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2001)

One Fine Spring Day 
9.2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박인환, 신신애, 백성희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06 분 | 2001-09-28




영화 '봄날은 간다' 이다. 사실 필자는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필자가 봤던 한국 로맨스 영화중에서는 가장 잔잔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극단적인 설정(예를 들면 둘중 한명이 죽을병에 걸렸다든지.)도 없고, 아주 무난하면서도 잔잔하게 사랑을 다룬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나니 뭔가 복잡한 감정이 들었고, 영화를 이해하려하기 시작하니까 영화가 어렵게 다가왔다. 뭐 이 영화에 대해서 아는 동생 녀석과 이야기를 했더니 사랑 영화는 이해하려고 보는게 아니래나 뭐래나...





굳이 나오는 등장인물의 배경을 일일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나니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떻게 사랑이 변해가는지에 대한 과정 인것 같다.


시작은 극중 상우(유지태)의 할머니가 역에서 죽은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할머니는 죽은 할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자주 역으로 찾아가 기다리는 행동을 보인다. 이 장면은 나중에 상우가 후반부에 동일한 장면에서 할머니에게 울분을 토하는데, 이것은 할머니의 변함없는 할아버지를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계속된 기다림에 대한, 즉 자신이 믿었던 사랑에 대한 울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만남. 상우는 녹음실에서 오디오 녹음하는 일을 하고, 은수는 시골의 자연의 소리를 담아 들려주는 라디오 진행자다. 우연히 일을 같이하게 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상우는 은수와 함께 작업하면서 조금씩 은수에 대해 알고싶어한다. 하지만 은수는 이미 한번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상처가 있다. 누군가 걱정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마음에는 벽이 있다. 상우는 은수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만, 은수는 소화기 사용법에나 주목하면서 상우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과거의 사진첩을 보면서 젊었을때의 할아버지는 알아보면서도 나이 들고 나서의 할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늙고 변해버린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상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랑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상우는 지금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둘은 계속 함께 작업하며 더욱 가까워진다. 여전히 은수는 상우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지만, 그의 세세한 배려 덕분인지 은수는 상우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명대사.. 봄날은 간다가 원조였다..)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분명 은수는 상우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걸로 모자라 자고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분명 상우에게 저 말은, 은수가 자신을 다 받아들인 것 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섹스야말로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 아닌가? 하지만 은수에게는 함께 자는 것 또한 사랑의 과정이다. 여전히 가까워져가는 과정인 것이다.




은수는 자신이 자고 가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으면서도, 상우와 관계하는 것은 좀 더 친해진 후에 하자고 미룬다.




상우는 드러난 자신의 마음과 욕망에 부끄러워하지만 더이상 감추지 못한다.





은수는 한자리에 있는 무덤을 보면서 "저 무덤처럼 죽으면 같이 묻힐까?" 라고 묻는다. 상우는 대답하지 않지만 벌써 마음은 저 무덤과 같다. 영원히 함께하고 싶고,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일까? 은수는 저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상우와 같은 마음이 아닌 것 같다.






은수는 직장에서 상우와의 관계에 대해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상우는 은수의 그런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지만 은수는 둘의 관계가 알려지면 상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짤릴 수도 있고, 그러면 만나기 어려워지니까 그런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관계를 확실히 하고싶었는지 상우는 은수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꺼내지만 은수는 난감해한다.




결혼이야기를 꺼낸 상우가 부담감으로 다가왔을까? 일을하면서 만난 다른 남자 앞에서 또 소화기 사용법을 이야기하는 은수. 아마 이 지점에서 은수는 상우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우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은수에게 그 남자는 분위기 전환을 이야기 한다.





은수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어디었을까? 은수는 왜 여전히 상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가? 상우와 은수의 관계는 왜 변하고 있는가? 아니 정확히는 왜 은수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기는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분명한 것은 결혼을 이야기한 지점부터 은수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수가 이미 한번 결혼생활을 했었고, 그리고 이혼한 이후 결혼에 대한 상처가 있어 그 생활이 부담이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상우가 싫어서 그런 것인지, 아직은 상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은수는 상우에 대한 마음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상우는 여전히 멈춰있다. 상우는 은수가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게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필자처럼..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상우의 달라진 지점이다. 언제부터인지 상우는 은수에 대해 궁금해하고 은수의 지점에서 출발했던 자신의 사랑이 완전히 자기중심으로 변해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은수가 부담스러워하는 지점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필자가 앞에서 던진, 은수가 왜 그러한지에 대한 질문을 은수에게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는다. 그냥 '도대체 왜 나의 사랑은 이다지도 힘든 거지?' 에 그는 빠져있다.





은수가 떨어져서 시간을 갖자는 말도 상우에게는 헤어지자로 받아들여진다. 은수는 헤어지자일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상우는 받아들일 수 없다.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명언이 나온 장면. 영화는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상우의 저 말에 은수가 사랑한다고 대답했어도 상우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사랑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수는 분명 상우를 사랑했다. 하지만 상우에게 은수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고 거짓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장면. 상우는 아직도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화를 낸다. 자신도 은수를 기다리면서. 할머니와 똑같이 은수와의 좋았던 시간을 기다리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을 부정하고 싶고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롭다.




"여자와 지나간 버스는 기다리는게 아니란다." 하지만 할머니는 사랑이 변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기다린다. 사랑의 모습은 변화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다시만난 은수가 상우에게 다시 함께 있자고 말하지만 상우는 은수와 함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수에 대한 상우의 마음은 여전하다.




진짜 어렵다. 사랑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니. 이 영화에 대해 쓰면서 나온 결론이다. '사랑은 변한다'로 끝나는 것 같지만, 무언가 남았다. 사랑에 대한 모습은 변했지만 사랑에 대한 추억, 기억, 감정, 마음은 남았다.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수용해야할 사랑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 이것이 아닐까? 근데 난 모르겠네.. 모르겠네........(먼산...)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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