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노령연금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게다가 인수위의 방안도 시시각각변하고 시민단체의 반발과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답답한건 제대로된 사실과 국민연금의 논란의 지점이 어디에있는지를 언론이 명확하게 짚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연금제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에 올린 글에서 조선일보의 기사를 바탕으로 글을 썼었는데, 그 글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상 문제는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국민연금의 금액이 20만원이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기초연금제도의 적용을 받을 경우 손해를 볼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국민연금의 제도개편을 통해서 기초노령연금을 20만원 지급하겠는 그 연금제도개편의 지점에 있다.


현재 기존의 연금지급금액이 책정되는 방식은 '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50%) + 전체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50%)' 을 통해 지급되는 방식이다. 즉 예를 들면 어떤사람이 국민연금을 2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10만원은 그 사람의 평균소득액이며, 나머지 10만원은 전체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 측정으로 나오게된 것으로 이 두 부분을 합쳐서 20만원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20만원 받았던 사람이 기초노령연금까지 받았다면 현행 30만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국민연금제도를 개편해 기초연금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 기초연금의 구성은 국민연금을 구성하는 '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전체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 에서 전체국민연금가입자의평균소득액 부분과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을 합쳐서 20만원을 만들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식으로 제도를 개편하면 기존의 연금제도에서 기초노령연금까지 합해 30만원을 받았던 사람은 '국민연금(10 + 10) + 기초노령연금(10)'으로 30만원을 받는 것인데 변화되는 제도에서는 '기초연금(20) + 가입자평균소득액(10)'으로 똑같이 30만원을 받으며 전혀 달라지는게 없는 것이다.


정말 황당하다. 오늘자 언론에서 인수위가 역차별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기존에 받는 연금에서 4~5만원 정도를 더 받는 수준으로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논란을 잠재우기위한 눈가리기용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기존에 공약했던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20만원 지급하겠다던 공약에서 너무나도 벗어난 제도임에 틀림없다. 연금제도의 복잡함을 이용해서 국민들을 조삼모사식으로 속이려는 태도에 화가난다. 빨리 인수위가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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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001)

One Fine Spring Day 
9.2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박인환, 신신애, 백성희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06 분 | 2001-09-28




영화 '봄날은 간다' 이다. 사실 필자는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필자가 봤던 한국 로맨스 영화중에서는 가장 잔잔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극단적인 설정(예를 들면 둘중 한명이 죽을병에 걸렸다든지.)도 없고, 아주 무난하면서도 잔잔하게 사랑을 다룬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나니 뭔가 복잡한 감정이 들었고, 영화를 이해하려하기 시작하니까 영화가 어렵게 다가왔다. 뭐 이 영화에 대해서 아는 동생 녀석과 이야기를 했더니 사랑 영화는 이해하려고 보는게 아니래나 뭐래나...





굳이 나오는 등장인물의 배경을 일일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나니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떻게 사랑이 변해가는지에 대한 과정 인것 같다.


시작은 극중 상우(유지태)의 할머니가 역에서 죽은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할머니는 죽은 할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자주 역으로 찾아가 기다리는 행동을 보인다. 이 장면은 나중에 상우가 후반부에 동일한 장면에서 할머니에게 울분을 토하는데, 이것은 할머니의 변함없는 할아버지를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계속된 기다림에 대한, 즉 자신이 믿었던 사랑에 대한 울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만남. 상우는 녹음실에서 오디오 녹음하는 일을 하고, 은수는 시골의 자연의 소리를 담아 들려주는 라디오 진행자다. 우연히 일을 같이하게 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상우는 은수와 함께 작업하면서 조금씩 은수에 대해 알고싶어한다. 하지만 은수는 이미 한번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상처가 있다. 누군가 걱정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마음에는 벽이 있다. 상우는 은수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만, 은수는 소화기 사용법에나 주목하면서 상우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과거의 사진첩을 보면서 젊었을때의 할아버지는 알아보면서도 나이 들고 나서의 할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늙고 변해버린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상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랑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상우는 지금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둘은 계속 함께 작업하며 더욱 가까워진다. 여전히 은수는 상우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지만, 그의 세세한 배려 덕분인지 은수는 상우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명대사.. 봄날은 간다가 원조였다..)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분명 은수는 상우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걸로 모자라 자고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분명 상우에게 저 말은, 은수가 자신을 다 받아들인 것 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섹스야말로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 아닌가? 하지만 은수에게는 함께 자는 것 또한 사랑의 과정이다. 여전히 가까워져가는 과정인 것이다.




은수는 자신이 자고 가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으면서도, 상우와 관계하는 것은 좀 더 친해진 후에 하자고 미룬다.




상우는 드러난 자신의 마음과 욕망에 부끄러워하지만 더이상 감추지 못한다.





은수는 한자리에 있는 무덤을 보면서 "저 무덤처럼 죽으면 같이 묻힐까?" 라고 묻는다. 상우는 대답하지 않지만 벌써 마음은 저 무덤과 같다. 영원히 함께하고 싶고,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일까? 은수는 저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상우와 같은 마음이 아닌 것 같다.






은수는 직장에서 상우와의 관계에 대해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상우는 은수의 그런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지만 은수는 둘의 관계가 알려지면 상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짤릴 수도 있고, 그러면 만나기 어려워지니까 그런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관계를 확실히 하고싶었는지 상우는 은수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꺼내지만 은수는 난감해한다.




결혼이야기를 꺼낸 상우가 부담감으로 다가왔을까? 일을하면서 만난 다른 남자 앞에서 또 소화기 사용법을 이야기하는 은수. 아마 이 지점에서 은수는 상우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우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은수에게 그 남자는 분위기 전환을 이야기 한다.





은수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어디었을까? 은수는 왜 여전히 상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가? 상우와 은수의 관계는 왜 변하고 있는가? 아니 정확히는 왜 은수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기는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분명한 것은 결혼을 이야기한 지점부터 은수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수가 이미 한번 결혼생활을 했었고, 그리고 이혼한 이후 결혼에 대한 상처가 있어 그 생활이 부담이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상우가 싫어서 그런 것인지, 아직은 상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은수는 상우에 대한 마음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상우는 여전히 멈춰있다. 상우는 은수가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게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필자처럼..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상우의 달라진 지점이다. 언제부터인지 상우는 은수에 대해 궁금해하고 은수의 지점에서 출발했던 자신의 사랑이 완전히 자기중심으로 변해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은수가 부담스러워하는 지점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필자가 앞에서 던진, 은수가 왜 그러한지에 대한 질문을 은수에게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는다. 그냥 '도대체 왜 나의 사랑은 이다지도 힘든 거지?' 에 그는 빠져있다.





은수가 떨어져서 시간을 갖자는 말도 상우에게는 헤어지자로 받아들여진다. 은수는 헤어지자일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상우는 받아들일 수 없다.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명언이 나온 장면. 영화는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상우의 저 말에 은수가 사랑한다고 대답했어도 상우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사랑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수는 분명 상우를 사랑했다. 하지만 상우에게 은수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고 거짓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장면. 상우는 아직도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화를 낸다. 자신도 은수를 기다리면서. 할머니와 똑같이 은수와의 좋았던 시간을 기다리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을 부정하고 싶고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롭다.




"여자와 지나간 버스는 기다리는게 아니란다." 하지만 할머니는 사랑이 변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기다린다. 사랑의 모습은 변화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다시만난 은수가 상우에게 다시 함께 있자고 말하지만 상우는 은수와 함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수에 대한 상우의 마음은 여전하다.




진짜 어렵다. 사랑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니. 이 영화에 대해 쓰면서 나온 결론이다. '사랑은 변한다'로 끝나는 것 같지만, 무언가 남았다. 사랑에 대한 모습은 변했지만 사랑에 대한 추억, 기억, 감정, 마음은 남았다.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수용해야할 사랑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 이것이 아닐까? 근데 난 모르겠네.. 모르겠네........(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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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쯤되면 대학교와 관련한 뉴스를 장식하는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대학교 등록금 투쟁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등록금과 관련한 뉴스가 쏟아졌다. 대부분의 대학이 동결에 가까운 수준의 인하를 하거나 등록금을 동결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은 대학의 등록금 인하율이 지난 10년간 50%에 가까운 인상율에 비해 현저하게 낮을뿐더러 반값등록금만으로 등록금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으로 대학의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필자도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서 반값등록금의 정책이 정치권에서 튀어나왔을때 혹하는 마음이 있었다. 안그래도 비싼 등록금을 반으로 깎아주겠다니. 여태까지 내가 빚내서 낸 등록금만 해도 천만원이거늘. 이게 웬일이래? 그것도 20대에겐 관심도 없던 정치인들이?


분명 대학교의 등록금은 비싸다. 필자가 대학교 입학할때 냈던 등록금이 정확히 495만원이었다. 당시에 학교 등록금을 두고 고등학교에서 같은반 아이들과 순위권 싸움을 한적이 있었는데 반에서 다섯번째로 필자의 학교 등록금이 비쌌다. 하지만 처음에 다가왔던 그 어마어마하던 액수는 몇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필자에게 무신경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려니. 뭐 내가 다니는 대학만 그런것도 아니고 등록금이 비쌌던게 하루이틀인가?


등록금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거나 그들의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등록금 인하를 위한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등록금보다 더 뼈저리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있을것이다. 특히나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서울의 메이저 대학이 아닌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느끼는 학교의 변화말이다.




등록금이 비싸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고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그것이 정치권의 커다란 이슈가 되고 선거철이 다가오고 하면서, 결국에는 반값등록금이 정책화 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반값등록금 정책이 확정되고 대학에 대한 등록금지원이 이루어지고 나서부터 대학교 감사와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정부가 모든 학교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수도 없거니와, 한국에 대학교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중 부실한 대학은 퇴출을 시키거나 자구적 노력을 통해 대학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게끔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의 지원을 위한 기준을 마련했고, 기준미달이 되는 학교를 부실대학으로 선정해 지원제한을 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부실대학에 대한 선정기준은 취업률, 재학생충원율, 전임교원확보율, 교육비환원율,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장학금 지급, 등록금과 관련한 대학의 재정건전성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대적 평가지표 외에 정부가 지정한 절대 지표로서 존재하는게 취업률, 재학생충원율, 전임교원확보율, 교육비환원율이다.


사실상 중요한 것은 바로 정부가 지정한 절대지표다. 저 절대지표중에 2가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부실대학으로 지정되 대출에 제한이 걸린다. 지난 2012년도 2학기 부실대학 선정에서 정부가 지정한 절대지표의 선정 기준은 4년제 대학의 경우 취업률 50%, 재학생충원율 90%, 전임교원확보율 61%, 교육비환원율 100% 였다. 이 기준에서 3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무조건 부실대학으로 선정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교 측에서 결국 신경쓰는 것은 취업률과 재학생충원율이다. 언론에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이 대부분 충족하지 못한 기준이 바로 저 두 지표다. 이렇다보니 학교측에서는 가장 민감한 지표가 되었다. 올해 들어서 지표의 비중을 조정했다지만 정부가 지정한 절대지표가 존재하는 한 저 비중의 변화가 의미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청년 실업이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들이 맘먹고 자기 마음대로 취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정부는 반값등록금 재정지원을 위한 부실대학 선정기준으로 취업률을 뽑아들었고, 이러하다보니 학교측에서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취업하라고 재촉이다. 어떻게 해서든 학생이 졸업을 하면 최대한 빨리 취업을 해야 학교도 살 수 있으니까 학생의 선택과 진로에 대한 고민은 학교가 더이상 책임질 영역이 아닌 것이다. 졸업여건에 취업캠프를 넣고 학생들에게 이거 안가면 졸업도 시켜줄 수 없다고 협박하며, 취업만이 살 길임을 대학생들에게 더욱 깊이 각인 시켜준다.


그런데다가 점점 취업과는 연관이 없는 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실상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학교의 취업률과 관련해 예술대나 인문대의 경우 일자리 자체가 굉장이 적고 취업의 문이 상당히 좁아서 취업률이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취업률 절대지표로 인해 학교는 취업률의 평균치를 깎아먹는 인문계와 예술계쪽의 학과를 가만히 둘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학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시키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학에서의 인문학과 예술의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한번 대학교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라. 과거에 대학교의 인문계열에 존재했던 학과들을 생각해보고 지금 대학교 홈페이지에 존재하는 인문계열 학과의 수를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학교의 경우엔 국제어학부, 문화콘텐츠학부, 아동학과만 존재한다. 이게 뭔가 대체.


고등교육을 배우고 배움의 자유라는 유일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대학교에 왔고, 등록금이 너무 비싸 등록금을 깎아달라는 요구를 했을뿐인데, 그 댓가로 대학생들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지금 어떤 고등학생이 자신이 배웠던 것을 더욱 심화시켜서 더 깊은 학문을 추구하고 싶어서 대학교에 간다고 한다면, 그 학생은 대학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은 그런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배움의 자유와 선택권에 대한 권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돈은 엄청 내는데 말이다. 한 학기에 500만원이라는 돈을 내고 내가 원하는 공부도 할 수 없다면 대학교는 왜 가야하는 것인가?


학생들은 이러한 대학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한다. 대학교에 등록금을 인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내고 배우는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더 분노해야한다. 대학이 취업스펙의 하나일뿐이라는 소리를 들었을때도 한국에서의 대학의 위상은 참 굴욕적이었는데 지금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해버릴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실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고등교육으로서의 대학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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