나 라는 동정의 마음에서 열심히 이 친구와 관계를 지속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마음만으로는 이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과 그로인해 관계가 다시 멀어졌을때 이 친구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게 된 다는 것을 알게됐죠.


참 어렵습니다. 함께 사는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은 분명 우리와 함께 있어야할 존재인데, 그러면서도 또 그들만의 권리를 생각해야하고 또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존재임을 우리가 인식하고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도 그들이 감당해야 할 것에 있어서는 우리가 나서서는 안되는 이 지점이 너무 어렵네요. 우리가 항상 함께하는 것, 통일성 그리고 하나됨을 이야기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하나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한번 느꼈어요. 그러한 불편함을.


이 드라마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평소에는 너무나도 당연히 할 수 있어서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뒤에는 할 수 없어서 이제는 그 당연했던 것이 너무나도 소중해진 것을 발견하는 지점에서 상당히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더군요. 저는 비관적인 인간인지라 그런지 그 지점에서는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말이죠. 어쨌든 이 드라마는 참 감동이면서도 이런저런 메세지를 많이 던져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꼭 한번쯤은 장애를 생각하면서 이 드라마를 보시길 바래요. 상당히 사회적으로도 던져주는 메세지가 있으니까요.



Posted by honjo
,


대선 패배이후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가 모바일 경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내 비주류라고 불리는 집단에서 친노진영에 대한 책임과 더불어 친노진영에 힘을 실어준 모바일 투표에 대해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도대체 대선 패배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고 대선패배의 요인으로 모바일투표를 지적하는 민주당의 모습도 뭔가 마뜩잖은 느낌이지만, 어쨌든 민주당쪽에서는 모바일 투표가 당심과 상당히 괴리가 있고, 또 모바일 투표가 특정집단의 기득권유지에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폐지를 하는게 맞다고 주장하는군요.


모바일 투표의 한계를 지적하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모바일투표라는 점이 모바일에 익숙한 특정한 집단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한계점은 분명이 있었죠. 특히나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 층의 표심이 이 모바일투표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구요. 국민경선이라는 것을 도입했던 민주당에서는 이 점을 극복하고 많은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투표를 준비했어야하는데 그 한계를 사실상 극복하지 못했죠. 이후에 모바일투표에 대한 뒷말도 꽤 있었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바일 투표를 통해 국민들의 표심을 반영한 당을 세우는 과정이 완전히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모바일 투표가 도입되는 과정은 민주당이 시민정당, 국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하고 자기들안에 갇힌 정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요구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처음으로 국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한 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상당히 획기적인 방법이었으니까요. 물론 그게 모든 시민의 의견을 완벽히 반영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반영하려고 했던 그 시도 자체는 상당히 혁신적이었죠.


따라서 이 모바일 투표에 대해서 민주당이 취해야할 태도는 사실 모바일 투표의 시스템 개선과 어떻게 당에 대한 국민들의 표심을 많이 그리고 모든 연령층의 표심을 골고루 반영해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모바일 경선에 참여했던 무수한 사람들과 모바일 경선을 주장했던 사람들을 특정 기득권 집단으로 규정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모바일 투표를 주장하고 조직을 동원해 경선에서 이기고 당권으로 기득권을 쥐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러 모바일 투표를 폐지하는 쪽으로 강하게 주장하고 있죠. 그러면서 당심과 민심은 모바일 투표와는 다르며,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고 승승장구했던 친노진영과 그 친노진영을 지지한 사람들은 조직된 소수이고 민심이 아니라는 결론에 까지 이르렀네요. 모바일 투표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상당히 기분이 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저도 참여했었는데 저는 동원되고 조직된 사람인가요.


그래서 결국에는 완전한 당경선을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면 당 경선은 조직동원이 없을까요? 모바일 투표를 폐지하고 당내의 당권을 가진 사람들로 당의 선거를 치루고 하면 민주당이 제대로된 정체성을 가지고 제대로된 정당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했을때 국민들이 인정해줄까요? 제 생각에는 어느하나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무엇보다도 대선이후에 벌어지는 모바일 투표의 논란과 여전히 계속되는 계파 싸움을 보면서 민주당이 얼마나 대선이 되어서 까지도 당내에서 연합도 안된 오합지졸의 상태로 서로 투닥거리면서 대선을 치루었을지를 생각해보니, 이 정당은 아직 한참 멀었다 싶습니다. 설사 모바일투표가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고쳐나가면서 연합하고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어야하는데 말이죠. 실상 지금의 모바일 투표 폐지와 함께 나오는 대선패배에 대한 보고서를 보고 있으면 결국 친노가 다 말아먹었다는 식이니까요. 사실 결론은 민주당 니네가 그냥 다 못한거고 모두가 말아먹은건데 말이죠. 이런 모습을 보니 5년후도 별로 기대가 안됩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원병 보궐선거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0) 2013.03.04
  (0) 2013.02.27
노회찬 대법원 판결을 보며  (0) 2013.02.16
가족이란 의미  (0) 2013.02.09
논란이 되는 기초연금의 문제점  (0) 2013.02.04
Posted by honjo
,


정말 웃기네요. 삼성과 관련한 안기부 X파일에서 검사의 실명을 공개하고 고발한 노회찬 의원이 결국에는 집유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이니까 앞으로 2년동안은 국회의원에 출마할수도 없고 2년의 시간이 흘러도 이후에 재보궐 선거가 있기까지는 국회에서 볼 수 없겠죠. 아쉽네요.


법원의 판결을 보며 참 화가났습니다. 어떻게든 노회찬의원을 끌어내리기 위한 판결로 밖에 보여지지 않더군요. 사실 안기부 X파일의 도청과 그것을 확보한 자세한 과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저는 불법도청으로 인해서 징역형을 받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 파일을 받은 과정은 안기부에 소속되었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안기부를 나왔던 직원이 도청한 X파일을 가지고 있다가, 이 파일을 이용해 재기를 꿈꾸던 사람들에 의해 여기저기 협박용으로 이용되다가 결국 MBC의 이상호 기자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더군요. 그리고 이 녹취록에 있는 사람의 실명을 거론한 것이 노회찬 의원이구요. 결국 요지는 노회찬의원은 이 파일을 불법적으로 구한 것도 아니고 도청을 한 것도 아닙니다. 불법도청은 안기부(국정원)가 한거죠.


하지만 이 고발이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용기있게 고발했는데 그 고발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목을 친 격이 된거죠. 마치 그런거예요. 이웃집에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이 집에 침입하려하길래 동네방네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도둑이다!!!" 라고 했더니, 이후에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하고 보니 도둑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소리친 사람이 너무 시끄러우니 "당신 왜이리 시끄러워" 하면서 고성방가로 잡아가는 격 인거죠.


사실 정말 웃기는게 노회찬 의원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법원은 모두 인정을 했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언급한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의 실명 거론에 대해서도 녹취록의 대화를 통해 충분히 이성적으로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라는 점을 인정했구요. 그리고 녹취록의 내용에 비추어 삼성이 검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했을 것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죠. 결국 노회찬 의원이 한 행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법원이 확정시켜준겁니다.


근데 고작 그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걸린거죠. 참 웃깁니다. 법의 판결이 이렇게 난 것도 웃기고 답답하지만, 노의원을 명예훼손 및 통비법으로 기소한 검찰의 모습이 더 치졸하고 더럽게 느껴집니다. 이 조직은 정말 반성할 기미도 없고 자정할 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상호 기자 같은 경우에도 똑같은 통비법으로 검찰이 기소를 했었죠. 이런모습들을 보면 검찰들은 법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든 혐의를 적용시켜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하려는 거죠. 이게 사법부와 행정부의 참 모습이 맞는지 의문이네요. 법원은 그렇다고 있는 법을 적용 안시킬수도 없으니 판결을 내렸을테고. 참 답답합니다.

Posted by honj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