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포스코의 상무가 대한항공 기내에서 승무원을 폭행한 것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사건이 있었죠. 라면이 덜 익었다느니, 기내가 덥다느니 하면서 온갖 진상을 다 떨어서 네티즌의 입에 오르내렸는데요. 덕분에 포스코도 발칵 뒤집히고 상무는 결국 보직해임을 당했죠. 근데 오늘 또 사건이 터졌네요. 중견기업 프라임베이커리 회장이 롯데호텔의 현관 서비스 지배인을 폭행하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회장의 차가 다른 차를 가로막는 주차 문제 때문에 지배인이 회장의 차를 이동시켜줄 것을 요구하자 일어난 일인데 기가 찰 노릇이죠. 당연한 요구를 한 지배인이 무슨 죄가 있나요.
언론에서는 갑(甲)의 을(乙)에 대한 횡포라는 부분에 주목해서 이 사건을 보도하고 있어요. 네티즌들도 사회의 특권층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약자의 입장에 있는 서비스업 제공자들에게 마구잡이식 횡포를 부리고 있다면서 가진자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고 있죠.
근데 사실 이는 핀트가 좀 어긋난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포스코 상무나, 프라임베이커리 회장이 보여준 진상짓은 사실 이렇게 특권지위를 가진 사람들만 저지르는 행동이 아니거든요. 백화점이나 마트, 호텔, 식당, 술집, 콜센터 등등 광범위한 서비스업종에서 포스코 상무같은 진상짓을 하는 인간들은 꽤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지위나 돈을 떠나서 자신이 소비자가 되었을때 갑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죠. 뭐 저같은 경우에도 편의점에서 알바할때 술취한 취객이 물건을 집어서 카운터와 멀찍이 두길래 "이쪽으로 가져다 놔주시겠어요?" 이 한마디 했다가 '불성실하다'느니 '이딴식으로 행동하라고 학교에서 배웠냐'느니 '한번더 그러면 죽인다'느니 등 온갖 욕을 먹은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 뿐인가요. '가격이 비싸다', '물건이 왜이러냐' 이런걸 현장에서 판매하는 저같은 사람에게 소비자는 이의제기를 하지만 제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해도 욕은 제가 다 듣죠.
문제는 이러한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소비자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에요. 소비자의 행동에 대해 잘못을 지적할만한 근거도 없거니와 어떤 법적인 제도나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가 갑의 태도로 나와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이를 다 받아줄 수 밖에 없는 실정이죠. 포스코의 상무나, 중견기업의 회장님 같은 경우는 그 회사 이미지에 어떤 심대한 타격을 줄만한 행동으로 치부되어 회사 내의 처벌을 받고 언론에 이슈화 되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많은 일반 소비자들은 그냥 이러한 일을 벌이고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따라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들에 대한 교육과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입니다.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들만의 문제라면 이건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일도 아니죠. 그냥 그 사람들 개인적으로 정신차려야할 문제니까요.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주목해야할 것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권리 그리고 서비스업을 제공받는 소비자들의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특권층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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