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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27 불편하고 울 수 없었던 연극을 보았다.


(그 봄, 한 낮의 우울)


나는 유년시절을 아버지 없이 보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돈을 버는 소위 기러기 아빠였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일본에서 일하는 것이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이 옳았던 것일까? 98년 IMF가 터지고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움츠리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은 그 여파를 거의 겪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유한 것도 아니어서 어머니는 몸이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러 다녔다. 아버지가 아셨다면 불같이 화를 냈을 테지만, 어머니는 우리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몰래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이 부유하지 않은 집안 살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알아주는 사람들과 섞이고 싶었던 엄마의 간절함이 일을 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확실히 혼자였다. 아픈 몸을 관리하는 것도, 자식을 돌보는 것도. 집안일을 책임지고 하는 것도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그래서 사실 엄마는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 분명했다. 하지만 엄마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어떤 식으로든 집에서 나갈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결국, 엄마는 집에서 가까운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그 때문에 우리(여동생과 나)는 한동안 질려서 토를 할 때까지 저녁을 짜장면만 먹어야 했다. 저녁 늦게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짜장면을 먹는 시간이 늘어났고 날이 갈수록 짜장면의 면도 불어갔다. 엄마가 없는 집이 불안했고 엄마가 없어서 마음 한 켠이 외로웠지만, 엄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엄마에게 일은 소중했던 것 같다.


난 엄마에게 좋은 기억이 없다. 엄마에게 사랑받았던 기억도 없고 엄마가 나를 꼭 안아 준 기억도 없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나에게 폭력적이고 무서운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나를 무자비하게 때렸던 엄마. 침대 구석에 몰아넣고 발로 밟았던 엄마. 체중계를 들고 몇 시간을 서 있게 한 엄마.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체벌했던 엄마. 파리채가 부러지도록 종아리를 때렸던 엄마. 오락을 좋아하는 나의 손을 잘라버리겠다면서 도마 위에 내 손을 올려놓고 칼을 들이댔던 엄마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나는 혼자 살면서 건강을 챙기고 우리를 감당해야 했던 엄마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스트레스가 나에게 향한 결과라고, 저 사건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여동생은 때리지 않고 유독 나만 맞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나도 참 말 안듣는 아들놈이긴 했다.)


그렇게 살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집에 남자를 들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 빌라 지하에 살던 이웃과 친했던 남자. 그 남자와 엄마는 우리와 함께 놀이공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방학 때마다 아버지가 계신 일본에 가서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었던 그런 시간을 그 남자와 보냈고, 남자는 엄마와 친해졌으며 같이 술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남자는 우리 집에 와서 잠까지 잤다. 엄마가 즐거웠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남자가 우리와 만나는 빈도수가 늘어났고 집에 오는 일도 잦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귀국한 아버지. 그리고 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 보니 아버지는 엄마를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에게 엄마의 존재는 사라졌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같이 일하던 중국 여자와 바로 재혼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날부터 지금까지 새엄마라는 존재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내 유년시절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던 엄마의 존재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에 아버지를 증오했고 새엄마라는 존재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확히는 증오는 다 빠져나가고 뭐 그래 자기네들 인생인데 뭐? 라는 체념정도로 바뀌었달까?


난 지금도 엄마와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혼 이후에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다 모여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해를 풀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어떻게든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그때 왜 그랬었냐며 엄마와 아빠에게 따져 묻기도 했다. 하지만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엄마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친한 동생이 보러 가자고 하여 내용이 뭔지도 모른 채 가서 봤다가 기분이 묘해진 저 연극. 클라이막스에 꺽꺽거리며 우는 사람들의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서 더욱 불편했던 그 연극. 그들은 어디에서 울었던 것일까? 딸을 잃고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도 없이 집안일만 하면서 바람난 남편을 기다렸던 부인이 결국에 남편 앞에서 자살을 이야기할 때? 부인이 남편의 여자 이야기를 계속 물으며 자신과의 존재를 비교할 때? 잃어버린 딸이 죽었으나 곁에 살아있다고 믿으며 행동할 때? 자살하면서도 남편의 건강과 안위를 걱정할 때? 글쎄. 잘 모르겠다.


부모 된 입장이라면 뭔가 다른 느낌이 올 것 같지만, 그럼에도 저 연극이 공감되고 이해된다면 사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차라리 조울에 가까운 감정 기복이 난무한다고 평가하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 연극을 보고 운다는 것은 저러한 부인과 저러한 가족이 꽤 존재한다는 것이고, 누군가는 또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 저 끔찍하여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살 수 없는 삶을. 그래서 저 연극을 보고 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저 삶을 나는 이해하지 못 울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h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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