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4주동안 블로그를 못하고 있다. 3월 마지막주랑 4월 첫째주는 하루에 잠을 2시간 자야할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이번주가 지나고 나면 한가해질 것 같다.


블로그는 멈춰있지만, 최근에 쓸거리는 정말 많았다. 홍준표와 진주의료원 사태,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 청문회사건,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남북관계, 민주당의 대선보고서,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한기총의 성명 등등 뭐 이것저것 이슈들은 넘치는데 손을 댈수가 없다.


여튼 이번주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너무 피곤하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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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이었나요? 트위터가 하루종일 성희롱 관련 트위터로 시끄러웠죠. 목요일 새벽 1시쯤이었을겁니다. 여성 트위터 유저가 뜬금없이 고은태를 언급하며 인권운동가라는 타이틀의 이면에 있는 그 사람의 더러움을 폭로하겠다고 폭풍 트윗을 했었죠. 근데 그 내용이 장난이 아닌지라, 만약 사실이 아니면 이 사람은 적어도 트위터에서만큼은 엄청난 공격을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죠. 그런데 그 트윗 이후 3시간이 지나고 고은태가 인정을 했어요. 충격을 먹었습니다. 이전까지 인권운동가로서 상당히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있었고 그분의 글도 상당히 좋아했었는데, 그게 산산조각 나버렸죠.


고은태가 상대에 대한 성희롱적 발언에 대해 인정한 이후에 오전부터 트위터가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고은태를 감싸는 사람들과 비판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져서 시끌시끌했죠. 그 사태를 보면서 참 여러가지 면이 드러났어요. 첫째로는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권위를 얻음으로 생겨난 팬덤이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대상을 지지하려고 하는지가 드러났죠. 고은태가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인정을 했음에도피해자가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과 피해자의 평소 트윗의 행태가 문란했다는 이유를 들면서, 고은태를 변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에서 2차 피해를 이야기하면서 고종석을 언급했는데 고종석도 그렇고 다수의 트위터리안들이 피해자의 과거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피해자의 음란함을 드러내려고 했었죠.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해자를 옹호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고 그렇게 행동한건지 참 의문이예요. 그리고 둘째로는 우리나라가 여성의 성에 대해 얼마나 억압적이고 보수적인지가 드러났습니다. 여자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드러냈을때의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이 얼마나 억압적인지 말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주요 신체부위를 드러내서는 안되고, 성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행위나 언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왜 여자는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분출해서는 안되는 합당한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그냥 여성의 성을 억압하죠. 피해자가 과거 트윗에서 섹스하고싶다는 트윗을 남겼는데 그게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것처럼 사람들이 리트윗을 하고 언급을 하더군요. 피해자도 말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여자가 섹스하고싶다고 말하면 음란한 걸 좋아하는거니까 대놓고 섹스를 요구하고, 섹스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그 외에도 남자들의 성도덕을 언급하면서 남자는 고은태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진짜 웃기는거죠. 성도덕이란게 어딨습니까. 성욕에는 도덕이 없어요. 행동에만 도덕이 있을뿐이죠. 고은태가 변태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젊은여자랑 섹스하고 싶어서 제안을 할 수도 있어요. 모두 별 문제가 안되는 일이에요. 남자가 여자랑 섹스하고 싶은건 당연한겁니다. 거기에 무슨 도덕이 있나요. 욕구만 있을뿐이지. 다만 문제는 그가 영향력있는 공인이자 인권운동가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있어서 도덕적인 비판을 받는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지속적으로 음란한 메세지를 보내면서 심리적인 압박을 줬죠. 그런 그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거예요. 그런데 남자는 원래 다 성적으로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고은태를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런사람들에게 극단적으로 말해서 자기 딸이 성희롱을 당했는데도 그런 입장을 취할건지 묻고싶어요.


위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언론에서는 고은태 사태를 성희롱으로 규정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문제가 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에 고은태는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거든요. 법적인 성희롱이 단순히 음란한 대화를 보낸다고 걸리는게 아니예요. 필수적으로 '직위'를 이용해 상대에게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줬을때 성립하는 겁니다. 이번 고은태 사태가 성희롱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직위'때문이에요. 고은태와 피해자 간에 직위관계가 성립되지 않죠. 언론에서는 피해자가 엠네스티 회원이라고 되어있는데 이것도 사실인지가 불분명하고 고은태의 국내엠네스티에서의 직위도 일반회원이에요. 이건 엠네스티가 공식적으로 언급해준겁니다. 따라서 직위를 이용해서 고은태가 피해자에게 성적인 요구를 해서 굴욕감을 줬다고 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에요. 그리고 피해자도 고은태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할 위치에 있었는지가 애매한 상황이구요. 따라서 이번사태를 법적으로 끌고간다고해도 성희롱이 성립할지의 여부는 불투명하죠.


피해자의 경우는 법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는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엠네스티측에서는 고은태의 처벌을 꽤나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 같구요. 어찌되었든 고은태는 인권운동가로서 쌓아왔던 이미지나 자신의 위치에 있어서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겁니다. 트위터 계정도 지웠고, 한동안 보기 힘들것 같네요. 뭔가 안타까운 마음도 있긴한데, 처신을 잘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만큼 무거운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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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단상 2013. 3. 20. 19:58

20대의 시간을 형성한 나의 대부분의 사람관계엔 종교가 얽혀있다. 스무살이 된 그 좋은시절 종교에 귀의한게 문제였던게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꽤나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질릴정도로.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관계의 소중함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자유로움에 놓여지는 스무살때가 아닌가 싶다. 따라서 사실 그 시간에 형성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좋은 사람들과 꽤나 두터운 신뢰관계를 쌓으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가 허무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오늘날엔 워낙 인터넷, 전화가 발달하다보니까 물리적 거리가 있어도 가깝게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인터넷과 전화를 통한 관계는 뭐랄까. 그 토대가 참 부실하다고나 할까? 자칫 그 관계가 단절되거나 주위를 의식했을때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때 몰려오는 허무함이라는 건 참 감당하기 쉽지 않으니까. 따라서 아무리 전화나 인터넷이 발달해도 관계는 직접 얼굴을 대고 만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지금 내 관계는 위와 같이 허무한 관계가 되었다. SNS를 하고 스마트폰을 쓰고, 거기에 존재하는 무수한 연락처들과 친구관계가 있지만, 그들과 실제 오프라인 관계는 단절되었고, SNS와 스마트폰은 나에게 더이상 관계의 수단으로서 다가오지 않고 하나의 공허한 환상으로만 다가온다.


괴로운 지점은 애초부터 그랬으면 상관없는데, 믿음을 버리기 전까지 내가 쓰던 SNS의 친구와 스마트폰 연락처에 있는 그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는 사실. 바로 그 지점이다. 손에 잡혔던 관계가 지금은 공허한 관계가 된 것이 꽤나 나를 괴롭게 한다. 없던 사실을 망상으로 만들어냈다면, 그냥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있던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고, 현재의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으니 그 간극속에서 생겨나는 끊임없는 추억과 관념들이 날 자꾸 괴롭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추억을 더듬다가 잡힌 외로움에 놀라 멍하니 그 외로움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괴롭다. 이 감정을 마음껏 토해내던 과거의 시간이 사라진 것도 괴롭고. 이런식으로 내 괴로움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도 괴롭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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