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청 달달한 일드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2014년 1분기 게츠쿠인 실연 쇼콜라티에다. 일단 출연진부터 눈에 들어왔다. 이시하라 사토미와 마츠모토 준. 근데 이 둘의 케미가 괜찮을지에 대해서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1화 보고 그런 우려가 다 날아갔다. 둘은 생각보다 잘 어울리고. 그리고 이시하라 사토미는 정말정말 예쁘게 나온다. 눈이 호강한다.





이시하라 사토미 먹방인데 사람을 미치게 한다. 사실 뭐 이 드라마의 대략적인 스토리 자체는 한국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막장 로맨스물이라고 해도 될거다. 여주인공 사에코(이시하라 사토미)가 유부녀가 됨에도 불구하고 남주인공 소타(마츠모토 준)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계속 사랑하는 그런 이야기니까. 한 마디로 짝사랑과 불륜의 사이인데, 그걸 매우 잘 포장해서 달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아마 이 드라마는 끝날 때까지 사랑과 불륜의 외줄을 계속 타고 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스토리에서 기대할 것이 뭐가 있으리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짝사랑과 불륜 사이의 로맨스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리게 될지 난 궁금하다. 이유는 바로 저 여자. 이시하라 사토미 때문이다. 이시하라 사토미는 이 드라마의 달달함을 증폭시키고 있다.





1화부터 이렇게 화끈한데, 앞으로도 이런 장면이 아마 종종 나올 것이다. 아니 나오리라고 나는 기대하고 있다. 유부녀와의 로맨스인데, 이런게 없다면 이 드라마를 무슨 재미로 볼 수 있으리오. 달달하면서 눈 호강할 수 있는 일드를 찾고 있다면 실연 쇼콜라티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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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라가 시끄럽다. 철도노조 파업 때문이다. 어제는 경향신문사 건물의 민주노총 본사에 경찰 5500명이 투입되어 엄청난 논란을 낳았다. 코믹이다. 민주노총은 철도노조 지도부가 민주노총 본사에 없다고 그렇게 통보를 했음에도 믿지 않고 엄청난 경찰병력을 경향신문사 건물에 투입시켰다. 공권력 과잉을 넘어 공권력을 낭비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 웃음만 나온다. 이쯤되면 의문이다. 도대체 이런 공권력을 투입해서까지 철도노조 지도부를 잡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철도노조 지도부가 테러집단의 우두머리라도 되는가? 도대체 왜 이토록 노조를 탄압하는가? 노조 탄압의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현 정부에 던져야할 질문이다.


철도 노조 파업의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의 가장 큰 이유는 철도민영화다. 이명박 정부때(2011년 말)부터 추진된 KTX의 민영화 정책으로 수서발 KTX구간을 민간사업자에게 맡기는 사업이 박근혜 정부에서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서발 KTX의 민간참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현 태도다. 이명박 정부때 국토부의 KTX민영화 정책이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2012년에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KTX민영화를 언급하며 제동을 걸었다.(기사링크)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그럼 생각해보자. 왜 철도노조는 민영화에 반대하고 있는가? 직접적인 영향부터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 당연히 이 민영화는 철도노조의 일자리와 연관된다. 이명박 정부때부터 KTX철도의 민영화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코레일의 적자(매해 5000억)와 방만한 경영 그리고 과도한 임금(평균연봉 5800)이다. 게다가 올해 용산 개발 사업이 무산되면서 코레일의 부채는 2012년도 기준으로 14조를 넘어섰다. 이러한 코레일의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면은 정부의 KTX민영화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되었으며, 코레일의 구조조정에 대한 꾸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코레일의 구조조정은 당연히 인원감축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코레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KTX의 수서발 민영화로 인한 경쟁, 그리고 그로 인한 코레일의 적자노선 매각과 경영개선은 자연스레 매각된 노선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실업과 인원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노조는 당연히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철도노조의 생존과 연관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수서발 KTX의 민간사업은 명분이 있는가?

철도노조의 파업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파업을 귀족노조의 밥그릇 지키기 투쟁이라고 욕하고 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왜 나쁜가? 난 역으로 묻고 싶다. 그리고 이런 파업이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도노조가 외치고 있는 구호는 자신들의 일자리만을 지키기 위한 구호가 아니다. 철도민영화는 철도노조 뿐만 아니라 당장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제이며, 노조는 이를 문제 삼고 있다. 따라서 주목해야할 것은 철도노조가 내걸고 있는 저 민영화반대 구호다. 그리고 정부가 내거는 민영화의 이유다. 과연 이번 사업추진은 철도민영화인가 아닌가, 그리고 민영화라면, 그 명분은 마땅한가.

먼저 수서발 KTX의 민간참여로 인한 경영, 적자개선을 보자. 수서발 KTX의 만간참여로 인한 경쟁과 그로 인한 코레일의 경영과 적자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철도가 가지는 특수성이다. 수서발의 노선을 살펴보면 수서에서 평택 구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구간이 현재의 코레일 노선과 동일하다. 같은 노선을 사용하는 만큼 이용할 수 있는 기차도 한정되어 있다. 현재 KTX의 서울-부산 노선이 20대의 차량으로 운행되고 있는데 이 이상 차량을 증가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다른 회사가 생길 경우 있는 차량을 나누어 운행하던지 코레일이 차량을 줄여야만 한다. 이것이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결국 기존의 있는 파이를 수서발 KTX회사와 나누어 먹는 식이 되면서 코레일의 적자는 가중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는 코레일의 경영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는 방식이다.

게다가 현재의 철도법상으로 수서발 KTX의 자회사를 설립하게 될 경우 철도공사의 관할 아래에 운영자가 복수가 되어버린다. 이에 대한 안전문제는 코레일 내부 보고서에서도 지적되었다.(기사링크) 운영자는 복수이지만 철도 노선은 하나로 운행된다. 문제는 수서발 KTX 자회사의 경우 현재의 철도법으로는 노선과 차량의 유지, 보수, 개량, 점검이 불가능하다. 즉 오로지 운영만 가능한 것이다. 철도의 유지보수에 대한 책임이 없는 수서발 KTX의 자회사가 승객의 안전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 국회 입법조사처도 이러한 점을 지적했다.(기사링크) 이는 경쟁을 통한 서비스 개선을 주장한 국토부의 주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철도민영화로 내세우는 국토부의 코레일 경영개선과 서비스개선으로 추진되는 수서발 KTX의 민간사업은 사실상 명분없는 추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철도의 특수성과 철도법을 생각한다면 국토부의 이러한 추진은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더 많다.


철도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와 여당? 사실인가?

정부의 이번 수서발 KTX 민간사업 추진을 두고 민영화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지금도 거센 상황이다. 일단 정부는 철도공사에서 회사를 만들고 코레일 지분 41%, 공적자금 지분 59%으로 민간자본의 투입이 없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며, 공적자금 지분의 매각에 대해서도 3분의2 이상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코레일의 지분이 41%이므로 코레일의 허락 없이는 지분 매각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철도노조의 사람들은 이사회의 정관 변경, 그리고 공공지분에 대한 우회적 접근을 통한 자본의 투자와 같은 측면, 민간자본에 지분을 매각할 경우 면허 취소를 하겠다는 국토부 결정의 위헌 소지를 지적하면서 민영화 방지에 대한 강력한 법제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역시 이러한 철도노조의 민영화 금지법 주장에 대해 한미자유무역 협정과의 충돌, 과잉입법을 이유로 법제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논란속에서 중요한 것은 수서발 KTX의 민간사업이 철도민영화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을 허락하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는 점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토부의 주장대로 다른 법인을 통한 철도의 공급을 허락하게 될 경우, 한미FTA협정에서 맺어진 "2005년 6월 30일 이전 건설된 철도노선은 철도공사만이 공급할 수 있다."는 규정을 통한 철도의 독점권을 더 이상 고수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기사링크)

수서발 KTX의 경우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철도노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저 법의 적용을 받는데 국토부는 지금 다른 법인을 허용하면서 예외를 두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사례로 남아 미국을 통해 들어온 자본이 철도사업에 뛰어들 때, 우리나라의 철도 독점에 대한 이의제기 근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공공사업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문제.

이번 수서발 KTX의 민간사업 추진의 가장 큰 이유는 코레일의 적자해소와 부채감축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경쟁을 해야된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저 말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공공기관의 적자는 코레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한전의 경우 95조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다. 하지만 한전의 경영개선을 위해 한전과 경쟁시킬 민간사업을 유치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공사업과 자본의 경우 적자나 수익, 부채로 그 가치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철도, 전기, 물, 가스, 도로와 같은 사회자본의 경우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사용되며, 이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따라서 당연히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수익이 나지 않는 곳에도 도로를 만들고, 철도를 놓고,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공공사업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수익과 경영을 빌미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편의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수서발 KTX 자회사가 설립된다고 해서 국민의 편의가 보장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으며, 오히려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로서 코레일의 경영개선을 위한 뾰족한 수가 없다면, 무리한 사업 추진은 멈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고집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그 고집으로 인한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된다.



21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코레일 직원은 철도사업이 현 정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50년, 100년가는 사업임을 강조했다. 이 말대로 철도는 박근혜 정부만의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국민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지금 추진하는 철도사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검토를 해봐야한다. 빠른 결론과 추진이 능사는 아니다. 그를 위한 공권력 투입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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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박가분

단상 2013. 11. 29. 23:45



일베의 사상

저자
박가분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3-10-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김치녀’ ‘홍어’ ‘보슬아치’ ‘좌빨좀비’ ‘노알라’ ‘민주화...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박가분이 쓴 일베의 사상이다. 구입하고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의 결론을 내가 느낀바로 정의하자면 '도로 하버마스'랄까? 일베의 사상이라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받은 필자에 대한 느낌은, 안타까운 회의감 속에서도 한줄기의 이상을 바란다는 그 어떤 간절함이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냐면, 필자의 결론이, 결국 일베현상이라는 것이 우리의 목소리(또는 욕망이)가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어떤 다른 공간을 구축하는 시도라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광장이기도 하며, 인터넷 공간이기도 하다. 촛불은 국가가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자,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해달라는 요구이자 욕망의 표출이었다. 반대로 일베는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국가와 권력, 이상에 대한 깔아뭉개기와 희화화를 통한 욕망의 표출이다. 촛불이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욕망을 드러내고 현실속에서 활동하면서 현실정치에 이를 요구했다면, 일베는 현실정치에 대한 환멸로 인해 더이상 현실에 드러나지 않으며 오로지 인터넷 공간을 통해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해 나간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왜 자신들의 욕구를 다른 어떤 것을 매개로 해서 드러내고 있는지다. 촛불은 자신들의 욕망과 이상을 국가와 권력에 요구했다. 일베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권력을 의식하고 이를 희화화하면서 자신들의 욕망과 이상을 진행시켜나갔다. 저자가 마지막에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욕망을 실현시킬 구체적인 무언가를 촛불도 일베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속에서, 오로지 어떤 다른 주체(권력과 이상)를 통해 이를 실현시키려다보니 길을 잃고 폭주한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현실 지평에서 스스로가 다른 어떤 것을 매개로 하지 않고 타인과 교류함으로서 이상을 공유해 나가는 공동체를 주장한다. 이는 앞서의 촛불이나 일베가 어떤 권력이나 이상에 기대어서 자신의 욕망을 교류했던 것과는 다르다. 이러한 권력과 이상은 수직적인 것으로서, 하나의 기준이 되어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어떤 합리적인 합의나 교류를 방해하고 왜곡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로 인해 나타난 인터넷의 모습과 광장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권력과 이상에서 벗어난 수평적인 교류와 합의를 생각하고 있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바로 하버마스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이상적 담화상황이라는데 있다.


저자는 공론장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있는 지점을 말하고 있지만,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공론장과 그 논의는, 실재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생각하는 공론장과 그 공론장이 정당화되기 위한 조건에 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각자 다른 욕망과 다른 삶의 지평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아마 하버마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의사소통을 왜곡하는 체계 또한 언제나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하버마스는 우리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요구되는 어떤 당위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위를 벗어났을때 우리의 의사소통은 왜곡된다.


일베는 그런 측면에서 공론장의 하나의 왜곡된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촛불도 마찬가지다. 일베가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아예 합의적, 토의적 측면이 발휘되지 않는 그런 공간이라는 것은 하버마스에게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각자의 주체가 합의에 이를 수 있는지 여부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는 의사소통과 공론장이라는 측면을 생각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각자의 삶의 지평을 가진 주체들이 모두가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사실 정말 이상적이다. 실제로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 느끼고 있는 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버마스의 주장이 허무맹랑하고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사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든 각 주체와 합의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합의는 상호평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결국 우리 주변에서부터 실현시켜 나갈 수 밖에 없다. 결국 저자의 주장도 이와 같다고 나는 판단했다.


일베는 우리의 어두운 현실 그 자체다. 따라서 일베의 문제는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베 문제 속에 담겨진 우리의 문제를 파악할 때, 일베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어보인다. 촛불과 일베의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스스로 주체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이 상황에 이르게 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냥 겁쟁이라서? 그건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 왜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다른 무언가를 매개로 해서 표현하고, 표출하게 된 것인지.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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