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의미

단상 2013. 2. 9. 10:01

설날이다. 설날이 되었는데도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은지 거의 4년쯤이 되어가는 것 같다. 사실 이번 설날에는 내려가려고 했었는데, 아버지의 차가 몇일전 고장이나고, 버스와 기차가 모두 매진되어버려서 못내려가게 되었다. 뭐 그런 이유이긴 하지만 사실 작정하고 내려가려면 내려갈 수 있었을테다. 하지만 그냥 귀찮아지신게지. 나 역시도 별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 친척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왕래가 잦아서 친밀한 것도 아닌데다 애초에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뭉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전에 그렇게 "가족이 먼저다."를 외치시며 명절을 챙기고 빠짐없이 내려가시던 아버지가 명절을 챙기지 않게 된 이유가 있다. 그건 고모로 인해 생긴 가족간의 다툼 때문이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모부를 교통사고로 잃게 된 고모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가 자식과 아내도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뒤 집안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일단 고모가 유부남과 교제한다는 사실에 모든 가족들이 분노했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동의했다. 하지만 이후에 고모를 더이상 가족으로 대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들간의 다툼이 심화되면서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들의 사이도 어색해져버렸다.


참 바보같다. 뭐한다고 그런 다툼을 벌이는지.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실상 그런 다툼의 자리에 고모는 없는데, 없는 사람을 두고 가족끼리의 다툼으로 또 서로가 어색해져버리다니. 당사자인 고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고, 그냥 유부남을 좋아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만 몰두해 고모를 그냥 가족의 이름을 더럽힌 사람으로 낙인 찍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렇게 고모는 우리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와버렸다. 물론 여전히 고모가 혈연으로 맺어져있다는 사실은 무슨 수로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혈연이라는 것이 지금 이 사태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너는 내 핏줄이다.' 이거? 다 쓸모 없다. 특히 고모는 절절히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최근들어 깨어지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이혼률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상처받고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이제는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자연스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막 종교를 믿기 시작했던 2006년쯤부터 적어도 청년들에게 중요했던 한가지 화두는 가족의 깨어짐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힐링. 회복. 참 지금 생각해보면 종교가 그런 변화의 지점을 민감하게 잘 잡아내긴 한 것 같다. 물론 그 해결 방식에 있어서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랬던 흐름이 이제는 세상에까지 퍼졌다. 힐링캠프. 힐링이 필요해. 서로다른 힐링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힐링의 지점도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개개인에게 이 힐링이라는 단어는 먹히고 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지점이다.


뭐 어쨌든 가족의 회복 또한 필요한 것이겠다. 노력도 해야하고 뭔가 좋은 방법도 찾아야할 것 같다. 왜? 가족이니까.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니까. 누가 뭐래도 내 가족이니까. 그런데 가족이 가족을 죽이고, 이혼을 하고, 자식을 버리고. 이런 일이 힐링을 이야기하고 가족을 회복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왜? 가족이잖아! 근데 왜?


"가족 가족 가족!!" 가족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족이 형성되었던 그 과정과 역사의 사실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애초에 한 가정이 형성되는 시작은 남남에서부터다. 생판 모르는 남남이 만나서 결혼을 해 가정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끊을 수 없는 인연 이런건 없다. 그런 종교적 발상은 제발 집어 치우자. 오로지 가족의 형성은 남남이라는 존재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남의 존재로 만났기때문에 앞으로 만들어나가야할 가족의 영역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은 그 영역을 만들기 위한 책임의 시작일 뿐이다. 결혼했기때문에 이제 가족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남남의 연합의 이루어짐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자식을 낳아 새로운 가족이 생겨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 자식이 바로 너, 바로 나라는 사실은 애초부터 정해져있던 것도 아니고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같은 자식이 나올 줄 알고 부모가 나를 낳았을까? 전혀. 자식을 가졌지만 그 자식은 완전히 하나의 낯선 존재로 가족의 영역에 들어올 뿐이다. 가족은 그 낯선 존재를 책임지고 보살핀다. 그렇게 자식을 키우는 것이다.


아주 대충이라도 가족의 형성을 살펴봤을때 가족을 유지하고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드러날 것이다. 바로 책임이다. 오로지 낯선존재들끼리 만나 연합하는 이 과정가운데 그들이 가장 우선시 해야할 것은 책임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의 주체로서 그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택하지 못한 것은 가족을 형성하는 대상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내가 원하는 아내, 내가 원하는 자식을 선택하지 못했을 뿐,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 그 모든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이 선택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대상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부터 가족의 깨어짐과 상처와 고통은 시작된다.


따라서 사실상 가족의 깨어짐, 상처와 고통은 피할 수가 없다. 운 좋게 정말 내가 원하는 존재를 만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가족의 깨어짐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로서는 두 가지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나는 가족을 형성했을 경우 책임을 의무화 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말이다. 법으로. 또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제거하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우리를 깨어짐과 고통으로 내모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이라는 개념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는 실현 불가능하다.


가족으로 인해 생겨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감당하려면 우리는 힐링을 외칠 것이 아니라 제대로된 현실을 직시하는 것 뿐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약한 고리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 가족을 잘 형성하고 꾸려 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무시무시한 책임을 감당해야하는지 말이다. 자신이 전혀 원하지도 않았던 존재를 책임져야한다니. 어휴.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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