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사상 - 박가분

단상 2013. 11. 29. 23:45



일베의 사상

저자
박가분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3-10-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김치녀’ ‘홍어’ ‘보슬아치’ ‘좌빨좀비’ ‘노알라’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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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이 쓴 일베의 사상이다. 구입하고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의 결론을 내가 느낀바로 정의하자면 '도로 하버마스'랄까? 일베의 사상이라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받은 필자에 대한 느낌은, 안타까운 회의감 속에서도 한줄기의 이상을 바란다는 그 어떤 간절함이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냐면, 필자의 결론이, 결국 일베현상이라는 것이 우리의 목소리(또는 욕망이)가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어떤 다른 공간을 구축하는 시도라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광장이기도 하며, 인터넷 공간이기도 하다. 촛불은 국가가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자,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해달라는 요구이자 욕망의 표출이었다. 반대로 일베는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국가와 권력, 이상에 대한 깔아뭉개기와 희화화를 통한 욕망의 표출이다. 촛불이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욕망을 드러내고 현실속에서 활동하면서 현실정치에 이를 요구했다면, 일베는 현실정치에 대한 환멸로 인해 더이상 현실에 드러나지 않으며 오로지 인터넷 공간을 통해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해 나간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왜 자신들의 욕구를 다른 어떤 것을 매개로 해서 드러내고 있는지다. 촛불은 자신들의 욕망과 이상을 국가와 권력에 요구했다. 일베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권력을 의식하고 이를 희화화하면서 자신들의 욕망과 이상을 진행시켜나갔다. 저자가 마지막에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욕망을 실현시킬 구체적인 무언가를 촛불도 일베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속에서, 오로지 어떤 다른 주체(권력과 이상)를 통해 이를 실현시키려다보니 길을 잃고 폭주한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현실 지평에서 스스로가 다른 어떤 것을 매개로 하지 않고 타인과 교류함으로서 이상을 공유해 나가는 공동체를 주장한다. 이는 앞서의 촛불이나 일베가 어떤 권력이나 이상에 기대어서 자신의 욕망을 교류했던 것과는 다르다. 이러한 권력과 이상은 수직적인 것으로서, 하나의 기준이 되어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어떤 합리적인 합의나 교류를 방해하고 왜곡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로 인해 나타난 인터넷의 모습과 광장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권력과 이상에서 벗어난 수평적인 교류와 합의를 생각하고 있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바로 하버마스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이상적 담화상황이라는데 있다.


저자는 공론장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있는 지점을 말하고 있지만,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공론장과 그 논의는, 실재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생각하는 공론장과 그 공론장이 정당화되기 위한 조건에 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각자 다른 욕망과 다른 삶의 지평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아마 하버마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의사소통을 왜곡하는 체계 또한 언제나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하버마스는 우리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요구되는 어떤 당위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위를 벗어났을때 우리의 의사소통은 왜곡된다.


일베는 그런 측면에서 공론장의 하나의 왜곡된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촛불도 마찬가지다. 일베가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아예 합의적, 토의적 측면이 발휘되지 않는 그런 공간이라는 것은 하버마스에게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각자의 주체가 합의에 이를 수 있는지 여부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는 의사소통과 공론장이라는 측면을 생각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각자의 삶의 지평을 가진 주체들이 모두가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사실 정말 이상적이다. 실제로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 느끼고 있는 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버마스의 주장이 허무맹랑하고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사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든 각 주체와 합의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합의는 상호평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결국 우리 주변에서부터 실현시켜 나갈 수 밖에 없다. 결국 저자의 주장도 이와 같다고 나는 판단했다.


일베는 우리의 어두운 현실 그 자체다. 따라서 일베의 문제는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베 문제 속에 담겨진 우리의 문제를 파악할 때, 일베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어보인다. 촛불과 일베의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스스로 주체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이 상황에 이르게 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냥 겁쟁이라서? 그건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 왜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다른 무언가를 매개로 해서 표현하고, 표출하게 된 것인지.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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